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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여관에 머물곳이 없음이러라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8-12-17 (월) 10:47 조회 : 224
설교일 : 2018년 12월 16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눅 2장 1-7절



<21-7>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다음 주는 성탄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이번주와 다음주에는 성탄절을 주제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년 중에 교통사고가 제일 많이 나는때가 바로 크리스마스이고 1년 중에 절도, 강도 등 범죄가 가장 많이 나는 때도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1년 중 아버지가 없는 사생아가 가장 많이 생기는 때도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에서 나온 통계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온 통계이니까 오늘날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많이 변질되어가고 있는지 알수가 있습니다. 원래 성탄절은 하나니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가장 사고를 많이 치는 날로 변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성탄절 하면 예수님이 이세상에 태어나신날, 예수님의 생일,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오늘날은 술 마시고 파티하고 샤핑하는 날로 변질되어버린 분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세상에 오신 날이죠. 우리 대부분은 이세상에 태어날 때 주변사람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게 됩니다만 예수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본문7절 후반입니다. "7.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래서 예수님은 외양간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누이어졌는데 여관과 외양간의 차이는 단 하나이죠. 여관은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고 외양간은 짐승들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외양간에서 태어나 짐승들의 먹이통인 말구유에 누이신 의미가 무엇입니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셨을때는 사람들이 있는 환경에 예수님께서 계실곳이 단 한군데도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나아가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인간이 관심을 가지는 외모나 겉치장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임을 알수있습니다. 이세상에 오실때 인간의 관심을가지지 못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살아 공생애활동을 하시는 동안에도 마음둘곳이 없었음을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마태복음 8 20절입니다. 20.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인자는 머리둘곳이 없다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계시는 동안 주변환경이나 사람들 마음속이나 그 어느곳에서도 마음을 두고 편하게 머물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머물게 한 곳은 바로 외양간의 말구유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태어난 장소가 말구유 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말구유에서 태어날수는 없습니다. 말구유는 공간이 좁아서 마리아가 누워있지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구유는 아기예수가 태어나서 뉘인 자리이지 태어난 자리는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예수님이 외양간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누이셔야 했던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그당시 로마의 황제 이었던 가이사 아구스도가 온 천하로 호적하라고 하는 영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인구조사를 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인구조사를 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을 내야 되는 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 황제 자신의 통치 기반을 든든하게 다질려고 하는 것에 가장 큰 목적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라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자기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호적 등록하러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 때는 마리아가 이미 아기 예수를 잉태하여 해산할 때가 가까워질 때 이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집에서 해산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지만 로마 황제의 명령때문에 할수 없이 그 무거운 몸을 끌고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서 유대 베들레헴 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곧 해산을 하게 될 몸이라 서둘러 여관을 찾았지만 가는 곳곳마다 방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과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마음이 조급하겠습니까? 결국 빈방을 못 얻어서 부득불 어느 집 허름한 헛간 같은곳에 들어가서 거기서 아기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기를 눕힐 침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기를 받아 포대로 싸서(강보로 싸서) 짐승들이 먹는 음식을 담아두는 구유통에 눕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막상 오실 때, 우리 인간들이 드린 것은 고작 구유통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이렇게 말한적이 있습니다. "우리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우리 인류가 최초로 준 선물은 구유이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그분에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은 십자가였다" 지옥에 떨어지게 될 우리 인간을 천국에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예수님에게 우리 인간이 처음으로 준 것은 구유이었고 맨마지막 선물은 십자가였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지옥불에 떨어져 고통속에서 영원히 살아가야 할 마땅한 존재들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2천년 전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여관문을 두드렸지만 그 누구도 예수님을 모실 빈방하나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 들어오시길 원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3 20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왜 문을 두드리시는 것입니까? 문안에 들어오시길 원해서이죠. 주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영적인 교제를 나누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 문을 열지 않습니다. 왜요? 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실 방이 나에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을 열지 않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우리 마음밖에 두면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분들을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 우리인간들이 예수님에게 드릴 방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주님이 머무실수 있는 방을 언제나 준비하며 신앙생활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당시 예수님에게 드릴 방이 없었던 이유

1.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

그당시 로마 황제의 명령에 의해 사람들은 호적등록을 하기 위해서 모두가 다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그러니까 여관마다 빈 방이 없을수 있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방들을 다 차지해 버려서 마리아 요셉에게까지 차례가 오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내용은 마리아가 해산하게 될 몸인데도 불구하고 가는곳 마다 여관 주인이 방하나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사람들은 먹고 살아가는 일에만 너무 열중하다보니까 이땅에 오실 예수님께 드릴 빈방 하나 내놓을 여유가 없었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영적으로 교제하시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 마음에는 이미 너무 많은 세상의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마음의 방이 없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또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얼마나 분주한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서도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면 무엇을 할까?’ ‘이제 곧 성탄절이 다가 오는데 내가 아직도 카드를 보내지 않은 사람이 있나?’ ‘이젠 시간이 없는데 카톡으로 성탄 메세지를 보낼까?이런 저런 생각이 우리 마음의 방들에 꽉차있어서 이것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마음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알고 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가시나무’ 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곳 없네....’ 그래요 우리는 내 안에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아서 예수님을 모실 방이 하나도 없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요.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세상의 생각으로 가득 채워놓고 살아간다면 예수님께서 머무실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우리 안에는 없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이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이 머무시는 마음의 방을 마련할 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당시 예수님에게 드릴 방이 없었던 이유

2. 사람들의 영적인 무지 때문

사실 방이 다 차 있었던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이가 누구인지 바로 알기만 했다면 절대로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옛날에 제가 신학교에 다닐때 목사님중에 사모님이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로 일하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그 사모님이 말씀하시기를 비행기 좌석에 승객들이 다 차도 VIP 들을 태울 1등석 자리는 언제나 남겨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빈 좌석이 없어서 그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 비행기 회사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VIP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는 것입니다. 호텔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찼다고 해도 정말 귀한VIP를 위한 방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당시 베들레헴 여관도 마찬가지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세상에 나오실 분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여관주인이 내놓을수 있는 방이 왜 없었겠습니까? 자기방이라도 내놓았을 것입니다.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이땅에 오시는 것을 알았다면 그 누가 그분에게 방을 내놓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그분 때문에 내가 이땅에서 지금까지 먹고 살아갈수 있는 것을 알았다면 자기들의 방이라도 내놓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안다고 하면 아무리 바빠도 예수님을 위해 시간을 마련하고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군지 모릅니다. 심지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지 못합니다. 많이 듣어서 머리와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 마음과 가슴을 열어놓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시는 동안에 사람들은 그분을 멀리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둘곳이 없도다 라고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그만큼 사람들은 예수님을 멀리 했던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0절과 11절입니다.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는데 세상사람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요? 그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안다면 예수님을 밖에 둘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식으로 알고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1 12).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시는 구원자 되십니다. 그럼으로 이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예수님만큼은 내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성경을 많이 보았고 그래서 성경을 많이 알았습니다. 성경을 많이 보고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곧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당시 성경을 많이 읽고 알고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 39 40절입니다. 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은 머리와 이론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마음문을 열고 영적인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 교제를 해야 서로를 알아갈수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럼으로 나의 구원자되시는 예수님에게 마음의 방을 내드릴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영적인 교제를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당시 예수님에게 드릴 방이 없었던 이유는

3.사람들의 무정함 때문

정이 없는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싸여있기 때문입니다.

. 그당시 여관의 방들이 다른 사람들로 다 채워졌다고 하십시다. 그리고 또 그 당시 사람들이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 예수를 잘알지 못했다고 하십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만삭이 되어 아기를 해산할려고 하는 여인을 문밖으로 내쳐버렸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요셉이 얼마나 많이 자신들이 처한 사정을 하소연 했겠습니까? ‘지금 제 아내가 해산을 할려고 합니다. 제발 저희들에게 아무 방이라도 좀 내어주십시오. 한시가 급합니다.이렇게 사정 사정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외면 해버리고 아기예수의 부모를 내쳐버린 것입니다. 사실 그들에게 방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위해 준비해놓은 방은 있었을 것입니다. 하다 못해 자기들이 쓰는 방도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가진 마음이 문제입니다. 아기 예수를 가진 부부의 안타까운 사정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방하나는 준비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인정이 없는 무정한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께서는 구유에 누이시게 된 것입니다. 여관주인뿐만 아니라 그사정을 보면서 알고 있는 그당시 여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정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은 얼마나 정이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까? 이 성탄의 계절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노래하고 축하하고 기뻐하지만 정작 위로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외롭고 배고파 합니다. 오래전에 크리스마스날 밤에 술취한 사람이 거리에서 잠을 자다가 추워서 죽었다고 하는 뉴스를 본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사람을 그냥 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뉴스는 사실 큰 기사꺼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평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감각이 없는 무정한 사회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딤후 31-3절을 보시면 말세에 일어나게 될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무정하며 정이 없이 무감각적 상태로 살아가는 모습들로 인해 말세에 성도들은 마음의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니까 자연히 남에게 대한 사랑과 정이 사라져 가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에게 방을 내놓을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네가 먼저 주라 네가 먼저 섬기라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마음에 들어오시게 할수 있겠습니까? 자기만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겐 정말 부담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교회마다 성탄절이 되면 여러 가지 행사나 모임으로 바쁘게 지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는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를 우리 마음에 영접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교제하면서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것 나도 좋아하고 예수님이 미워하시는 것 나도 미워하면서 지내는 것이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제 성탄절을 맞이하는 이싯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분주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들어오실수 없는 삶을 내가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한번 돌아보십시다. 예수님이 거하시고 머무실 마음의 방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에겐 가장 중요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문제 해결자가 되십니다. 그분은 내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연약함과 나의 아픔을 다 아시고 계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2천년전에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때는 그누구도 빈방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이 머무실 빈방을 원하고 계십니다. 사실 주님이 우리 마음의 방에 들어오시면 주님이 내마음을 주장해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일어나는 불안 염려는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장애물에 대한 해결책도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 마음의 방에 오시길 원하십니다, 성탄절을 맞이하고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단하나입니다. ‘내게 줄 빈방이 있느냐?“입니다. 바라옵기는 그당시 여관 주인들이나 그 여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어도 예수님에게 마음의 빈방을 내주면서 주님과 더불어 신앙생활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