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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남은때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8-10-22 (월) 03:11 조회 : 88
설교일 : 2018년 10월 21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벧전 4장 1-6절





<벧전 41-6>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다 거짓말을 하며 살아온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 중에서도 선의의 거짓말을 있고 새빨간 거짓말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은 예를 들어보면 자녀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 간호원이 주사를 놓기전에 자녀에게 주로 하는 말이 ‘이 주사 하나도 안 아파’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더 예를 들어본다면 나이든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 젊은이가 대신해서 들어주면서 ‘하나도 무겁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거짓말은 상대방이 무서워 하거나, 미안해 하지 말라는 동기에서 선의의 거짓말이라 할수 있습니다. 영어로는white lie (하얀 거짓말)이라고도 하죠. 이러한 종류의 거짓말하는 동기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그렇지 못한 새빨간 거짓말이 있죠. 예를 들면 옷 가게에 가서 옷을 입어보았을때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들이 주로 이런 말을 합니다. ‘너무 잘 맞아요. 그 옷이 오늘에야 제대로 주인을 만났네요. 디자이너가 특별히 당신을 위해 만든 맞춤복 같아요’ 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거짓말은 ‘오늘 특별히 당신한테 손해보고 파는 것입니다’ 이죠. 이런것들은 모두 속이 다 뻔히 보이는 새빨간 거짓말 이라 할수 있습니다. 영어로는Red lie 라고 하는 표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장사꾼이 ‘이 물건 손해보고 팝니다’ 라는 거짓말 못지 않게 연세가 많으신 분들께서 자주 하시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빨리 죽고싶다‘ 는 말입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들이나 이웃사람들에게 아무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빨리 죽어야지. 그런데 이 말씀은 그대로 믿어서는 안되는 것이죠? 왜요? 속이 보이는 거짓말이니까요. 사람들에게는 모두 오래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오래 살아 왔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나간 인생을 어떻게 할수 없지만 현재와 앞으로는 나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따라 바꿀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느냐 하는 것 보다는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것인가에 있는 것입니다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리 인생에 지금까지 살아온 때와 그리고 또 이제 앞으로 살아야 할 때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3절을 보시면 ‘지나간 때’ 라는 단어가 있고2절을 보시면 ‘육체의 남은때’ 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고 ‘육체의 남은때’ 가 바로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할때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절을 보시겠습니다.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육체의 남은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육체의 남은때. 이것은 바로 앞으로 남은 우리 인생을 의미합니다. 왜 ’나의 남은 인생‘ 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육체의 남은때‘ 라고 성경은 표현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영이라고 하는 존재는 영원하지만 이 육체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은 죽지 않아요. 영원합니다. 하지만 이 육체는 시간이 지나면 쪼그라들고 낡아지고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다보면 영혼을 담고 있는 육체의 장막이 무너지게 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땅에 있는 인생의 앞날을 ‘육체의 남은때‘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살아온 인생이 있고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살아온 인생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이 훨씬 더 많으신 분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살아야 할 인생이 살아온 인생보다 훨씬 더 짧으신 분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나온 통계를 보니까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79세 정도가 된답니다. 남자는 76세 여자는83세 그래서 평균 79세 정도입니다. 그냥80세로 잡는다 할지라도 저같은 경우는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이 살아온 인생보다 훨씬 더 짧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의 남은 시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지혜자라 할지라도 자기 인생의 남은 시간을 알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아니면 한달 두달이 될지 아무도 알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육체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남은때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예수님의 갑옷을 입고 살아라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갑옷을 삼으라 여기 갑옷이란 평상시때 입는 옷은 아니죠. 전쟁할 때 입는 옷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이 육체의 남은때를 말씀하면서 갑옷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육체의 남은때가 곧 영적인 전쟁 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삶이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에 우리는 내게 평안한 옷을 입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라고 하는 의미는 무장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이니까 주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주님이 가진 마음과 동일한 마음으로 무장하며 육체의 남은때를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가진 마음은 무엇입니까?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십자가를 지실 각오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육체의 남은때를 어떻게 하며 살아갑니까? 내 남은 이 인생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살아갈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은 여생을 좋은곳에서 살아갈수 있을까? 주로 우리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고 마음에 무장을 하고 남은 육체의 때를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을 멸망시키시고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성도에게는 더 이상 고난이 없다고 가르치는 이단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어느곳을 보아도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고난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보십시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얼마나 고난을 받았습니까? 모두가다 고난과 핍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제자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이 육체의 남은 때를 편안하게 지내며 살아갈까 생각하며 살아라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질 마음의 무장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마음의 무장이 중요합니다. 마음의 무장이 잘되어 있으면 웬만한 고난이 와도 두렵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무장이 되지 않으면 조그마한 어려움이 오면 도망가게 되어있습니다. ’한번 시도해보지 뭐 그까짓것‘ 이렇게 시작해서 성공하는 일은 없습니다. 왜요? 고난은 반드시 오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때 마음의 무장이 되어있지 않으면, 즉 마음의 갑옷을 입지 않고 있으면 실패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어떠한 고통이나 아픔이 온다 할지라도 버티고 있으리라 라고 굳게 마음의 무장이 되어있는 사람에게는 웬만큼 고난이 와도 견뎌낼수가 있는 것입니다. 권투 시합하는 선수들을 보십시오. 대부분의 선수들이 마음의 무장이 되기 때문에 웬만큼 맞아도 물러서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공생애 활동을 하시는 동안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예수님께서는 불평하고 원망하신적이 없습니다. 도망가거나 피하신 죽이 없습니다. 왜요? 마음의 무장하고 마음의 갑옷을 입고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마음과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활을 하면 고난도 받을수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 생활을 하면 알면서도 속아줄때도 있습니다. 손해를 보아도 넘어가야 할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예수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입니다. 그럼으로 이 고난은 곧 성도들에게 주어진 특권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고난과 어려움이 왔을 때 그 순간을 이길수 있는 길은 바로 예수님이 지니신 마음으로 무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억울해도 참고 손해보아도 참을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열받아서 못살게 됩니다. 억울하고 자존심 상해서 못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예수님이 지니신 그마음으로 마음의 무장을 하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라.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으셨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적을 행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당연히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듣고 묵상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 성도들 중에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는 하지 않고 맨날 기도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잘 나와있습니다. 예를 들면 데살로니가 전서 4 3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데살로니가 전서5 16-18절에도 하나님의 뜻이 나와있습니다. 16.항상 기뻐하라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소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과 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1. 소극적인 의미의 삶

소극적인 의미는 이방인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3절 입니다.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이 무엇입니까? 앞부분에 나오죠.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음란은 섹스이고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은 술취함으로 정리할 수가 있고 무법한 우상숭배는 우상이라 정리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상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3 5절을 보시면 5.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말씀합니다. 이방인의 뜻은 바로 음란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략과 우상숭배에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모두가 다 복수로 되어있습니다. 복수라는 의미는 그만큼 세상에 가득차있다는 것입니다. 섹스와 술취함과 탐심은 바로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인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인터넷에 얼마나 많은 섹스가 난무합니까? 오늘날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취해서 새벽2시가 되어서 남녀들이 모텔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길거리에 쓰러져 그냥 먹은 것 토한채 잠에 골아 떨어지는 사람들을 홍대입구에 가면 많이 볼수 있다고 해요.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탐심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방인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고 폼나고 멋지게 살아갈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살아갑니다. 그런데3절 마지막부분을 다시한번 보시면. 3.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다 말씀합니다. 족하다 충분하다는 의미이죠. 그런데 이말을 이렇게 적용하면 안됩니다. 내개인으로는 마음껏 한번 폼나게 살아보지 못해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족할때까지 한번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마시고 음란하고 방탕하게 한번 살아보고 돌아서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모순 어법이라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그때의 기간이 얼마이든지 간에 또 얼마나 음란하고 술취하고 우상을 섬기며 살아왔든 지 간에 상관없이 이제 끝내야 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족하다 라고 하는 그말은 이제 더 이상 남은 인생을 허비 하지말고 좋지 못한 습관을 끊어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옛날 과거에 대해서 좋던 나쁘던 미련을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그때는 이방인의 뜻입니다. 정욕으로 살았던 때입니다. 야 그때가 좋았지. 이런 마음을 가지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bcad가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과 예수님을 믿고 난 후가 분명히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예수님께서 내죄때문에 십자가 매달려서서 고통가운데서 죽었습니다. 내죄 때문에 그런데 내가 계속 죄에 끌려 살아가는 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옛날 생활과 습관을 끊어버리고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일이 생기는 줄 아십니까? 세상이 나를 그냥 두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4절입니다. 4.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고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같이 술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으면 친구가 그냥 있나요. 조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무서워 일찍 집에 들어가는 샌님이라느니 이런저런 흉을 보고 놀림감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살아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소극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적극적인 의미의 삶

적극적인 삶은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하나님은 어떤자를 심판하시는 것입니까? 음란과 술취함과 방탕과 그리고 탐심에 젖어서 살아온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여기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죠. 이방인들입니다. 마음대로 음란과 술취함과 방탕과 탐심에 젖어서 살아온 자들입니다. 그들이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이 즉 하나님이죠. 하나님앞에서 자기가 지은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6절 입니다.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이를 위하여(심판을 위하여입니다) 심판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을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죄값을 치루셨다고 하는 이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내용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카톨릭에서는‘이를 위하여(심판을 위하여) 죽은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 말씀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죽은 자들을 위해서 헌금을 많이 하고 구제와 기도를 많이 하면 살아생전에 믿지 않았던 영혼이라도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왜 이렇게 힘들게 신앙생활을 합니까? 그냥 아주 재미있고 멋지게 놀다가 죽게 될 때 남은 재산이 얼마가 되든지간에 자녀들에게 물러주면서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헌금생활을 좀해다오 이렇게 부탁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나는 세상에서 신나게 놀다가 자식들의 헌금과 기도로 인해 천국에 갈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주 잘못된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이 본문은 역사적 배경이 필요한 내용입니다. 그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예수님이 다시 올것이다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복음을 전할 때 성도들에게도 곧 예수님이 오신다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고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님이 오실것이다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큰 환난과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는 성도들이 하나씩 둘씩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죽어가는 성도들을 보면서 당시 살아있는 초대교회 성도들 마음에는 예수님이 오기 이전에 내가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하는 의심과 불안이 있었던 것이죠. 이런 분우기속에서 오늘 본문이 기록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본문에서 죽은 영혼은 예수님을 믿고 죽은 영접한 영혼입니다. 육체로는 죽었지만 영으로는 하나님앞에서 살게 되었다고 말씀하면서 당시 생존해있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5, 6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수밖에 없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심판을 면하게 하는 길이 바로 하나님의 뜻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육체의 남은때에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앞에가서 자신이 지은 죄를 낱낱이 고해서 심판을 받게 되는 일을 피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 복음 6 40절을 보시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내가정과 내 이웃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일 때 성령님이 내안에 들어오십니다. 이 성령님은 살리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역사하는 교회는 치유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귀는 죽이고 갈라지게 하는 영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우리는 살리고 일으켜 세우고 격려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육체의 남은때가 많지 않습니다. 또한 주님은 생각보다 더 빨리 오실수 있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이 육체의 남아있는 시간에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전쟁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갑옷을 입고 전쟁에서 승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뜻대로 살아서는 안되고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인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죽으나 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