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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의 믿음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8-09-24 (월) 21:20 조회 : 75
설교일 : 2018년 9월 23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히 11장 4절







<히브리서 114>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지난 주에 우리는 히브리서11 1절에서 3절까지 나온 말씀을 가지고 믿음의 성격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은 실상입니다. 실상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휘포스타시스‘ 인데 이는 땅문서, 기초 라는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땅문서만 있으면 그 땅이 내눈에 안보이고 지금은 다른 사람이 그땅에 살고 있어도 그것은 내것이라는 것이죠. 믿음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보이지는 않지만 저 천국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모든 세계가 지어진줄을 압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내눈에 보여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게 보여지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이전에 이미 있었다라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보여지는 우주 만물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이루어졌다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자 이렇게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난 이후에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 믿음의 사람이 바로 아벨입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아벨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난 이후에 그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알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이 오감으로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는 것과 같은 이 오감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육이 아니라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육의 감각으로서는 하나님을 알수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에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보다는 죄를 짓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죄를 짓는 인간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았고 구했던 최초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아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벨을 최초의 신앙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아벨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아벨에 대해서 별로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아벨에 대한 언급은 창세기에 조금, 복음서에 한 번, 그리고 히브리서에2번 나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창세기를 보시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성경은 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셨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나름대로의 이론을 가지고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1. 첫 번째 해석

9 22절에 나오는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설명합니다.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기준해서 해석을 합니다. ‘모든 물건은 피로서 정결하게 되는데 아벨은 양을 잡았기 때문에 피를 흘렸지만, 가인은 곡식을 드렸기 때문에 피 흘림이 없어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다’ 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피 제사” 는 레위기에 가야 비로소 정립되는 제사법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와 피 제사는 시기적으로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에게 알려주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너는 나쁘고 너는 옳다’ 라고 심판하시는 것은 공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백 번 양보해서 이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법을 창세기에 적용한다고 해도 이 해석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레위기의 제사법에는 피 제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곡식제사도 있기 때문입니다. 곡식을 빻아서 드리는 제사 소제라고 합니다 이 소제도 있습니다. 반드시 피를 흘리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피흘림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기는 충분하지는 못합니다. 물론 그럴수도 있겠습니다 마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2. 두 번째 해석

또 어떤 신학자는 아벨은 정성을 다 해서 구별해서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아무거나 막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벨 것은 받으시고 가인의 것은 받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전해오는 기독교 야사에 의하면 아벨은 양치기였는데, 자기 양 가운데서 가장 살찌고 좋은 양을 택해서 제물로 바쳤지만, 농부였던 가인은 수확물인 보리 중에서 가장 빈약한 것을 가지고 제단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아벨의 것은 받으시고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야사와 전설에 의거한 설명입니다. 성경 그 어느 곳을 보아도 아벨은 정성껏 바쳤고, 가인은 대충 바쳤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설명도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해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3. 세 번째 해석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가인은 첫 열매를 드리지 않고 그저 자기 농사의 소산으로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벨의 것은 받고 가인의 것은 받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태어난 것 즉 초태생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초태생을 드린 아벨의 것은 받고, 그렇지 않은 가인의 것은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초태생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유월절 사건 이후에 나온 것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위해서 하나님이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실 때, 이스라엘만은 어린양의 피로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그사실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첫 태생, 첫 소산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기적으로 볼 때 뒤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도 합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네 번째 해석

제물만의 문제가 아닌 예배를 드리는 자의 심령의 문제로 보는 해석입니다.

창세기4 4-5절입니다.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그냥 아벨의 제물과 가인의 제물이 아니라,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입니다. 이 말씀은 제물도 중요하지만,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물과 아벨 이나 제물과 가인이 아니라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수 있는 것은 단지 제물의 문제만이 아니라 드리는 사람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의 세가지 해석는 사람보다는 제물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서 해석해온 한계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벨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가인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요? 성경은 이질문에 대해 대답해주지 않습니다. 아벨은 그냥 가인에게 맞아 죽은 것으로만 나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아벨에 비해 가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쉽게 추측할수 있습니다. 아벨이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이 왜 받으셨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가인과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 4 6-7절입니다.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성경은 가인의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가인은 제사를 거절당한 이유로 분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노가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거절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생긴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이전에 가인의 마음엔 이미 분이 가득 차 있었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거절했다는 것이 빌미가 되어서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었던 것 뿐입니다. , 가인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은 분노, 미움, 시기심이었고 그것은 결국 상처였습니다. 가인은 해결되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 마음의 분노와 시기심과 미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가 다 저마다 상처가 있고 분노나 시기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에 상처가 있고, 분노나 미움이나 시기심이 있어도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내어 놓고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시길 구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기뻐 받으십니다. 그래서 시편 51 17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 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죄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됩니다.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이죠. 그런데 죄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탓에 어떤 사람은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얻게 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예수님 때문에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가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분노와 미움과 시기심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시는 은혜가 될 수가 있지만 이 가인에게는 심판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옳지 못한 심령의 제사가 이 가인에게는 문제가 되었다고 할 수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을수도 있고 분노할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하나님앞에 상한 심령으로 예배드릴수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살인자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통회하지 않고 하나님앞에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바친다고 해서 용서되어지고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을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자기가 분을 가지고 있고 그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남들을 비난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절대로 받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과 그 제물을 받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 죄가 마치 우는 사자가 삼킬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죄가 너를 향하여 기를 쓰고 달려들지만 그것을 물리치고 극복하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놓고 볼 때,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신 것은 적어도 아벨의 내면에는 가인의 것과 같은 것은 없었다고 추측해 볼수있습니다. , 비록 아벨의 내면에도 상한 마음과 상처는 있었겠지만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다스리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오늘 본문은 한단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아벨이 가진 믿음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때의 마음자세를 하나님이 받으셨는데 이것이 아벨이 가진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 분 앞에 마음의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란 내 마음에 상한 것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될 것을 확신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한 마음을 그대로 품고 있는 것은 절대로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벨과 같은 믿음이 있을때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 가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아벨과같은 믿음으로 신앙생활할때 대략4가지의 일이 일어남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1. 예배를 하나님이 받아 주신다

히브리서11 4절은 믿음이 있으면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여부입니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멋있게 치장하고 경건하게 앉아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절대로 받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때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히브리서11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기대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은 항상 기다리시고 나를 온전하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제 아무리 엉망진창의 죄악 가운데 있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어 주시고 변화시키고 회복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예배를 하나님은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아벨은 이런 믿음이 있었지만 가인에게는 이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예배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이다.

마태복음23 3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대하 24:20-22에 나오는 내용. 이스라엘 우상숭배를 질책하다 성전뜰에서 돌에 맞아죽은 스가랴 선지자를 말함)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예수님께서는 핍박하는 바리새인들을 이야기 하면서 아벨을 의인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그런데 아벨에 관해 우리는 두 가지 일을 확실히 알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인의 돌에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벨이 예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은 것은 그가 드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셨기 때문인 것이죠. 아벨의 믿음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셨기 때문에 아벨은 의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이 믿음 때문에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서 내 삶을 증거하신다.

사람들은 끝없이 자기가 자기를 증거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피곤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증거 한다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명예나 학식이나 재물이나 권력 등을 가지고 끝없이 자신을 나타내려고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 자기 증거가 잘 되지 않고, 자신이 증거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분노와 미움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분노하고, 거절감과 절망감에 시달리다가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내 행위를 가지고 내 삶을 증거 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가인후예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인의 후예가 아니고 아벨의 후예입니다.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이 내 삶을 증거 해나가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증거해주시기를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을 증거해주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죽음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증거 하신다.

성경은 아벨이 비록 죽었으나 믿음으로 오히려 말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벨이 가인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세상에서만의 보상을 생각하면서 자주 실망합니다. 아벨은 순교했고, 그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무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죽음은 수 천 년이 지난 후에도 성경을 통하여 계속 언급이 되고 있을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스스로 나의 삶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증거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설사 죽게 될지라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죽음을 통해 말씀하시고 증거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 아벨과 같은 믿음의 생활을 해나갈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벨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으니까 그의 모든 제물도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도 아벨처럼 내 자신이 하나님께 예배가 열납되어질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내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열납되면 나의 모든 제물, 나의 모든 헌신 봉사가 열납되어질것입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졌던 분노와 미움 시기심이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 이러한 마음들을 다스리고 상한 마음으로 나아가십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이러한 우리의 상한 심령입니다. 바라옵기는 아벨처럼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하겠다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아벨처럼 내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나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열납되어지는 복된 신앙생활해나갈수 있으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