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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8-09-19 (수) 18:38 조회 : 78
설교일 : 2018년 9월 16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히 11장 1-3절




<히브리서 111-3>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지난 몇주동안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선배들이 지닌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원래적인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1. 믿음은 실상이다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여기서 바란다는 의미는 소망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러면 내가 바라고 소망 한다고해서 그것이 다 믿음이라 할수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겠죠. 왜냐 하면 내가 바라고 소망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다 유익하고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믿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적합한 소망이요 바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십시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누구나가 다 자기 사업이 잘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사업이 잘되고 흥할려면 저 길 건너편에 있는 가게에 출입하고 있는 고객들이 내 가게로 와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길 건너편 가게가 망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는 성도들에겐 하나님의 뜻이 아닌 소망과 바램은 믿음이 아닌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필요한 것을 구분할줄 알아야 합니다.

원하는것이란 없어도 되지만, 그러나 있으면 더 좋은 것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이란 없으면 안되는 것,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죠. 예를 들어서 자녀들이 게임기를 갖고싶어합니다. 그런데 그 게임기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이죠.

그런데 아이들이 칼이나 뱀을 사달라고 하면 사줄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용품이나 책가방같은 것은 필요한 것이니까 당연히 사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럼으로 성숙한 신앙인은 내게 필요한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구분해서 하나님께 정직하게 구할줄 알아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를 듣으시고 일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간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적합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기름 부음이 일어나면서 믿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내마음 깊은 곳에서 웬지 모를 기쁨과 소망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소망이 생기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에 대한 믿음은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는 정확한 시간에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에서 바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실상에 있죠. 실상이란 단어의 헬라어는 ‘휘포스타시스’ 라는 말인데 이 휘포스타시스는 땅문서, 혹은 재산목록(inventory) 혹은 기초 파운데이션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땅문서과 같은 재산 목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지금 내 소유로 된 땅이 여기 샬롯에 있지 않고 조지아 주에 있다고 하십시다. 하지만 여기 내이름으로 된 땅 문서만 있으면 그 땅이 아무리 멀리 있고 내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상관이 없이 내것입니다. 집문서도 마찬가지로 내 재산 목록으로 되어있으면 내가 그 집에 살고 있던 살지 않던 상관이 없이 내것입니다.

믿음도 이와 마찬가지 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신분입니다. 이땅을 떠나게 되면 상급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되어있는 신분인데 이것이 지금 내눈에 안보이고 내가 느낄수가 없어도 이런 믿음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곧 땅문서나 재산 목록서와 같은 특성이 있는 실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허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히 소망을 가지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앞절 10 38-3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여기 믿음에 대한 말을하면서 ‘뒤로 물러가면’ 이라는 말이 두 번 강조되어 나옵니다. 믿음은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전거를 타면 앞으로가야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믿음도 계속 앞으로 가는 것 입니다. 그런데 사실 소망을 가지고 그 소망이 이루어질때까지 앞으로 가는 것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소망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태풍이나 허리케인을 만나 비바람을 맞아야 할때도 있고, 뜨거운 태양이 몇 개월 동안 내리쬘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어내어야 하는데 이 견디는 것이 파운데이션 기초인 것입니다. 이 파운데이션이 튼튼해야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는 의미를 다시 정리해서 생각해보면 내가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땅이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멀리 있다 할지라도 그 땅문서만 내이름으로 된 것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처럼 믿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질때까지 파운데이션이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서 증거는 헬라 원어로 엘렝코스(elengchos)인데 그 의미는 증거. 보증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믿음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보여줄수도 없고 또 볼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엘렝코스를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볼수 없지만 엘렝코스(증거)를 보면서 믿음이 있음을 사람들이 알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지금 지금 내 눈앞에 먹을것이 없고 내집안에도 먹을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십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눈에 보이지 않고 내집안에는 없지만 이세상에는 먹을것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왜요? 그것은 바로 내가 배고프다고 하는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배가 고픈데 먹을것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육적인 차원이 아닌 영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적용시킬수 있습니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믿는 것은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천국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증거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세상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때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사모하며 그리워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이땅을 살아간 것을 기억하십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든 고향과 친척 부모님을 떠나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해 떠났습니다. 11 8절입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울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을 목적에 두고 고향집을 떠나 나그네 삶을 살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땅을 도착해서 삶을 살았지만 아브라함은 죽을때까지 나그네가 가져던 마음가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았숩니다. 아브라함이 사모하고 그리워한 본향은 이세상이 아니 저하늘나라 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물질을 가지고 살았지만 큰집을 짓고 살지 않고 장막을 짓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 9절 후반부와 10절입니다. 9. ...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10.이는(평생 장막생활을 한 것) 그가(아브라함)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이렇게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 나그네라고 하는 마음자세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고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그리워하는 삶이 바로 믿는 성도들에게는 증거가 됩니다.

로마서12 12절 전반부입니다. 12. 소망중에 즐거워하며...‘현실이나 환경을 보고 즐거워하며... 가 아닙니다. 물질이나 복을 보면서 즐거워하라는 말씀도 아니다. 장차 이루어질 소망을 보면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소망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잘먹고 잘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맨날 그 일만 하고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 인생은 오히려 너무 삭막하고 무의미하게 되어집니다. 배고프고 힘들때는 잘먹고 평안하기 위한 소망이 있어서 살아갈 의지가 생기지만 잘먹고 잘살게 된 상황에서 아무런 다른 소망이 없다면 마약과 같은 다른 위험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유명해진 연예인들중에 소망이 없어지자 마약을 하고 결국에는 자살을 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럼으로 소망이 우리를 기쁘게 하고 힘을 주지만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소망을 늘 가지고 살아야 어려울때를 이겨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망을 가지고 있다가도 쉽게 포기를 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믿음이라는 망원경이 필요합니다. 배를 타고 가던 두사람 중에 한사람은 저 멀리 있는 섬을 보았는데 또 다른 한 사람은 저 멀리 있는 섬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그랬을까요? 한사람에게는 망원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망원경을 통해서 보니까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을 볼수가 있었던 것이죠. 마찬가지 원리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망원경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형통한 미래와 천국을 바라볼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철처한 증거를 통해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선진들이’ 믿음의 선배들이라는 의미이죠.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이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보니까 이러한 축복을 받고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그 사람들의 전 인생을 통해 증거 하였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때 .두때도 아닌 그들 전 인생을 통해서 증거로 나타난 것인데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영국에 존 윌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존윌튼은 26세까지 되는데로 막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교회에서 마태복음 17 20절 말씀이 자기 마음에 와닿게 되었습니다. 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것이 없으리라”

이말씀을 듣고 난이후 이 존 윌튼은 그 이후로부터 겨자씨를 얻어가지고 자기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때마다 존윌튼은 주머니속에 가지고 있던 겨자씨를 꺼내어서 보면서. “이 겨자씨만한 믿음만 내게 있어도 나는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다” 라고 생각을 하고 힘든 순간순간을 견디어 내었답니다. 그렇게 살아간 결과 이 존 윌튼은 위대한 사업가가 되었고 71세가 되던 해에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작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젊은 시절에 방탕을 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성공할 수가 있었습니까?그때 이 존 윌튼은 자기 주머니 속에 있는 겨자씨를 꺼내 보이면서 ”삶이 힘들고 어려울때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때마다 나는 이 겨자씨를 꺼내보면서, 요만큼만이라도 믿자, 요만큼 믿음도 없겠나 그래서 살아왔는데 지금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위대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은 언제나 동전 앞뒤와 같습니다. 믿음이 굳건해지면 소망이 확실해집니다. 그리고 소망이 확실하면 믿음은 자연스럽게 굳건 해 집니다. 반대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연약해지면 소망이 흔들리고 소망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믿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내 믿음의 상태를 체크하고 믿으면 소망에 대한 마음을 체크하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은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믿음과 소망은 비례합니다. 믿음만큼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럼으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믿음은 말씀에 근거한다.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줄을 우리가 아나니’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습니다. 그사실을 우리가 압니다. 그래서 후반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보이는 것만이 이세상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대부분 결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십시다. 자기 자녀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학교 성적표는 부모님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부모님 눈에 보이는 성적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 자녀의 공부하는 태도의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녀가 공부한다고 말하고 자기방에 있어도 평상시에 공부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 부모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학교 성적표를 보면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났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로서 세상을 볼때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해서 이상한 것을 쫓아다녀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성경말씀에 포커스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성경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말씀을 합니다. 보이는 이 세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라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현재 과학자들은 이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풀려는 원칙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눈에 보이는 물질이 어디에서 나타났느냐고 하는 이 물질의 기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과학자들이 연구를 해왔는데 여기서 자연 발생설과 자연 도태설의 학설이 생겼습니다. 자연 발생설은 생명이 우연히 자연적으로 생겨났다는 이론입니다. 즉 대기속에는 암모니아와 질소가 있는데 번개가 치면서 이 암모이나와 질소가 번개를 맞아서 우연히 아미노산이 생겨나고 이 아미노산에 의해서 생명체가 만들어졌다는 이론이 자연 발생설입니다. 그러면서 옛날 중세 시대때 사람들이 자연발생설을 주장하기 위해서 오래된 고기를 두게 되면 그 고기속에서 없었던 구더기가 발생하는 것이 바로 자연적으로 이렇게 생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파스테르라는 과학자가 고기에 망을씌우고 살펴보았는데 그 고기가 썩어도 구더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썩은 구더기에서 발견되어지는 구더기는 파리가 고기속에 알을 까거나, 다른 벌레들이 들어와 알을 까서 생긴것이라는 사실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이 실험으로 인해 “생명은 생명으로 말미암는다” 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것은 그 무엇인가 생명이 있는 것이 그 생명을 옮겨다 주었기 때문에 있는것이지 없는 것에서 생명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원칙을 세웠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기독교도 생명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생명을 바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자연도태설이 있습니다. 이 자연도태설은 단순하고 기초적인 생물이 좀더 복잡하고 고등 생물로 진화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자꾸 사용하기 때문에 진화가 일어나고 어떤 부분은 자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도태되어진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원숭이가 꼬리와 손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꼬리가 짧아지고 손이 짧아지게 되면서 사람이 되었다는 이론입니다. 그렇다면 원숭이와 사람사이의 중간 단계가 이루어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중간단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반 원숭이 반 인간이 있어야 하는 데 없는 것입니다. 원숭이처럼 털이 많아서 원숭이와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그렇다고 원숭이는 아니고 원숭이와 사람 중간도 아닌 것입니다.

1891년도에 드보아라는 진화론 과학자가 인도네시아 자바에 가서 자바원인 두개골을 발견했습니다. 그 두개골 용량이 900cc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드보아는 원숭이 뇌 용량이 500cc이고 현대인 두뇌 용량이 1500cc이니까 900cc이면 딱 중간이기 때문에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는 중간단계 유인원의 두개골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드보아 진화론자의 발표 이후로 진화론은 힘을 얻고 영향을 발휘해서 교과서에 진화론 설이 실리기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 드보아 과학자가 죽기전에 이러한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자기가 30년전에 그 장소에서 발견했던 두개골은 하나가 아니고 세 개이었는데 두 개는 현대인의 두뇌와 같은 용량이었고 하나는 좀 작은 용량이었는데 두 개는 자기가 일부러 빼버렸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의 두뇌이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이렇게 진화론을 하나의 확실한 진리로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까지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진화론 뒤에는 사탄의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을 믿어야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창조신앙을 갖느냐 진화신앙을 갖느냐는 것은 단순한 선택사항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을 선택하는 생사가 달린 문제인 것입니다. 진화신앙을 가지면 우리는 동물과 같은 존재와 마찬가지입니다. 죽으면 끝인 것이죠, 하나님도 성경말씀도 믿음도 필요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3절 이후인 4절 이하를 보게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 공통적으로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는 단어는 바로 ‘믿음으로‘ 입니다. 여기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이세상을 살았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었습니다. 이세상을 살았지만 믿음을 통해서 천국을 살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세상을 살았지만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천국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세상을 살았지만 천국을 사모하며 천국을 바라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믿으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도 이세상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리고 이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고 믿고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