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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만족은 하나님으로부터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9-01-07 (월) 21:12 조회 : 27
설교일 : 2019년 1월 6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고전4장 2-5, 고후3장 5절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린도전서 4:3-5)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후 35)


오늘은 2019년 새해 첫 주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2019년도 새해를 맞이하여 저희 교회 표어를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라고 세웠습니다. 성경구절은 오늘 본문의 말씀인 고린도 후서3 5절에 있습니다.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후 3 5)

인간의 만족은 두가지 출처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인간들 자신에서 나는 것이죠.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 인간 자신이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의 만족은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래서 만족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것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만족은 그냥 즉시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해석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온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해석이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사건이 내게 축복이 될 수가 있고 내게 저주가 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행복이 될수도 있고 불행이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아름다울수도 있고 추해질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어떤 사건을 당했을 때, 그 사건을 좋게 해석하면 행복할수 있겠지만, 반대로 나쁘게 해석하면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믿는 성도로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만족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해석하는 차원에서 생겨나는 만족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믿는 성도로서 진정한 만족은 우리 인간이 해석하는 차원이 아니라 관점의 차원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누구의 관점에서 내가 만족해하고 행복해 하며 살아가는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 전서와 고린도 후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서입니다. 그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풍성한 은사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당시 교회사이즈나 성도수를 볼때 그렇게 작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는 그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자기 자랑으로 분열과 불화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런 상황에 있을때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서신서를 보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어떠한 관점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을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해 첫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는 이시간에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내가 어떠한 관점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자기관점으로 해석.

3절 후반부입니다 3.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이말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판단을 내가 미루겠다‘ 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판단은 필요하지만 나의 관점에서만 본 나에 대한 판단과 해석, 그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스스로 판단할 때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경향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학입니다. 이것은 지나친 자기비판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사람이 자신에 대해 지나친 자기비판을 하게 되고 자학에 빠지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존감이 상처를 입고 자신이 무너지는 사람들은 재기하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학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극단적인 자기판단이 있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교만' 은 지나친 자기 사랑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 눈에 있는 티를 보는 일에는 민감하지만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자기 판단만 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위험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판단하며 살아가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4절입니다.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게 부끄러운 일은 없다고 내가 판단할지라도 그것이 곧 내가 의롭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할지라도 내가 해석하고 내가 판단하는 것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곧 내가 의롭다고 하는 마지막 판단은 될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관점에서 해석하고 판단하는 신앙생활은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2. 타인의 관점으로 해석.

3절 전체입니다.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사도 바울이 선교여행을 하는 동안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판단을 받는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감정을 가진 인간인지라 남들이 오해를 하고 비판을 할 때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왜요? 다른사람들이 내리는 판단은 올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가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충고를 전혀 듣지 않는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제가 오래전에 얘기한 예화입니다만 어떤 나이가 많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기 아내가 듣는 청력이 자꾸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 남편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전문 의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 아내가 나이가 들어서 인지 자꾸 제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우선 현재 청력이 어느정도가 되는지 알아보아야 하니까 아내의 청력을 검사해보고 그 결과를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을 때 소파에 앉아서 말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아내와 세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말을 건네보고 그래도 못알아 들으면 한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말을 건네보고 그래도 못알아 들으면 귀에 가까이대고 말을 해보고 그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 남편이 소파에 앉아서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는 아내를 향해 말을 합니다. ”여보 지금 무슨 음식을 만드는 거지? 아내가 그냥 도마질 하면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내와 세 발자국 떨어진 거리까지 가서 말을 합니다. ”여보 지금 만드는 음식이 뭐야?“ 아내는 열심히 도마질만 합니다. 이번에서 한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여보 지금 무슨 음식을 만들고 있어“ 그래도 열심히 도마질만 합니다. 이번에는 아내의 귀에 대고 ”여보 지금 만들고 잇는 음식이 뭐야?“ 그러자 아내가 뒤돌아보면서 이렇게 대답 했답니다. ”아니 내가 매운탕을 만든다고 네번씩이나 당신에게 말을 했잖아요.이렇게 남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다른사람들이 말을할 때 우리는 겸손하게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참고 사항인것이지 나의 신앙에 대한 결정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이 잘못될 수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 대한 이웃사람들의 판단도 역시 편견이 있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나쁘게 평가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끝난 것처럼 좌절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내게 조금 칭찬했다고 해서 내가 뭐 굉장한 일을 한 것처럼 그렇게 흥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의지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내게는 매우 작은일이라’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에게 판단을 받는 말을 들을 때 그 말을 나는 무시해버린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하나요? ‘매우 작은 일이라‘ 라고 고백합니다. 작은 일도 아니고 매우 작은 일입니다. 귀담아 들어야 하고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치면 내게 유익이 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판단이 내 인생의 마지막 결론이 될수는 없는 것입니다.

 

3. 주님의 관점으로 해석.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못하노라’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나를 판단하고 다른사람이 나를 판단하는 것이 나를 의롭다라고 할수 있는 판단의 기준이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누가 나를 판단해야 마땅합니까? 주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신 바로 그분이야 말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정확하게 나를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 판단의 마지막 때를 정확하게 그 분은 정하고 계십니다. 5절 말씀입니다.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럼으로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판단의 때가 오기 전에 미리 내가 내 자신을 판단하거나 나에 대한 이웃사람들의 판단을 마지막 판단처럼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때에 주님께서 친히 판단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겉으로 드러난 그 행동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 행동의 배경과 동기까지 살피시는 그분이 저와 여러분에 대한 마지막 판단자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그분이 그렇게 완벽하게 판단하시는 그날 각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뭐가 있으리라 그랬스니까? 칭찬이 있으리라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의도를 알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주님의 자녀들을 판단하실 때 그 의도는 처벌하는 것에 있는 것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느 부모가 자식을 벌주기 위해서 자식이 하는 말과 행동을 유심히 살피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순간 이미 그 심판은 지나간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524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세 가지 약속을 합니다. 첫째는 뭐에요? '영생을 얻었고'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은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이미 얻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약속 은 뭐에요?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정죄의 심판 형벌의 심판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약속은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기전에는 우리가 사망의 길을 갔지만 이제는 생명의 길로 옮겨져서 그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주님은 마지막 형벌의 자리에 던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 마지막날 주님께서 믿는 성도들을 보실때 그 판단하시는 의도를 우리는 알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 7절을 보십시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다시 말하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이죠. 이때 세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무엇입니까? 첫째는 칭찬이고 두 번째는 영광 이고 세 번째는 존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우리를 칭찬하고 싶어하십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존귀하게 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시점은 가장 박해가 심할때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 교인들이 지금 터키 지역에 위치한 지하 묘지터전 깊숙이 땅을 파고 숨어 지냈던 시절에 듣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던 행복이나 만족은 사람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수있습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칭잔을 받을려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성실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 4 2절입니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이니라 이 충성이라는 단어는 성실성으로 바꾸어도 뜻이 같습니다. 영어 성경을 보시면 faithfulness인데 이것은 충성으로 번역해도 괜찮고 성실함으로 번역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마지막 판단하실 때에 ’너는 재능이 뛰어났구나‘ 그러면서 칭찬하시지 않습니다. 맡겨주신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관점은 나자신이나 다른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판단의 근거는 성실성에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판단할 것이 자기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도 주님이 원하시는 성실성만을 의지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판단이 가장 정확하고 그 주님의 판단의 기준은 내 판단이나 다른 사람의 판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실성에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갈 때 우리는 이 주님의 생각을 아셔야합니다. 주님은 나를 칭찬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의 날 내가 주 앞에 섰을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속에 있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조금은 벅찬 일감을 맡기실수도 있습니다. 그럼으로 불평하지 마십시다. 반대로 하찮은 일감이라 할지라도 자존심 상해하면서 거절하지 마십시다. 상 주시기위해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이라 생각하면서 열심히 봉사생활을 해나가십시다.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 때문에 우리도 감정을 가진 인간인지라 더 힘들어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작은 일이다 라고 믿고 살아가십시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은 주님의 판단에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성의 유무에 있습니다. A.T Robertson 이라는 유명한 성경학자가 충성(Faithfulness)이란 단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충성이라는 단어는 공개적으로 인정받을수 있는 성실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야 저사람은 정말 성실한 사람이지’ 이런말을 듣는 사람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실성이요, 충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중요하기때문에 사람의 판단은 나는 상관안해’ 하면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충성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성실하게 살아가십시다. 주님의 판단은 다른사람들의 눈에도 성실성이 있음을 알수 있는가를 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칭찬하시고 상주시기 위해서 지금의 고통과 지금의 아픔을 허용하신다고 믿고 성실하게 신앙생활 해나가십시다.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이 없어도 성실하게 신앙 생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풍부하다고해도 성실성이 없다면 나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의 만족이 나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내리는 해석이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판단으로 말미암아 오는 진정한 만족을 누리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