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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일때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8-10-15 (월) 21:29 조회 : 98
설교일 : 2018년 10월 14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행 8장 1-8절





<사도행전 81-8>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우리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견디기 힘든 슬픔의 종류가 크게 세가지가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주장합니다. 그것은 첫째는 죽음이고 둘째는 이별이며 그리고 세번째로는 고독이라고 합니다. 죽음 이별 그리고 고독 이 세가지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슬픔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나오는8장은 이 세가지 유형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이별 그리고 고독의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러한 슬픔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슬픔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에 나오는 세가지 종류의 아픔을 먼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하신 뜻을 생각해보는 순서를 가지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아픔을 다 극복하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죽음의 아픔

1절 전반부입니다.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여기서 그는 누구인가하면 그다음 2절을 보시면 스데반인 것을 알수있습니다.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스데반을 장사하고’

그당시 스데반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가장 믿음이 있고 충성스러운 평신도 지도자 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입장에서 볼때 이 스데반 집사의 죽음은 참으로 큰 슬픔이요 큰 손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과 같이 신앙생활을 한 동역자들이나 스데반을 통해 믿음을 가지게 된 성도들은 스데반의 죽음을 슬퍼하며 크게 울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8장 다음에 나오는 9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수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십니까? 이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던 바울 이전의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시키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스데반의 퇴장과 함께 바울의 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있었던 자리는 그보다 더 위대하고 더 놀라운 헌신을 하게 되는 바울이 대신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스데반의 죽음을 헛된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오늘 날의 바울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은 스데반의 죽음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이1, 2, 3차 선교여행을 하는 동안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육신과 감정이 있는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그럴때마다 이 바울은 그옛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 가던 그때 그날, 그현장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수없이 날라오는 돌맹이를 맞으면서 죽어가던 스데반을 보면서 ‘그래 저놈은 저렇게 돌에 맞아 죽어야 마땅한놈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의기양양했던 그때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시 죄인의 심정이 되어 예수님을 전하는 믿음의 길을 계속 걸어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스데반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전에 말씀드린바 있지만 저희 어머님의 장례식날 어머님의 시신을 땅에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날 저희 아버님은 ‘이제부터 예수님을 믿고 신앙 생활하겠다’ 고 고백했습니다. 어머님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한 이후 평생을 남편 영혼을 위해 기도해온 내용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영혼이 이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면 이 사실 한가지 만으로도 어머님의 죽음은 굉장한 귀한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생의 죽음은 우리에게 아픔과 동시에 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줍니다.

 

2. 이별의 아픔

1절 후반부 입니다. 1. ...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도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흩어지니라. 예루살렘에 큰 박해와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신앙생활을 같이 했고 그리고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같이 지내며 살고 있었던 이웃 사람들과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아픔이요 슬픔입니다. 하지만 흩어진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4절입니다.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박해와 핍박 때문에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복음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것 입니다.

사도행전1 8절을 보시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모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리고 그다음장2장을 보시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유대 이웃마을과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흩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요? 하기 싫어서입니다.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싫어서입니다. 그런데 박해를 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져 유대와 사마리아로 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의 아픔이 어찌 의미가 없다고 할 수있겠습니까?

 

3. 고독의 아픔

5절에서 8절까지입니다.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이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아닌 초대교회 일곱 집사를 세울때 기름부음을 받고 세워진 집사 빌립입니다. 이 집사 빌립이 사마리아 땅에서 예수님을 증거할때 치유와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빌립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26절 이하를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 빌립을 광야의 길로 내보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람이 없는 외진곳으로 좌천 시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빌립은 사마리아 지역에서 큰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빌립을 사람이 없는 광야로 갑자기 옮기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전도자에게 사람이 하나도 없는 광야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을 떠난 물고기나 링을 떠난 권투선수처럼 빌립은 굉장히 허전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빌립에게는 이런 고독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야에서 빌립은 한 사람을 만납니다. 바로 에디오피아 내시이죠. 내시이지만 에디오피아의 모든 국고를 맡은 자로서 재무부 장관 쯤 되는 큰 권세가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그 내시를 만나 예수님을 전하게 되었고 그 내시는 믿고 침례(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 내시는 자기 조국인 에디오피아로 돌아갑니다. 스크린에 나오는 지도를 보시면 굉장히 먼 거리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시로 인하여 아프리카 대륙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빌립에게 고독한 인생길을 허락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립이 가진 고독은 참을 만한 가치가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 샬롯 지구촌 교회에서 교회일을 하시다가 어떤 외로움이나 고독감이 경험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로 부터 오해를 받고 외롭고 씁씁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빌립과 같은 계획을 나에게도 주셨다면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내 이 외로움 내 이 고독함은 이겨낼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오늘 본문의 내용중에는 죽음 과 이별 그리고 고독의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새와 같은 우리 인간에게는 아픔이요 슬픔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죽음과 이별 그리고 고독의 아픔을 통해서 선한 결과로 이끌어 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선한 결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포기하지 말아라

, 만일 초대교회 성도들이 스데반집사가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두려워 한 나머지 포기할수도 있습니다. “야, 저렇게 성령충만하고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한 스데반 집사도 비참하게 돌맹이에 맞아 죽었다면 우리에겐 아무 소망없다. 이런 하나님을 안믿는 것이 더 낫겠다. 교회 문닫고 고향에 가서 농사나 짓고 살자” 이렇게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그후에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일어났을때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도망가면서 이제는 다 끝났다라고 생각하고 포기를 해버렸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래요 고난의 최대의 적은 고난 그 자체가 아닙니다. 포기할려고 하는 유혹이 고난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적입니다” 실패는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포기는 안됩니다.

독일 히틀러 시대때 유태인으로서 유명한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 박사가 독일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 빅터 프랭클 박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인생을 포기한 순서대로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건강상태나 고문을 받은 휴유증의 상태에 따라 죽는 것이 아니라 삶을 포기하는 순서대로 죽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훗날에 자기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먹구름을 동반한 폭풍우가 쏟아진다 할지라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비극은 고난이나 실패 때문이 아니라 포기할 때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죽고 정든 고향땅에서 쫓겨나게 되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위대한 역사를 볼수있었던 것입니다.

 

2.고난을 수용해라

오늘 본문을 보시면 초대 교회 성도들의 입에서 원망이나 불평하는 모습을 찾아 볼수없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그들은 이 모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살다보면 이럴수도 있는거야. 인생이 다 이런 거지뭐 그러니까 저 하늘나라가 필요한 것이고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신 것이야’ 라는 식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고난은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그다음에는 무엇이든지 하기가 쉬워집니다. 평상시에 너무 하기가 힘들었던 일들을 쉽게 할 수있습니다. 왜요? 그일을 하는 것이 고난보다는 더 쉬우니까요. 고난을 받아들이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아주 쉽게 하게 되어집니다.

1991년과 1994년 두 번씩이나 미국 최고 의사로 뽑힌 적이 있는 김의신 박사는 암분야에서는 최고중의 한분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그런데 이 김의신 박사가 오래전 한국에 와서 인터뷰를 하던 내용을 본적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암이 치유하게 되는 기적이 많이 일어나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의 시작은 암 치유 방법의 차이가 아니라 환자의 마음의 차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환자 자신에게 생긴 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새롭게 해석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환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암덩어리가 없어질때도 있지만 암 덩어리가 그냥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오래 살아가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고난을 허용하신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고난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고난은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3. 고난중에 내 할 일 하라

,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졌던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거기에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박해와 핍박이 일어나서 할수 없이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지역에 와서 지내고 있으니까 이상하게 생각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아니 당신들은 왜 그렇게 평상시에 싫어하고 미워하는 이 사마리아 땅에 와 있는 것입니까?그러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대한 큰 박해와 핍박이 일어나서 이곳으로 도망오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님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것이고 자연히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까 이전에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났던 것입니다. “아 그래 맞아 예전에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유대와 사마리아 땅에 가서 나의 증인이 될것이라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지. 그러니까 이제 보니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에 지금 순종을 하고 있네” 이러한 깨닫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이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을 내어서 성령충만 받기를 기도했을 것이고 권능을 받아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고난중에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게된다면 그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수 있게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성도입니다. 그럼으로 어려운 환경속에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좀전에 제가 언급했던 빅터 프랭클 박사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고난 때문에 포기를 한사람들에게는 고난은 저주이고 비극이다. 하지만 고난속에서도 그 고난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에게는 그 고난은 놀라운 축복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을 한 이 빅터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 속에서 자기가 이런 수용소 생활해야 할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살아나가게 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지금 당신들이 누리고 있는 그 삶이 그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를 전파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 한마디를 내가 실감있게 훗날에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이 수용소에 와 있다“ 라는 의미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용소에 있게 된 의미를 발견한 이 빅터 프랭클 박사는 깨진 유리병을 가지고 아침이 되면 깨끗하게 면도를 합니다. 그 당시 독일군 병사들은 날마다 개스실과 실험실로 데려갈 유태인들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고난속에서 이 의미를 발견한 이 빅터 프랭클 박사는 계속 제외시킵니다. 깨끗하게 면도를 하고 있는 사람을 실험실에서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것이었죠. 그래서 이 빅터 프랭클 박사는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몇 명 되지 않는 생존자중에 한사람으로 살아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빅터 프랭클 박사는 훗날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발견하면 우리는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수가 있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어떤 것입니까? 정이 들었고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이별에 있습니까? 수평으로의 헤어짐이라면 이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라도 만날 수 있겠지만 수직으로서의 헤어짐이기 때문에 이 지구를 수십바퀴 돌아도 만날수가 없는 영원한 이별의 아픔을 경험했습니까? 그래서 이런 저런 모양의 외로움과 고독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계십니까? 건강 때문에 물질 때문에 그리고 인간관계 때문에 아픔과 고통속에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이 아픔과 이 슬픔을 하나님께서 허용하셨다면 이일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냥 눈물 흘리고 쓰러지라고 이 아픔 이 슬픔을 허용하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하시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십가가에서 내려와 자기를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심판하실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고통을 인내하시면서 죽어갔습니다. 왜요? 그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이 예수님께서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셨기에 온 인류가 살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래서 천국에 들어 갈수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이 아픔과 이 어려움속에서도 내게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해나갈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를 또 다른 빅터 플랭클 박사가 되게 하고 나를 또 다른 사도바울이 되게 할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지금은 내가 아픔이어도 지금은 내가 고통이어도 지금은 내가 눈물이어도 포기 하지 마십시다. 절망하지 마십시다. 이 좋지 않는 환경속에서도 내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십시다. 그렇다면 이 아픔의 현장은 기적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소망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이 샬롯 지구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심령들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인생에 찾아온 슬픔과 아픔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까? 이별입니까? 외로움입니까? 건강입니다. 물질입니까? 인간관계입니까? 대붕되시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선하신 결과를 믿으면서 이 힘든 순간들을 극복할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