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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8-08-20 (월) 06:50 조회 : 79
설교일 : 2018년 8월 19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마 8장 5-13절





<마태복음 85-13>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우리가DMV에 가서 차 운전 실기 시험을 치루게 되면 운전 시험관은 다른것을 보지 않고 내가 운전을 잘하나 잘하지 못하나 내 운전 기술만 봅니다. 내 키가 얼마나 되는지 내 몸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내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내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돈을 벌고 있는지 보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운전하는 기술이 얼마나 되는지만 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나의 믿음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믿음이 있나 없나를 보십니다. 그리고 또 내가 믿음이 있다면 얼마만큼의 믿음이 있는가를 보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어야 내가 구원 받을수 있고, 그리고 내가 가진 믿음의 크기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나갈수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예배를 드리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나 없나를 살펴보시고, 믿음이 있다면 얼마만큼 있는가를 보십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 앞에 와서 하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백부장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놀라워하시는 장면이 10절에 나옵니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자 이 백부장은 어떠한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감동을 하시고 놀라하시는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을 놀라게 하신 이 백부장의 믿음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능력있는 신앙생활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놀라게 한 백부장의 믿음은 첫째로

1. 자신을 초월하는 믿음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잘 아시는 것처럼 그당시 백부장은100명의 병사들을 거느린 로마 군대의 장교입니다. 말이 백명이지 그 군사에 속한 가족들과 친지 친구들까지 연관지어보면 그 숫자는 백명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자기 병사들이나 그 가족들이 아닌 지금 자기 집 하인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인은 노예 출신입니다. 왜냐하면 노예, 종 이라는 의미가 있는 ‘둘로스‘ ’서번트‘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당시 노예나 종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당시 노예들은 물건이나 짐승들처럼 매매가 가능 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짐승과 노예의 유일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노예는 짐승과 달리 말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백부장은 이렇게 하찮은 존재인 종을 위해 일부러 예수님께 나아와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5절을 다시보시면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나아와 간구하여” 그냥 도움을 구한 것이 아니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시면 6.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중풍병으로‘ 백부장은 자기 하인이 가진 병을 구체척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 때문에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 하나이다” 이렇게 하찮아 보이는 하인이 가진 고통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고 그병과 그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이 백부장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이미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25장을 보시면 세상 마지막날에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왼편과 오른편에 나누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 왼편에 있는 무리들은 지옥에 갈 사람들이고 예수님 오른편에 있는 무리들은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심판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오른편에 속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 25 40) 그리고 왼편에 속한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죠? “이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내게 한 것이 아니니라”( 25 45) 그래요. 지금 내가 힘이 들고 고통스러운 중에 있다 할지라도 내가 처한 환경을 초월해서 주변사람들을 돌아보고 섬기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큰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실 이 백부장이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백부장을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수도 있는 자기 하인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일부러 찾아와서 낫게 해달라고 간구를 했던 모습이 예수님을 놀라게 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백부장 자신이 이 하인을 위해서 직접 나가서 요청하는 일을 남들이 볼 때 흉이 될수도 있습니다. 백부장으로서 해야할 중요할 일들도 많을텐데 이런 일 정도는 직접 나서지 않고 남을 시켜 하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할수도 있는데 구태여 시간을 허비해서 행동할 필요까지 있겠느냐? 라는 말을 들을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동성연애자들이 이 백부장의 모습을 보면서 ‘사실 이 백부장은 하인을 사랑했던 동성 연애자이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이러한 동성 연애자들의 사랑을 인정하고 하인의 병을 고쳐주었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억지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그당시 이 로마 백부장의 행동은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이나 신분을 넘어선, 상상을 초월한 파격적인 행동이었다라고 생각할수 있는 것입니다. 어짾튼 성경적인 교훈은 지극히 작은 사람,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 그사람의 고통을 내가 느끼고 그사람을 위해 기도를 할때 하나님은 감동을 받으신다는 교훈으로 우리는 받을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크고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크고 위대한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주님을 놀라게하고 감격해 하는 일은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찮게 보이는 작은자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가지고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자기 하인이 겪고 있는 고통을 그냥 지나칠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백부장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앞에 와서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고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달라고 간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을 놀라게 하고 감격하게 한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내 자신의 입장을 초월해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나 고통을 볼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믿음

백부장 자신이 직접 찾아와서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하는 이 백부장의 모습과 말에 예수님께서는 감동받으시고 기쁘게 대답하십니다. 7절입니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그래 내가 너희집에 가서 고쳐주마‘ 그런데 백부장의 대답은 어떻습니까?

8절입니다.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주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비록 자기 하인이 있는 곳과 예수님이 계신 이곳은 시간적인것과 공간적인 차이가 있지만 예수님에게는 이러한 시공간적인 장애물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가 않는다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가지는 믿음이 아닙니다.요한 복음 4장을 보시면 왕의 신하가 병에 걸린 자기 아들을 낫게 해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와 간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4 49절입니다.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아이가 죽기전에 내려오소서”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 내아들이 죽고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살아있어야 병을 고칠수가 있지요. 시간이 늦기 전에 나와 같이 빨리 집으로 가십시다’.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죠. 시간적으로 제한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자기 집이라고 하는 거리 즉 공간적으로도 제한 시킨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능력을 시간과 공간적으로 제한 시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이 왕의 신하와 같이 예수님의 능력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을 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 늦어서 안돼. 불가능한 일이야. 어제 까지만해도 어떻게 해볼수가 있었는데 이젠 버스가 지나갔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이렇게 시간적으로 제한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도 제한시켜 신앙 생활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통할지 모르겠지만 여기 미국에서는 안되는 일이야‘ ’그쪽 동네에서는 되겠지만 여기서는 안통하는 일이야‘ 이렇게 공간적으로 제한시켜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시간과 공간적으로 제한해버리고 신앙생활해나갑니다. 그래서 미리 포기를 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 눈에 지금 해결책이 안보이는 것 뿐이지 예수님의 눈에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신 예수님에게는 여러 가지 해결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이 백부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말씀 한마디만 해주세요.이것이 백부장이 가진 믿음이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기만 한다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주님이 행하시는 능력을 경험하게 될줄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민족을 초월하는 믿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로마인입니다. 하지만 하인은 어느 민족인지는 알수가 없으나 로마사람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백부장의 입장에서 볼때는 다른 나라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부장은 이런 국경의 벽을 넘어선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분과 품위를 더욱 의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자신의 신분이나 품위를 유지하는 것 보다도 자기가 데리고 있는 하인이 병고침을 받고 자유롭게 살아가게 되는 것을 더욱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넓은 사랑의 마음을 가진 백부장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감동받으신 것입니다. 10절 말씀 다시한번 봅니다. 1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그러면서 그다음절 11절 말씀을 보시면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는 세계 선교를 향하신 예수님의 비젼을 볼수가 있습니다.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우리는 유대나라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갈수 있게 된것은 바로 이런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있습니다. 민족을 초월하고 이념을 초월하고 문화를 초월하는 백부장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사람들의 순종을 통해서 내가 복음을 듣게 되었고,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 가족 내 교회 내 민족을 넘어서서 신앙의 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미국사람을 보거나 스페인 사람을 보거나 필리핀 사람, 월남사람 중국사람 어느나라 사람을 보더라도 우리는 같이 마음을 열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중국 선교의 개척자라고 할수 있는 영국의 허드슨 테일러가 스물 두 살에 중국에가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건강의 문제로 인해서 약10년 만에 잠시 영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특별히 중국 선교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허드슨 테일러가 그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적이 있습니다. “자네들은 무엇 때문에 선교사로 중국에 갈려고 하는가?그러자 그중 한 학생이 이렇게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예, 선교사님 저는 중국에 있는 수많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갈려고 합니다”

그때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학생 자네의 그대답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선교지에 가게 되면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에 부닥치게 될것일세. 영혼구원이 자네가 가야할 이유가 된다면 어려움이 올 때 자네의 마음은 크게 흔들리게 될 것일세”

그러자 다른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선교사님께서는 무슨 동기로 중국에 선교하러 가셨습니까? 그때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중국에 간 동기는 그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야. 사랑하는 마음이 동기가 되지 않으면 어려움이 올때마다 쉽게 넘어지고 말게 될것일세” 이렇게 중국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허드슨 테일러는 일년후 그의 나이 34살이 되었을 때 선교 후보생 24명과 함께 다시 중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후 그는 그 중국에서 맏아들 과 막내딸 그리고 같이 간 동역자들을 잃어버리게되는 비극을 겪게 되면서도 끝까지 중국에 남아서 선교생활을 합니다. 그러다가 1905년 일흔 세살의 나이로 중국 호남성에서 그의 생애를 마칩니다. 이 허드슨 테일러가 이렇게 가족과 동역자를 잃어버리면서도 끝까지 중국에 남아 국경을 초월해서 신앙생활 한것은 이 선교사에게는 중국사람을 향한 큰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국경을 초월해서 복음을 전해준 믿음의 사람들 때문에 지금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예수님에게 사랑의 마음이 없으셨다면 왜 그 천국의 집을 떠나 험하고 초라한 이 땅에 오셨겠습니까? 이땅위에 살아가시는 동안 제대로 머리두고 잠잘곳도 없이 외롭고 가난하게 사셨던 분이 예수님이 아닙니까? 죽임을 당하셔서 그 육신의 몸이 이땅을 떠나게 될때까지 이땅에 계셨던 이유는 단하나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이셨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민족과 나라를 초월한 백부장이 가진 넓은 사랑의 마음을 보시면서 주님은 감격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도 사랑의 범위를 넓혀서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나 자신을 초월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그리고 국경을 초월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주님을 감동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이제 저와 여러분도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심으로서 이 백부장이 지니고 있는 큰 믿음으로 신앙생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