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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와 '하지만'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9-01-28 (월) 21:05 조회 : 213
설교일 : 2019년 1월 27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왕하 5장 1-6절




<열왕기하 51-6>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어느 한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젊어서는 돈을 가지기 위해서 건강을 잃어버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건강을 가지기 위해서 돈을 잃어버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철학자 다운 생각이죠. 자 오늘 본문을 보시면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다가 마침내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볼수있습니다. 그사람이 바로 나아만 장군이죠. 이 나아만이 누구입니까? 1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아람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첫째는 아람왕의 군대장관이죠. 오늘날 국방부 장관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왕과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는 최고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죠. (지도 크릭) 여기 지도를 보시면 아람은 지금 시리아인것을 알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리아는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군인들2000여명을 철수 시키겠다고 하는 그 나라이죠. 나아만은 현재 시리아인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 나아만 군대장관은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여기서 주인은 물론 아람왕이죠. 왕의 절대적인 신임과 신뢰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해서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되었나요? 1절 중간부분을 다시 보시면 ‘전에 그에게(나아만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러니까 전쟁에서 승리해서 아람 나라를 구하여 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전쟁에서 승리를 한 장군은 그 나라에서 귀한 영웅 대접을 받지 않습니까? 지난날 1 2차 세계대전과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연합 사령관의 지위에 있었던 맥아더 장군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자 미국 대통령후보로 까지 거론될 정도로 존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동 걸프 전쟁때 승리를 이끌었던 파월 장군도 비록 흑인이었지만 부 대통령후보로 까지 거론될 정도로 영웅대접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쟁에 승리를 해서 나라를 구하는 사람은 크고 존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웅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해서 나아만이 전쟁에 승리할 수가 있었나요? 그이유가 1절 중반부 이후에 나옵니다. ...이는(아람을 구원한 것은) 전쟁에 승리해서 나라를 구한 것은)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아만 장군을 사용해서 전쟁에 승리하게 한 것이고 그래서 나아만이 크고 존귀한 자의 위치에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의 승리는 나아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인 것을 성경은 말슴합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죠. 왜냐하면 나아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방나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나아만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전쟁에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나아만이 훗날에 하나님을 알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이 나아만의 인생에 개입한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내 삶속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지금 이시간 이 성전의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아직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속에도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에 기쁨과 슬픔을 허용하시면서 이 온 세상을 다스려 나가시는 것입니다. 자 나아만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전쟁에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이스라엘과 소규모 전투를 치루면서 이스라엘 어린소녀를 포로로 데려오는 일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린 소녀는 이 나아만 장군의 아내의 시중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어린 소녀를 통해서 나아만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하나님의 열심’ 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열심’ 으로 말미암아 이세상에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이 성전에 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나아만 장군은 부자이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군대장관이란 권력을 가졌고 크고 존귀한자라는 명예를 가졌을뿐만 아니라 부요한 사람이었습니다. 5절 후반부 입니다. 5.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은 십달란트와 여기서 한달란트의 무게는 약34kg입니다. 파운드로 계산하면 약75파운드가 되죠. 지금 한국 가게에 파는 한국미 쌀 큰 포대의 무게가 40파운드이니까 두포대이면 80파운드입니다. 두포대 무게에서 5파운드가 모자라는 무게가 한 달란트입니다. 열 달란트이니까 열배를 곱하면 쌀20포대 만큼의 무게가 됩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은입니다. 그리고 금육천개는 육천 세겔이라는 뜻인데 6천 세겔의 무게는 120파운드가 조금 넘습니다. 그러니까 40파운드 쌀3포대가 되는 무게의 금을 가져간 것입니다. 굉장한 것이죠. 그리고 의복 열벌입니다. 물론 그당시 귀족들이 입고 다니는 아주 귀한 의복 열벌을 가져간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아만 장군은 권력과 명예와 부를 다 가진 사람인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 나아만 장군은 세상사람들이 부러울것이 하나도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당시에 이 문둥병, 이 나병은 하늘이 내린 형벌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나병에 걸리면 고칠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는 집에서 쫓겨나서 자기들끼리 외딴곳에 모여서 살아야 했습니다. 아마 이 나아만 장군은 나병증세가 일어나는 초기에 발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몸에 이상한 증세가 생기면 언제든지 아람나라에서 가장 실력있는 의사를 불러서 진찰할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의사가 진찰을 하고 나더니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장군님, 이런 말씀드리기가 정말 죄송합니다마는 나병입니다” 1절 후반부입니다. 1.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영어성경은 He was a valiant soldier, but he had leprosy. 로 기록합니다. but he had leprocy. Laper 이었습니다. But(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그러나’ 로 결정됩니다. 그러나 앞에 아무리 멋지고 신나는 인생을 살아왔어도 그러나 이후가 나쁘고 불행하면 불행한 인생이 되는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어도 그러나 이후가 좋으면 그인생은 행복한 인생이고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래요. 앞에 있는 것보다 그러나 이후에 있는 인생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잘생겼고 건강하고 책임감이 있고 돈도 잘법니다. 그러나 어느날 이 남편이 바람이 났습니다. 잘생긴것, 건강한것, 돈 많이 버는것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여자에게 다 좋은 일이지요. 이민 생활30년에 이제 자녀들 다 키웠습니다. 집 페이먼트도 다 끝났고 돈도 제법 모았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말기 암이라고 하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생명이 길어도 한 두달정도라고 말합니다. 그집 그 돈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의 인생은 그러나 이후에 좌우되어지는 인생입니다. 학창시절에 아무리 공부잘하고 착한 아이었다고 해도 졸업이후 현재 생활이 주변 사람들보다 못하다면 학창시절에 누렸던 자부심은 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학창시절에는 잘나갔는데... 옛날에는 좋았는데.... 이런 말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 생활이 비참하고 불행하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후 현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그러나’ 는 어느날 갑자기 도적같이 나를 찾아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온 그러나 는 무엇입니까? 남편의 외도 일수 있고 가족의 건강일수도 있고 사업의 실패일수도 있습니다. 직장을 잃어버리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이 그러나 는 그동안 기쁘고 행복했던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희망과 소망으로 살았던 하루하루가 갑자기 어둡고 캄캄한 하루하루가 되어버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을 보십시오. 인간으로서 가장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문둥병에 걸렸는데 왕의 군대장관의 직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많은 부와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이 그러나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직위와 부와 성공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실 나아만이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수고했겠습니까?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 죽을뻔한 위기도 여러번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모함과 시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위기와 시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왕과 백성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군대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나병이 자기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 인생에 찾아온 이 그러나 는 나에게 아픔과 고통과 눈물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그러나’ 인생을 허용하심으로서 내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나 인생을 만난 사람들에게 ‘하지만’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하지만’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됨으로서 나를 겸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전보다 더 넓고 포용력이 있는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세상을 의지했던 것을 점점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러나’ 를 나의 인생에 허용 하십니다. 그리고 이후에 ‘하지만’을 통해 나아만은 하나님을 만나 고침을 받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어떻게요? 이 나아만 곁에는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어린 소녀가 누구입니까? 2절입니다.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와서 나아만 장군 아내의 수종을 드는 아이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불쌍하고 안되었습니까? 이제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고 부모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을 누려야 할 나이입니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같이 마음껏 뛰놀고 기쁘고 명랑하게 살아야 할 나이입니다. 한창 재롱을 피우고 사랑을 받고 살아야 할 어린 소녀가 전쟁의 와중에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먼 이국땅에 와서 주인의 눈치를 보고 긴장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종의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어린 소녀에게는 전쟁이 났고 그리고 포로가 되어 아람국가에 붙잡혀 간 것이 바로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고향 마을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전쟁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이 어린소녀는 포로신분이 되어 이국땅인 아람국가에 끌려가 종의 신분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전쟁와중에 부모님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다 할지라도 만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날마다 눈물로 지냈을 것입니다. 자 이렇게 오늘 본문은 옛날에 행복한 삶을 살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자기들에게 들어닥친 ‘그러나’ 사건을 만나게 되었고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두사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지만’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이 두사람의 만남 속에는 ‘하지만’을 준비해놓으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3절입니다.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뭐 어린소녀가 특별한 내용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을 말한것뿐입니다. ‘우리나라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가 있는데 그 선지자에게 가면 나아만 장군이 가진 문둥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이말을 한것입니다. 여기서 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있고 또 다른 한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의 신분입니다. 그런데 이소식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소식입니다. 만일 이 어린소녀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나아만장군은 나병으로 인해서 격리된 생활을 하다가 외롭고 비참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린 소녀가 하나님을 소개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소개한 것입니다. 나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에게는 희망이 되고 소망이 되는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의 근원은 나로 인해서 내 주위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격려와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로 인해서 절망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이 새힘을 얻고 일어서서 살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로 인해서 깨어지는 가정이 회복되고 화목 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아무리 행복하고 내가 아무리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나로 인해 상처를 받고 나로 인해 신앙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면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행복과 나의 이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나온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축복도 아니고 복의 근원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로 인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힘을 얻게 되고 더욱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생활을 할 수가 있는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오늘 본문은 내가 어떠한 형편이 있던지간에 관계없이 복의근원이 될 수가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말 이 어린 소녀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불행한 사건에 의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환경속에서도 남에게 소망을 주는 자세를 가지며 살아갔습니다. 어떻게 알수 있나요?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둔 것을 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어린소녀가 평상시에 가지고 있었던 마음자세에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시간에 이 어린 소녀가 평상시에 가지고 있었던 마음자세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세가지로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1. 확신있는 믿음

3절 후반부입니다. 3.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생각해보세요. 만일 이 어린 소녀에게 확실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확신있게 이야기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확실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런식으로 얘기했을 것입니다 “장군님, 아마 어쩌면 고침을 받을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뭐 믿져야 본전이니 한번 가보세요” 이런식으로 얘기를 해야 이 나아만이 갔다가 고침을 받지 못하고 돌아와도 자기의 신변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어린 소녀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확신있게 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당신이 걸린 나병을 고칠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확신있는 믿음은 반드시 모험을 요구합니다. 잘못되면 이 어린소녀믄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당시 종의 신분은 필요없으면 버리는 물건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어린소녀로부터 확신있는 말을 듣었기에 나아만 장군이 움직인 것이지, 애매모호한 말을 듣었다면 나아만 장군은 무시해버리고 움직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똑똑하고 많이 가진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바라옵기는 이런 확신있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다른사람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존재로 살아 갈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실한 삶

한번 가정해보십시다. 만일 이 어린 소녀가 평상시에 하는일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자기 기분에 내키는 대로 말과 행동을 하고 살았다고 한다면 누가 이 어린소녀가 하는 이말을 듣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평상시에 성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신뢰감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성경은 보여줍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하루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남편 보디발에게 저 요셉이 나를 범할려고 했다라고 모함했습니다. 그런데 이 요셉이 평상시에 불성실했다면 그날로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감옥에 갔습니다. 왜요? 요셉이 평상시에 너무 너무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보디발 장군이 요셉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넣은 것은 자기아내 보다는 요셉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어린소녀가 평상시에 보인 성실한 삶이 나아만 장군의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듣게 했던 것입니다. 내가 복의 근원으로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성실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긍휼히 여기는 마음.

그당시 아람나라는 이 어린소녀에게는 자기 조국 이스라엘의 원수나라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포로신분이 되어 이 아람나라에 끌려와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나아만은 원수나라의 장군입니다. 그러니까 이 어린소녀는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속으로 ‘참 잘됐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야’ 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갈수 있습니다. 나아만 장관이 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이 어린 소녀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원수는 원수고 불쌍한 것은 불쌍한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이 어린 소녀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긍휼을 베풀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은 긍휼하심 때문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도 우리인간을 향한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를 살리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원수가 되는 신분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어린 소녀에게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자기를 고생시키는 것은 고생시키는 것이고 주인이 불쌍한 것은 불쌍한 것은 불쌍한 것이다라고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나님의 사용하심을 받는 복의 근원으로 살아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람의 나아만 장군처럼 그리고 이 어린소녀처럼 어느날 갑자기 닥쳐오는 ’그러나‘ 인생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나’ 인생속에는 ‘하지만’ 의 인생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지만’ 을 준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지만’ 의 의미를 풀어서 쉽게 말하면 ‘그러나’ 인생에서 또 한번의 ‘그러나’ 가 일어나는 반전에 반전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고 있던 나아만 장군은 ‘하지만’을 준비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지만‘의 경험으로 인해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을 믿고 겸손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어린소녀도 당연히 나아만 장군과 주변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 이후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아만 장군처럼 남이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 어린 소녀처럼 인생을 살아 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 ‘그러나‘ 라는 사건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하지만‘ 인생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고 긍휼을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라옵기는 이 어린 소녀처럼 평상시에 믿음의 생활. 성실한 생활 그리고 긍휼을 베푸는 생활을 해나가심으로 말미암아 ’하지만‘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