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설교를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총 게시물 157건, 최근 0 건

나의 양식은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9-01-21 (월) 21:19 조회 : 154
설교일 : 2019년 1월 20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요 4장 27-38절







<요한복음 427-38>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오늘 본문28절에서 30절을 보시면 예수님을 만난 이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 마을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동네사람들에게 와 보라! 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이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에게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동네 마을에 가서 양식을 구하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에게 “저희들이 음식을 가져왔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세요“ 라고 말합니다. 31절 입니다. 31.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잡수소서‘

예수님께서는 이날 이른 아침에 유대에서 출발을 해서 사마리아 우물가에 있는 거리까지 4시간 이상을 걸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이 우물가에 도착한 시간은 정오 12시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 6절 입니다. 6.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성경에 나오는 시간에다가 언제나 여섯시간을 더하면 현재 시간이 됩니다. 여섯시 더하기 여섯시이니까 12시 한낮인 정오인것이죠. 피곤하셔서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신 예수님이십니다, 목마르고 피곤하고 배가 고파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동네에 가서 음식을 준비해서 예수님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맙다라는 대답 대신에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32절입니다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너희가 알지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혹시 누가 우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잡수실 것을 예수님께 갖다 드렸는가 하면서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은 무엇입니까?

34절입니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나의양식은...그러면서 예수님의 양식에 대해 두가지로 설명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그러니까 당시 제자들이 알지 못했던 예수님의 양식은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이 예수님의 삶에 최고 우선 순위인것입니다. “너희들도 배고프지 나도 배고프다. 그러나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지금 나를 향하여 오고있는 저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은 영혼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회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양식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회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추수해서 하늘의 곳간에 쌓아두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배부르게 하는 영적인 양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을 먹는 양식으로 비유하셨습니까?

세상 살아가다보면 먹는 일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사흘만 굶어 보십시오. 눈이 침침해지고 자꾸 헛것이 보입니다. 다리가 흔들려서 공짜로 금강산 구경시켜준다고 해도 힘들어서 구경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흘을 굶으면 남의 담을 넘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먹어야 삽니다. 먹어야 운동 할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먹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도 영의 양식을 먹는 일이 이렇게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이 이렇게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의 양식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육의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듯이 영의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육의 양식을 먹어야 육신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영의 양식을 먹어야 영혼의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영혼을 가진 우리 인간은 떡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왜 물질과 명예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합니까?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존재인 우리는 영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나의 삶에 가장 우선순위가 되게 할때 나의 영혼은 독수리처럼 힘차게 하늘을 날게 될 것입니다.

 

□ 눈을 들어 밭을 보라

그런데 예수님은 곧이어 알다가도 모를 말씀을 하십니다. 35절입니다. 35. 너희는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너희는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넉달이 지나야‘ 그러니까 지금은 추수할 보리가 있는 시기가 아니라 추수할 시기는 넉달이 더 지나야 합니다.그 런데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할때가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이것은 보리 곡식은 아닌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눈을 들어 보니 제자들의 눈에는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있는 동네 사람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희어져 추수할 곡식은 무엇인가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나아오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늘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을 의미합니다.

 

□ 주님의 관심과 제자들의 관심

제자들의 관심은 지금 당장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먹을 것을 가지러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그사이에 예수님은 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고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거하십니다. 음식을 구하여 온 제자들이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하는 것을 보았지만 이 여인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습니다. 메시야이심을 믿게된 이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마을로 달려갑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던 저 여자가 왜 갑자기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갔을까? 저 동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지금 예수님께로 나아올까? 에 대하여 궁금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가진 관심은 당장 배고픔을 해결하는 일이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 것입니다. 지금 그들의 관심은 눈앞에 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관심은 무엇일까요?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죠. 주님의 관심은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를 받고 자신에게 몰려 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피곤하였고 배가 고프셨지만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를 받고 자신에게로 나아오고 있는 영혼들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목마른 영혼들에게 생수를 마시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피곤했고 배가 고프셨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주님의 관심은 그들의 영혼을 추수해서 하늘의 곳간에 쌓아두는 것에 있었습니다.

 

□ 나의 관심은?

그렇다면 오늘 나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까? 자녀의 진학 문제를 해결하는 일입니까? 질병에서 고침받는 일입니까? 직장에서 더 나은 페이를 받는 일입니까? 사업이 확장되어지는 일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까? 그래요. 그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정말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을 받았다면 오늘 우리의 관심은 바로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어야 합니다. 소외되고 목마른 저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눈을 들어 밭을 보십시다. 무엇이 보입니까? BMW마크가 새겨진 고급차가 보이십니까? 손에들고 있는 아이폰이나 구찌 핸드백이 보이십니까? 헤어디자인이나 손톱 매니큐어 색깔같은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이십니까? 희어져 추수하게 된 영혼들이 보여야 합니다. 내 곁에 있는 그 사람, 나와 이런 저런 문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연히 내곁에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추수하도록 저와 여러분의 곁에 두신 영혼들인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살아갈수 있도록 교회생활 할수 있도록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

오늘 본문36절을 보시면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뿌리는 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뿌렸습니다. 그러면 거두는 자는 누구입니까?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입니다. 오늘날은 교회인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뿌려놓으셨기 때문에 교회는 거두는 것입니다. 뿌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뿌려놓으셨습니다. 영생의 씨는 예수님이 심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 인간의 죄에 대한 용서하심을 심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 영생의 씨를 이 역사 속에 심어놓으셨습니다. 몇 년전에 저희 집 정원에 잡초가 너무 많이 나서 Lows 에 가서 보니까 잡초는 죽이고 잔디는 살리는 약이 있어서 열심히 뿌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씨는 죄에 대해서는 죽이고 생명에 대해서는 살리시는 복음의 씨 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 역사속에 그리고 성경속에 다 심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도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심어 놓으신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파종하고 가꾸는 것과 거두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쉬울까요? 사실 곡식을 심고 가꾸는 것이 어렵지 거두어 들이는 것은 쉽습니다. 예를 들어 봄이 되면 저희집에 오이를 심습니다. 어떻게 해요? 씨를 뿌리기전에 땅을 파고 거름을 줍니다. 오이줄기가 올라갈수 있도록 장대를 세우고 줄기가 올라갈때마다 줄로 계속 연결해주고 물도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이 추수하는 것은 그냥 따기만 하면 되죠. 심는 것 보다 거두는 것이 더 쉽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의하면 전도는 주님께서 심어 놓으신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심었고 우리는 거두는 자입니다.

그런데 거두는 자는 이미 삯을 받은 자입니다. 36절을 다시보시면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 일반적으로 품삯은 일을 마친 후에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추수는 일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 놓았어도 추수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추수 때가 되면 서둘러서 추수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꾼이 달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품삯을 미리 주고 일꾼을 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영혼의 추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추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삯을 주었습니다. 그 삯이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영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먼저 영혼의 추수꾼들에게 구원이라는 삯을 주십니다. 그구원의 삯을 받은 사람은 기쁨이 있어요 그 기쁨 때문에 또다른 영혼들을 추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추수군들은 한결같이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들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로 전도하지 못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삯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거두는 자에게는 함께 누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함이라 전도를 해보면 참 희한한게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오는 사람보다 전도를 해 온 사람에게 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에게는 누구도 맛보지 못한 영적인 희열이 있습니다. 거두는 기쁨은 거두어 보는 자만이 압니다. 구경만 해 가지고는 그 기쁨을 모릅니다. 직접 농사를 짓고 그 열매를 거두어 본 자만이 그 기쁨을 압니다. 그런데 거두는 자만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는 자도 함께 즐거워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영혼을 추수할 때 나도 기쁘지만 주님도 함께 기뻐하십니다.

15장을 보시면 세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선한 목자의 비유 그리고 둘째로 잃어버린 한 동전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 셋째로는 집은 나간 둘째아들이 집에 돌아오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그 목자는 동네사람들을 불러서 동네 잔치를 벌립니다.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도 그 드라크마를 찾고난후에 이웃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립니다.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온 동네사람들을 불러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 잔치를 벌립니다. 왜요? 너무 기뻐서입니다, 거두는 우리도 기쁘지만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는 천국잔치를 벌리실 만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기쁜 것입니까?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기 때문입니다. 영생이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니까 영원히 삽니다. 하나님의 생명이니까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냥 길고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 아니라 풍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 영생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까 우리도 기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백혈병을 앓고 있는 브랜든 포스트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11살의 소년이 있었습니다. 오랜 병치료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이 소년의 생명은 2주일을 넘기지 못할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엄마는 자기 아들의 마지막 소원을 듣어주기로 생각하고 이렇게 묻습니다. “브랜든 지금 너의 소원이 뭐지? 제일 하고 싶은 일 말이야” 그때 브랜든이 말합니다. “딱 한 가지 있어요. 제가 병원에 갔다 오다가 목격을 했는데 거리에 노숙자가 너무 많더라고요. 그들이 배가 고파 보여서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싶어요. 그게 나의 소원입니다.죽음을 앞둔 이 브랜든의 마지막 소원은 유명한 연예인나 좋아하는 운동선수를 만나고 싶다거나 디즈니 월드같은 곳을 가고 싶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배고파 보이는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브랜든의 소원을 들은 엄마와 그의 이웃 주민들은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윽고 이 브랜든의 이야기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갑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전국 각지에서 기부금이 쏟아져 나오고 대형마트에서는 샌드위치를 만들 제품을 실은 트럭들을 보내주었습니다. 사실 당시 미국은 2007년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론 모게지 라는 금융위기를 겪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속에서도 브랜든의 남은 2주 동안 수많은 격려의 메시지와 함께 6만 달러라는 엄청난 성금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만들어진 모든 샌드위치 포장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I love Brendan'

2주 뒤인 2008 1121, 브랜든은 엄마의 품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납니다. 브랜든은 CNN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약 3,500명의 노숙자가 샌드위치를 받았다는 말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합니다. 그리고 지난2주간의 시간이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이 브랜든 소년이 길거리에 있는 배고픈 노숙자들에게 육적인 양식을 먹는 것을 보면서 행복해 하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죽어가는 우리의 영혼이 영의 양식을 먹고 생명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배불러 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도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38절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어 보내었노니...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노라’ 그래요 이제 믿는 성도인 우리는 거두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는 일은 희어져 추수하게 된 영혼을 거두는 일입니다. 추수하게 되는 영혼은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심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심어놓으신 것을 거두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자들 입니다. ,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루시는 일이 영적인 양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전하고 간증하는 일이 영적인 양식인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증거하면서 살아가시는 영혼의 추수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