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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8-12-25 (화) 23:33 조회 : 36
설교일 : 2018년 12월 23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누가복음 2장 25-33절





<누가복음 225-33>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아마 지난주에 이곳 저곳에서 샤핑을 해보신 성도님들께서는 성탄절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성탄절은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날인 것이죠. 그런데 사실 첫 번째 성탄절은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고 기뻐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첫번째 성탄절은 온세상 사람들이 기뻐한 것이 아니라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탄의 기쁨을 누릴수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고 동방에서 온 동방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입니다. 누가복음 2 14절을 보시면 밤에 양을 지키고 있는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서 이런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우리는 천사가 그당시에 전해준 이 메시지에 대해서 대부분의 내용을 다 생략해버리고 ‘하늘에 영광 땅에 평화라고 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에 평화가 왔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지 2천년도 더 지났지만 지금 이세상은 평화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님이 오시기2천년 전보다도 더 시끄럽습니다. 그때보다 전쟁과 기근에 대한 정도가 훨씬더 심하고 더 자주 들립니다. 그렇다면 천사가 전해준 메시지가 틀린 것입니까? 물론 그것은 아니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평화는 평화지만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평화가 아닌 것입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중에 평화’ 입니다. 그러니까 이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참 평화를 경험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내가 포함되어져야 합니다. 그당시에 누가 기뻐하심을 입었습니까?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이었고, 동방에서 온 동방 박사들이었고,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므몬이었고 바로 본문뒤에 나오는 안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그당시에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세계 인구숫자는 2억 정도 이었다고 합니다. 1 5천 명에서 삼억까지 추정 숫자가 다양합니다만 평균 잡아서 2억으로 보면 무난하겠습니다. 그당시 2억의 인구중에서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이렇게 손꼽을 정도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이 다가오면 기뻐하고 축제분위기속에서 지냅니다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수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강을 경험하며 세상을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시므온처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가 될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자가 될 수있습니까? 다시 말해 본문이 보여주고자 하는 시므온이 가진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1. 주님오심을 간절히 기다림.

25절 말씀입니다.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이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다’ 는것은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난과 고통에서 구원해주시는 메시야가 오셔서 지금 이 힘든 삶이 위로를 받게 되는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이 매일 매일 드리는 기도중의 하나가 바로 “나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위로를 보게 하소서”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위로’ 즉 메시야가 와서 위로해주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시 시므온은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시므온은 기다리되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는 기다리되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는 기다리되 오늘일지 모른다, 내일일지 모른다라고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 즉 구원자가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을 보시면 동방박사가 헤롯왕에게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헤롯 왕이 율법학자들을 불러서 물어보니까 율법학자들이 정확하게 즉시로 대답하고 있는 장면이 마태복음 25절에 나옵니다.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대 베들레헴입니다 라고 율법학자들이 즉시로 대답을 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구약 성경 미가에 예언된 이 말씀을 구구 절절히 암기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그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야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장소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첫번째 성탄의 기쁨에 동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요?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간절히 기다리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은 머리의 영역이고,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가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평강의 왕이심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고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얻게 되고 찾게 되고 열리게 된다는 성경구절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찾고 구하고 그리고 문이 열리게 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왜요? 기다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은 한두번 기다려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한두번은 기다려 볼수가 있잖아요?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기다림은 집 바깥에 나간 주인이 집에 돌아올때까지 하인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 36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집바깥에 나가있으면 하인은 주인이 집에 언제 돌아오더라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얼른 나가서 문을 열어주고 편히 쉴수 있도록 안방을 정리해놓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남편이 어떤 일이 있어서 바깥에 가면 아내는 집에서 자기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자식이 바깥에 나가있으면 부모님들은 자식이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일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응답이 되기를 기다리다가 일주일 이주일 지나게 되면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집주인이 바깥에 나가면 하인이 하루종일 문앞에 서서 주인이 문두드려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의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기다림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것입니다. 이런 기다림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응답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응답으로든지 아니면 다른 모양으로든지 어짾튼 응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이런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시므온은 기다렸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메시야가 온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그것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므온에게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시므온이 예수님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시므온은 소망으로 가득찬 일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다림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인생과 별로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은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주님이 이루어주시던 이루어주지 않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을 수가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만에 하나 내 소원대로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주님의 기뻐하심을 입을수 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강의 마음으로 이 염려와 불안의 시대를 극복하며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바로 예수님이 다시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신앙을 가지고 오늘도 내일도 내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나가면서 신앙생활하는 사람입니다. 그럴때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맛보며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내게 주어진 일에 충실히 하면서도 주님의 위로하심과 응답을 기다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

25절부터 27절입니다.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각각의 절마다 반복되어 나오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을 바로 ‘성령‘ 입니다. 25절을 보시면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성령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26절을 보시면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그리고 27절을 보시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자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만날수가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날, 그 순간에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메시야가 오심을 놓치고 있었을때 시므온이 놓치지 않고 그 기쁨에 동참할 수가 있었던 것은 성령의 감동에 민감하게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순서를 보시면 성령이 그위에 계시더라, 그다음에는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령이 계시는 것과 성령의 지시와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은 시므온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종종 그것을 놓치고 지나간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처음으로 부르실 때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쳤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아‘ 이렇게 세 번씩이나 불렀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이 아니라 엉뚱한 엘리제사장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습니까‘ 이렇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무엘처럼 우리는 성령의 지시하심과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을 종종 그냥 치나쳐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므온은 이날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이날 성령께서는 시므온에게 거창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시므온이 언제나 출입했던 성전이었지만 그날은 웬지모르게 보통날보다 성전에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히 생겼던 것입니다.

시므온은 성령이 내 안에서 조그마한 음성으로 말씀하실 때 즉각적으로 순종한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자기 마음속에 조그마한 음성으로 살짝 속삭이면 시므온은 벌떡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것을 반대로 생각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거창한 성령의 역사를 기대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꼼짝 못하도록 사로잡아서 내가 옴짝달삭도 하지 못하고 나를 성령의 뜻대로 움직여주시는 그런 성령의 권세와 능력을 우리는 기대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가지 기억하세요. 자신의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자상하고 가장 부드럽고 그리고 가장 인격적인 방법으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냥 가만히 두었다가 필요하면 어느 날 갑자기 신들린 무당처럼 저와 여러분은 막 흔들어버리고 칼춤을 추게 하는 이방의 신과는 다릅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을 주어서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은 감동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때에 나에게 감동을 주시고 스스로 일을 하게 하십니다. 강요해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주셔서 일을 하게 하십니다. 죄 많은 나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대신해서 사랑하시는 아들을 심판하시는 그 하나님께는 내마음을 감동케 해서 일을 하게 하십니다. 바라옵기는 성도님들마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봉사를 할 수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에 아기 예수의 부모는 첫 아들이 태어났을 때에 율법의 규정된 대로 행하기 위해서 멀리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서 예루살렘에까지 왔습니다. 그러니까 아기 예수의 육신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대로 순종하기 위해서 거기 성전에 까지 들어왔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왔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참 평화를 맛보기 위해서는 성령이 내마음속에 어떤 감동을 주실 때 즉각 순종해야 하는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시므온처럼 성경 말씀에 기록된대로 살아가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강을 경험하며 세상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요한복음 19장을 보시면 요즘 국회의원 출신이라고 할 수가 있는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죽고 난 이후에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등장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몰약과 귀한 향품으로 처리를 하고 새 무덤에 안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얼마나 후회를 했겠습니까? 내가 왜 진작 예수님이 살아계실때에 예수님과 더불어 같이 살아가지 못하고 숨어있다가 이렇게 뒤늦게 예수님이 죽고나서야 예수님의 제자인것을 밝혀야 했던가?에 대한 후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일은 성경에 이미 다 예언이 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처럼 시신이 처리되어서 부자의 묘소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이미 성경에 예언이 되어져 있었습니다. 다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그일을 했을 뿐입니다. 제자들이 다 도망을 가버린 상태에서 예수님의 시신마저 버림받게 되었을때 아리마데 요셉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지금 이상황에서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 라고 하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리마데 요셉에게 그런 마음이 생겨도 이것저것 따져서 그냥 가만히 있을수도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나서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면 다른 공회의원들이 나를 쫓아낼지도 모른다. 나를 감옥에 넣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하고 그냥 눈 딱감고 지나갈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이사람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것은 내가 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나오게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중요한것은 말씀을 통해서 내심령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일에 내가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작은일에 순종을 하지않고 피해버리는데 성령님께서 무슨 큰일을 맡겨주시겠습니까?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서 무슨일을 하실수가 있다고 기대를 하시겠습니까? 그래요. 내몸이 봉사할수 있을 만큼 건강할 때 그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때 늦은 봉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한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나에게 축복입니다.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감동 즉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입니다.(딤후 3 16). 바라옵기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이 성경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심으로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과 놀라운 감격을 경험할 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기쁨소식을 나눔

시므온은 기쁨을 전달했습니다. 29절에서 33절입니다.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주재여” 주여 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32절을 보시면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이제 이 아기가 이방나라를 비출것입니다. 유대나라를 벗어나 이방인 온 세상을 비추고 구원할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영광을 제가 보았습니다. 이런 의미의 찬송을 시므온은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므온의 찬송을 누가 들었습니까? 33절을 다시 보시면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그당시 성전에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들은 것이 아닙니다. 성전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 구원자 메시야 나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찬양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기 예수의 부모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참 복음은 전세계에 모든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전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기쁨과 참 평강이 전세계에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와도 받을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규모로 동시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을 맛볼수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때보다 통신 수단이 발달하기 시작한 20세기에 아기 예수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페이스 북과 트위터를 통해서 아기예수 나심을 순식간에 전세계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정보의 습득이 아닙니다. 복음은 지식의 전달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내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지식으로 알게되어지는 차원이 아닙니다. 머리에서만 그치게 되는 지식이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일대일로 만나게 되는 사건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다윗이 평생토록 고백한 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입니다. 이 예배의 자리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은 우리들중에 임하십니다. 하지만 만남의 경험은 개별적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먼저 되고 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하나님으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이 누렸던 성탄의 기쁨은 그 자리에 있었던 아기의 엄마와 아빠에게 전달이 됐습니다. 기쁨은 전달됩니다. 성탄의 기쁨은 성령을 통하여 시므온에게 전달되었고 이 시므온을 통하여 아기예수의 부모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첫성탄의 기쁨이 전달되기 시작해서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에게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유럽과 북미 아메리카까지 전달이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극동에 위치한 한국에까지 성탄의 기쁨이 전달이 되어졌고 그래서 지금 이 성전에서 저와 여러분에게까지 이성탄의 기쁨이 전달되어졌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가지게 된 기쁨을 바로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시작하면 내가 곧 시므온이 됩니다. 찬양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찬양으로 기쁨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봉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봉사로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말씀으로 물질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물질로 성령님이 나에게 주시는 기쁨을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정보가 아니라 기쁨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평화를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같이 기쁨을 입은 자가 되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탄절은 누구나 즐거워 할 수가 있고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시는 참 평화를 내가 누리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으로 내가 선택함을 받기 위해서는 시므온처럼 주님의 뜻이 나타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주님이 다시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내심령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반응하심에 즉각적으로 순종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내가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시므온처럼 언제나 주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참 평강을 맛보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