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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 제사드리는 자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8-11-06 (화) 20:22 조회 : 71
설교일 : 2018년 11월 4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시 50편 22-23






<50 : 22-23>

 

22.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의 달을 맞이해서 몇 주동안 감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감사는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수 있을뿐만 아니라 그 감사가 우리 신앙의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 종류의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사람입니다.

 

A.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

22절입니다. 22.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지금 하나님은 누구를 향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방인입니까? 아니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언약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잊어버렸노라’ , 그러면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번도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한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상관이 없어요’ 이렇게 공개적으로 대놓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원망 불평을 한적은 있어도 하나님은 없다고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원망 불평 한다는 것을 뒤집어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열심히 하나님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8절입니다. 8.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하나님께서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너가 항상 번제를 내게 드렸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수없이 많은 예배 가운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나를 잊어버렸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감사로 제사를 드리지 아니했기 때문에.

14절 전반부입니다.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무슨 말입니까? 제사를 드렸지만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마음에 뭐가 없었다는 의미입니까? 감사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제사의 횟수나 제물의 양에 대해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마음을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진실함이 없는 가식적이고도 형식적인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가식과 형식이 무엇인가 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 많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의 마음속에는 감사함이 없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소유의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9절에서 13절까지 하신 말씀을 요약해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너희들이 내게 드리는 모든 번제물들은 너희의 것이 아니라 내것이다’는 것입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10.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이렇게 모든 것이 내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곧바로 14절 앞부분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그러니까 너희들이 많은 제사를 드리지만 감사로 내게 드리는 제사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제물의 횟수나 양에 대해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많은 제물과 제사를 드리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감사가 없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십니다. 자 따라 해보십시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은 예배를 드리는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쩔수 없이 의무감 때문에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이방종교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방 종교에서 드리는 제사와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그 예배의 대상과 그 형식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그들이 드린 이방종교의 제사는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제사를 왜드립니까? 신의 노여움을 달래고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또 신의 축복을 조금 더 받아볼려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는지 모릅니다. 이전에 제사를 지내보셨던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스크린에 나오는 제사상을 보십시오. 저기 제사장에 올려지는 것이 그냥 아무렇게나 올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가 있습니다. 인터넷을 살펴보니까 그절차가 굉장히 복잡하였습니다. 어동육서 라고 해서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으로 놓아야 하고 두동미서 라고 해서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으로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동숙서 라 해서 김치는 동쪽 나물은 서쪽으로, 좌포 우해 라 해서 포같은 종류는 왼쪽에 젓갈종류는 우편에, 홍동백서 라고 해서 붉은색 과일은 동쪽에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줄로 놓는데 제 1열은 밥 과 국, 2열은 젓 과 전, 3열은 탕, 4열은 포 와 나물, 5열은 과일 과 자류 순으로 놓아야 한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절차가 있었고 지방을 쓰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합니까? 저희 어머니는 모태 신앙이었지만 안 믿는 집안으로 시집을 가셔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 제사를 드린적이 있습니다. 없는 가운데서도 제사때는 제일 좋은 음식을 장만해서 드리잖아요. 그리고 그날은 아버지와 같이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목욕도 하고 밤 열두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지극 정성입니다. 아마 지극 정성을 따지자면 예수 믿는 성도님들이 드리는 예배를 능가 할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뭐가 없습니까? 신을 노엽게 하면 안된다고 하는 두려움은 있지만 제사를 드리는 대상에 대해서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축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제사의 본질인 감사를 잊어버리고 감사하는 마음도 없이 억지와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함이 없이 제사를 드리는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나를 잊어버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던져버렸기 때문에

17절입니다.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이 말씀에 앞서 16절을 보시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언약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언약의 말씀이 있었는데 삶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교훈을 미워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자기의 뒤로 던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와 여러분이 내 자녀에게 무엇을 주었는데 그 자녀가 자기 뒤로 던져버렸습니다. 부모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등뒤로 던졌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이 공공연하게 무시당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자기들의 삶속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멀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18절입니다.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어떠했다는 것입니까? 도둑들과 연합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삶속에서 이권에 개입을 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도둑질하지말라고 하는 말씀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속에서는 도둑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간음하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지만 간음하는 자들처럼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며 살았고 우상을 섬김으로 영적인 간음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는 이었지만 실제적인 삶속에서는 도둑질하고 간음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나를 잊어버렸다‘ 여러분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등뒤로 던져버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비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요? 22절입니다. 22.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왜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까?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하나님이 나라를 찢으신다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나라가 두동강이 날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찢으신다면 남편과 아내간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모와 자식간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사업을 찢으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우리의 건강을 찢으시면 우리 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1938 9 18일 평양 서문외 예배당에서 제 27회 총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 총회에서 일본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로 결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총회에 참석을 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즉시 일본 신사에 가서 저렇게 머리를 숙이고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거절한 사람들을 교회서 제명을 시켰습니다. 주일 예배중이라 할지라도 12시 사이렌이 울리면 일본 신사가 있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 나라 성도들은 대부분 일제 말기에 하나님을 버리고 배교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를 해서 일본 태양신을 섬겨 영적인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둘로 찢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를 결의했던 총회가 열렸던 그 평양은 기독교를 핍박하는 공산 괴뢰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평양 장대현 교회가 세워졌던 바로 그 자리에 금으로 입힌 김일성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김일성 동상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절하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찢으실 것입니다. 그럼으로 절대로 감사함이 없이 가식과 형식으로 예배를 드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돈 때문에 사람 때문에 환경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등뒤로 던져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B.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

23절입니다.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예배를 드리는 사람 가운데 감사합니다 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을 보시면 감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예배와 헌금을 아무리 많이 드려도 그 드리는 사람의 마음속에 감사가 없다면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제사를 받으시지 불평과 원망속에서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빌립보서 4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때도 찬양을 할때도 그리고 또 말씀을 들을때도 감사함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싶어도 들을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몇년전에 북한 지하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예배를 드리거나 아니면 성경책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이 되면 그 즉시 총살형이나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서 평생 중노동하다가 거기서 죽는 것입니다. 지금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있는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수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속에서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우리나라 TV에 방영되었습니다. 2007년도에 예배를 드렸던 장면인데 그 장면을 보시면 벽에 붙어있는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떼어서 뒤집어 놓습니다. 우상숭배를 할수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중에 한 자매님은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 하나님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왜 우리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주시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나서 찬양을 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우리는 이 찬양을 부를 때 그냥 부르지만 이분들은 이 찬양을 부를 때 목숨을 걸고 부릅니다. 누군가가 그 찬양 소리를 듣으면 죽는 것이니까 목숨을 걸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 이분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을 방영한 것입니까? 이분들이 다 처형을 당했기 때문에 방영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찬양을 부르다가 발각이 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찬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말씀을 듣고 찬양을 드릴수 있음에 감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

23절입니다.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은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감사함으로 찬양을 하고 감사함으로 기도를 하고 감사함으로 헌금을 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함으로 말씀을 받고 감사함으로 세상속에 나아가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수준높은 성가대의 찬양이 아닙니다. 크고 화려한 예배가 아닙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뒤집어보면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때가 많습니다. 내가 돈벌고 출세하고 유명해지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로는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한가지 사실은 내가 인생의 풍랑과 어둡고 고통의 인생의 밤 가운데있을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감사의 기도와 감사의 찬양을 드릴수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 저와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실패가운데서도 감사할수 있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홀로 있어도 혼자가 아닙니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한미순 씨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한미순 씨의 소원은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이 너무 가난해 공부를 할 수 없게되자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밤에는 전자 부품 공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방송통신대학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기로 하였는데 결혼을 한 달 앞두고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교통사고로 목아래로는 신경이 완전 마비되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절망의 자리에서 절대 희망이 되시는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움직일수 있는 목위 부분인 입술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은 그 책에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입에 붓을 물고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는 순간 저는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치아가 뻐근하고 입에선 침이 흘러나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입안이 다 헐어 하루에도 수십 번 붓을 뱉어버리고 싶었지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시 붓을 물었습니다. 뜻밖에 찾아온 고난으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절망하며 수없이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언제나 함께 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닙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녀는 절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잃어버리고 사라진 것을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 새로운 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어떤 고통, 어떤 아픔 속에서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왜 우리가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2. 하나님을 볼수 있기 때문.

23절입니다.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무슨 의미인가 하면 감사로 예배를 드리면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될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그 행위를 옳게 하는 것은 바로 문맥을 볼때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고 그 능력을 경험하게 하리라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을 보시면 남유다 여호사밧왕때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 사람들이 연합하여 공격을 해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여호사밧왕은 성가대를 조직하여 전쟁터에 나갑니다. 역대하 20 21절입니다. 21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지금 여호사밧은 전쟁을 하러 나갑니다. 전쟁을 하러 나가면 군가 같은 씩씩하고 사람의 감정을 돋우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지금 노래 내용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 감사하세... 감사의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일이 벌어졌나요? 그다음 22절입니다. 22.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하는 찬양을 드렸더니 하나님이 적군들을 다 물리쳐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보디발 장군 아내로부터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요셉의 인생을 살펴보게 되면 억울하게 당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한번도 누군가에게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형들이나 보디발 장군의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만일에 요셉이 보통 사람들처럼 형들을 원망하고 보디발과 그 아내를 원망하고 살았다면 하나님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워주셨겠습니까? 우리가 요셉처럼 감사할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병도 낫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닫혔던 것이 열려지게 되고 감사할 때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입니다. 감사하십시다. 비록 내상황이 감사할 상황이 아니라 할지라도 감사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면 더 감사할 환경이 주어지지만 불평하면 있는것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찢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찢으시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성숙하게 하심에 목적이 있습니다. 호세아 6 1절입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와 감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낫게 해주십니다. 그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감사로 예배를 드림으로 행복하고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어떠한 환경속에 있다 할지라도 날마다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심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