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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있으나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8-10-29 (월) 21:07 조회 : 70
설교일 : 2018년 10월 28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벧전 2장 13-17절





<벧전 213-17>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군대를 갔다 오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군대 용어중에 제대말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대 제대를 한달이나 두 달 정도 앞두고 보내는 시간을 제대 말년이라고 하죠. 이 제대 말년이 되면 열외가 많습니다. 훈련도 빠지고 불침번도 서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빈둥빈둥 신문이나 만화책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제대 말년이 된 군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이제 조금있으면 이곳을 떠나 일반 사회로 가게 될텐데‘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갈것인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군인으로서 가져왔던 마음가짐과 행동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도 제대 말년 군인들처럼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잠깐 머물다가 지나가는 곳이고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곳은 바로 저 천국이다라고 하는 사실 때문에 이 땅 위에서의 삶을 대충대충 보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그네의 신분인데 구태여 여기서 바둥바둥 거리며 살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에 제대 말년병처럼 대충대충 살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잘믿는 남자성도들중에 특히 젊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에 열심을 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정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땅 위에서의 삶은 지나치는 곳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고생이 있어도 극복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저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의 질이 지금 이곳에서 결정되어지기 때문에 대충 살아갈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 운동선수로 유명했던 박찬호 전 야구선수와 박지성 전 축구선수를 생각해보십시다. 이 두사람의 조국은 물론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이 박찬호 선수와 박지성선수가 미국과 영국에서 프로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빈둥빈둥 거리며 살지 않았습니다. 한눈팔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박찬호 선수는 미국에서 이방인의 생활을 다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 아주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도 정말 열심히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본국에 돌아와 결혼을 하고 sbs 방송국 해설위원으로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영국 프로 축구팀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도 지금 경기장에 나가면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이 손흥민 선수도 언젠간 선수 생활을 마치고 영국을 떠나 모국인 대한민국에 돌아온 이후에 멋진 인생을 살아가게 될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손흥민 선수는 영국에서 날마다 운동장에 나가 땀을 흘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나그네 신분이지만 대충대충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본향을 바라보며 지금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16절 앞부분을 보시면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에게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이전에 없는 새로운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함.

16절입니다.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영어성경을 보면 이해하기가 좀 더 쉽습니다. (live as servants of God.) 하나님의 종처럼 살아라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사업터에서도 하나님의 종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죄의 종이었고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공중권세 잡은 자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우리 인간의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이 사실을 믿는 자마다 모든 죄와 죄의 결과인 저주와 사망에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이미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런데 믿는 성도들중에는 이 자유를 ‘야 이제 내가 자유자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음대로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믿을 때 얻게 된 이 자유는 아무렇게나 살아가라고 받은 자유가 아닙니다. 이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처럼 살아야 한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이 자유를 저와 여러분이 가장 잘 사용 할수 있는 길은 바로 하나님의 종처럼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내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의 종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이미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라고 설명합니다. 13 14절입니다.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순종하는데 누구에게 순종합니까? ‘왕이나 (14절 수식어 다빼고 나면) 총독에게 하라’ ‘왕이나... 총독에게 하라’ 고 말씀합니다. 왕이나 총독에게 순종하고 모든 제도에 복종하는 이유는 주님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나보다 더 잘났고 더 똑똑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많이 배웠고 인격이 훌륭해서 순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만든 제도가 마음에 들기 때문도 아닙니다.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세우셨고 주님께서 모든 제도를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1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13:1)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이렇게 모든 권세와 제도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때문에 그들의 권위와 모든 제도에 복종해야 합니다.

왕이 총독을 식민지 지역에 보낸 이유는 바로 질서 유지를 위해서 인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본문 14절 다시보시면 “그가(왕이)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는 목적은 질서 유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왕이 총독을 그지역에 보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총독의 말에 순종하게 되면 당연히 질서가 잡히게 되는 것이죠. 이런 질서유지 차원에서라도 우리 믿는 성도들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한국에서 스마트폰 용 무료 전화 응용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워런 카운티 911에 장난전화를 했던 사람이 잡혔습니다. 이사람은 일년전에 그 지역 911에 전화를 해서 ‘나는 지금 AK 소총을 들고 고등학교에 숨어있는데 학생들을 쏘아죽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라는 장난전화를 했습니다. 그때가 미국 시간으로 아침 945분이어서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테러 훈련을 받은 특수팀을 투입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카운티에 있는 중고등 학교와 대학교에 들어가는 모든 거리를 봉쇄했습니다. 미국 abc 뉴스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생방송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4 시간동안 구석구석을 조사 해보았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장난전화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고 내린 경계를 해제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후에 이번엔 뉴욕 경찰 신고 센터에 같은 발신처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이렇게 말을 했답니다. 당신 아들이 내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당신의 가족을 살해하겠다” 그래서 미 국토 안보국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미국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으로 여기고 조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결과 전화가 한국에서 스마트 폰용 무료 국제 전화 에플리케이션을 이용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경찰청에 협조를 요청했고 그 이후에 한국 경찰청은 1년 가까운 추적 끝에 당시 육군 일병으로 군복무중인 이 모씨를 검거했던 것입니다. 장난전화를 한 당시는 군인이 아니었는데 조사하는 시간이 일년이 조금 지난 사이에 이사람이 군대갈 나이가 되어서 군입대해 일등병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미국에서 이사람에게 요구하고 있었던 것은 손해배상이었습니다. 그사람이 진 죄값은 한국에서 받아도 좋지만 그 장난전화 때문에 들어간 비용 8 1057불은 물어달라 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행동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 질서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회질서가 무너지면 무법천지가 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던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지 사회질서 유지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이 미국사회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질서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위정자들과 그 모든 제도에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모든 위정자들의 권위와 제도에 복종해야 합니까? 무조건 복종을 해야 한다면 일제시대때 신사참배도 해야 하고 여성 위안부 동원도 지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당시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였고 순교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우상에 절하라고 하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여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짐을 당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하다가 사자 굴속에 던짐을 당했습니다. 성경은 무조건 모든 제도와 권위에 복종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순종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주를 위하는 것인가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권위와 제도에 대해서는 복종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진리를 버리고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에는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책망한 것처럼 우리 믿는 성도들도 선지자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거나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 아닌 경우는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2.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함.

15절입니다.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곧 선행으로...

우리나라 성경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와 ‘하나님의 뜻’ 이라는 단어가 빠져있습니다. 영어성경과 원문에는 이 단어가 있습니다. 왜 빠져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Because It is God's will that...이렇게 기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성경 원문을 정확히 번역하면 이렇게 표현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을 행하여야 할 이유는 어리석은 자들의 입을 막기 위함에 있기 때문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입을 막는 것에 있습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들의 말을 영어로 보시면 ignorant talk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이그노런트 토크‘ 는 단순히 지식이 없는 무식한 사람의 말이 아닌 진리를 거절하는 사람의 말을 표현할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어리석은 사람은 예수를 대적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찬식을 하는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사람들‘ 이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렸습니다. 그리고 ’로마시내에 불을 지른 자들은 기독교인들이다‘ 라는 소문을 퍼트리고 온갖 누명을 덮어 씌웠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본문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기독교를 비방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기독교 안티 싸이트에 들어가 보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면서 오늘날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모조리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사람들 앞에서 선을 행하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내마음과 내 기분 같으면 같이 맞받아 치고 싶지만 차라리 선을 행하며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고 난후에 얻게 된 이 자유를 가지고 선을 행하는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비난하고 욕하고 모함을 해도 우리는 참 자유자는 선을 행하는 자유함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적극적인 선을 행함으로서 참자유자처럼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3. 사랑하고 공경하며 살아야 함.

17절입니다.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모든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여기서 형제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왕을 존대합니다. 존대는 존경하고 귀하게 대우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비교하고 경계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공경하고 사랑하며 존대할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은 모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매사에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 7절을 보시면 주께 하듯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사람이나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면 사람을 사랑할수 있고 공경하면서 살아갈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성공을 경험하기도하고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오늘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오늘 나와 만나서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순종하지 못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순종하지 못하는데 또 어디에서 그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가까이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한번 말해보십시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존경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자유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얻게된 자유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종으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의 삶은 주님 때문에 위정자와 모든 제도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존경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내 자유함을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겠다고 결단을 하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