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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반응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9-02-04 (월) 21:36 조회 : 116
설교일 : 2019년 2월 3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왕하 5장 6-8






<왕하 56-8>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아람나라의 장군 나아만에게 어느날 갑자기 나병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나병은 나아만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권력과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흔들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나아만은 자기의 인생에 찾아온 이 나병을 통해서 겸손해질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아만의 인생에 찾아온 나병은 궁극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인생에 어느날 갑자기 나병이 찾아올수가 있습니다. 건강의 나병일수도 있고, 재정의 나병일수도 있고, 신앙의 나병일수도 있고, 인간관계의 나병일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어느날 찾아온 이 나병은 나에게 염려와 고통과 눈물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순간을 잘 극복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고 조지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이런 일화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부시 전 대통령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서 자기 음식에는 브로콜리를 넣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이말이 곧 입소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대통령이 브로콜리를 싫어한다는 소문에 브로콜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전파되어지는 분위기이었고 이로 인해 브로콜리 판매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 되었뎐 것입니다. 그래서 브로콜리를 재배하는 농장주들이 함께 모여 대책을 논의했는데 항의하는 대신에 한 통의 편지와 대형 화물차에 가득 실은 브로콜리를 대통령에게 선사하기로 결정습니다.

“대통령님, 이 브로콜리는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미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채소입니다. 단백질이 많고 철분이 다량 함유돼 있으며… 몸에 상당히 이롭습니다. 지금까지 생각을 바꾸셔서 이것을 즐겨 드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편지의 내용과 큰 트럭으로 선물을 한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보도돼 엄청난 광고 효과를 거뒀습니다. 사람들이 브로콜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고 판매량도 늘어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위기를 만났지만 그 위기가 오히려 축복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나아만도 어느날 갑자기 자기에게 찾아온 위기를 통해서 겸손해지고 순종할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서 병낫음을 얻게 되고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보다 더 겸손하고 성숙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이렇게 고침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일에 축복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전쟁의 와중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이었습니다. 이 어린 소녀는 가난하고 배운것도 없었지만 믿음이 있었고 성실한 삶을 살았으며 그리고 긍휼을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런 마음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이 어린소녀로부터 이스라엘에 있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만나게 되면 나병이 고침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이 나아만은 자기 왕에게 가서 이사실을 전합니다. 그리고 특별 휴가를 받아 많은 재물을 실고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그리고는 나아만 장군은 아람왕이 써준 편지를 이스라엘 왕에게 주었는데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6절 말씀이죠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주소서. 한마디로 자기 신하의 병을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그당시 이 아람나라는 이스라엘 보다 군사력이 강한 국가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람 왕이 쓴 이 편지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강대국가로서의 우월감이 있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람나라가 약소국가라고 한다면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써보낼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병도 병나름이지요. 몸살 감기도 아니고 나병을 어떻게 고칩니까? 자기나라 의사들도 못고치는 병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고칩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보면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만날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오늘 본문은 두가지 종류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각각의 사람을 보여줍니다. 한사람은 이스라엘 왕이고 또 다른 한사람은 엘리사 선지자입니다. 이 두사람은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문제에 대한 반응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두사람이 보이고 있는 다른 모습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엘리사 선지자와 같은 마음자세로 인생을 살아갈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이스라엘 왕의 반응

자 이 아람왕이 쓴 편지를 읽은 이스라엘 왕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7절입니다.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이 내용을 보시면 이스라엘 왕이 세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1. 분노함

이스라엘 왕이 그글을 읽고 자기옷을 찢으며 그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극도로 분하고 슬픈일을 당할 때 자기 옷을 찢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이 지금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그만큼 분하고 슬픈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다입니다. 분노 하면서 옷을 찢었지만 그다음의 어떤 후속조치가 없는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성폭행 사건이 얼마나 자주 일어납니까? 그때마다 인터넷에 쓰여진 댓글을 보면 ‘짤라버려라, 죽여라, 지구를 떠나게 해라’ 이렇게 거의 대부분 감정적인 내용들만 나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후속 조치를 취하자는 내용의 글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저 흥분하고 열받아서 하는 행동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고 하는 말과 행동이 서로 비슷한 것을 봅니다.

 

2. 불신앙인의 모습.

‘내가 하나님이냐’ 라고 반응했습니다. 물론 이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믿는 성도로서 할수 있는 표현은 아닙니다. 이 말속에는 자기에게 오는 책임을 피할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왕으로서 해야 할 말과 행동만 하면 되는 것인데 책임을 질려고 하지 않는 마음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신앙인이지만 불신앙인의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은 자기옷을 찢으면서 내가 하나님도 아닌데 어떻게 나병 환자를 고치라는 말이냐? 라는 반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왕이 이렇게 고백한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 알고는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죽이고 살리고 병들게 하시고 고치시는 하나님이신줄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문제가 생길 때 책임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지 하나님을 핑계대고 자기는 피해버리는 말과 행동은 불신앙인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고전적인 예화중에 이런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한 교회에서 자기 교회 주변에 있는 술집을 없애달라고 계속 기도를 해왔었는데 하루는 그 술집이 불에 타서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술집주인이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교회 성도들이 술집을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자기가 운영하는 술집이 불이 났다라는 것이 소송을 건 이유 이었습니다. 재판 하는날 판사가 그 교회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 교회에서 이 술집에 불이 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까?그러자 목사가 대답을 하기를 “예 술집이 불이나기를 기도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판사님, 기도를 한다고해서 술집에 불이 나겠습니까?그 이야기를 듣고 술집주인이 즉시로 항의를 합니다. “아닙니다. 틀림없이 그 교회에서 기도를 했기 때문에 불이 났습니다” 이거 지금 누가 믿음이 더 있는 것입니까? 때로는 믿는 사람들보다도 불신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더 믿는 것을 볼때가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볼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방사람인 아람왕이나 나아만 장군은 포로로 잡혀온 어린소녀가 하는 말을 듣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이스라엘왕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지식적인 차원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이렇게 지식적인 차원에서 믿음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참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내가 사자굴속에 던져지고 불속에 던져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주실 것이다라고 믿는 믿음이 살아있는 참 믿음인 것입니다. 내게 순교할수 있는 힘을 주시든지 아니면 사자나 불이 어찌할수 없는 기적이 나타나시든지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 하실 것이다라고 이렇게 믿는 믿음이 참믿음인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이런 참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잘못된 결론을 내림

‘저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이죠. 문제가 생기면 먼저 화를 내고 감정적으로 대하거나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알고 신앙생활하게 되면 이렇게 잘못 결론을 내리는 일이 생깁니다, 잘못된 내용을 입력을 하는데 당연히 잘못된 출력 결과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수 있겠습니다. 이 이스라엘 왕은 아람왕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할려는 구실로 삼고 있다라고 잘못 판단을 했습니다.

 

◎ 엘리사 선지자 반응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가 보인 반응은 어떻습니까? 8절입니다.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1. 불신앙을 책망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이 말은 좋은 뜻으로 한 것이 아니죠. 왕의 불신앙에 대한 책망의 말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왕의 신분에서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면 당연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지 어찌하여 옷을 찢습니까? 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의 사람이 억울하고 슬픈일을 당할때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았던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지 약 150년 후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항복하라고 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항복하라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이 너희를 이 앗수르 손에서 구원하여 주지 못하리라”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를 읽어본 히스기야 왕은 그 편지를 들고 곧바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열왕기하 19 14절 이하에 나옵니다.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15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히스기야 왕은 그 편지를 들고 성전에 가서 그 편지를 펼쳐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를 마칩니다. 19절입니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이 온 천하만국에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신임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했지만 남 유다는 멸망당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똑같은 하나님을 믿는 북 이스라엘왕과 남유다의 왕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비슷하다고 생각할수 있는 편지를 읽었는데 그 반응이 너무 다른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많은 성도님들 중에도 이렇게 반응이 다른 것을 볼수있습니다. 내 인생에 이해할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내 인생에 쓰나미가 다가올때 반응하는 모습이 곧 진정한 믿음이라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은 옷을 찢고 분해하고 억울해 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진심으로 도움을 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불신앙적인 모습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책망을 했습니다. 왜 화만내고 하나님께 아뢰지 않느냐는 책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2. 책임자의 자세

‘그사람을 내게 오게 하소서’ 여기서 그사람은 물론 나아만 장군이죠. 그당시 인간의 힘과 의술로는 고칠수 없었던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을 내게로 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입니다. 문제는 생길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생길 때 그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문제 해결은 시간문제입니다. 사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고 하고 행동을 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문제를 생각만하고 고민을 하고 있으면 그 문제는 굉장한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하겠다고 행동하면 문제 해결책이 보여집니다. 마태복음9장을 보시면 4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침대에 누이고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4명의 친구들은 구경꾼들이 많아 도저히 예수님 앞에 갈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를 가로막고 있는 구경꾼들 때문에 화를 내면서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 않았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문제 해결도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붕이 보인 것입니다. 이 네명의 친구에게 지붕이 보이게 된 것은 그 그들에게는 문제가 생겨도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신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도 마찬가지입니다. 키는 작은데다가 구경꾼이 많아서 지나가는 예수님을 볼수없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삭개오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 해결의 길인 뽕나무가 보였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문제는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피할 수가 있는가가 아닙니다. 흥분하면서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마음자세에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길이 반드시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면 지붕이 보입니다. 그러면 뽕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의 길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문제를 주실 때 해답이 없는 문제를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해답을 가지고 문제를 주십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생길 때 문제의 크기를 보지마시고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자세를 가지십니다. 그리고 이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십시다..

해답이 없는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의외로 문제해결은 간단할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자세입니다. 그리고나면 문제 해결이 보이게 됩니다. 그때 지붕이 보이고 뽕나무가 보이는 것입니다.

 

3. 유익을 위한 행동.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엘리사가 행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아만 장군이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것이고 결국은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손해보고 자기가 책임을 지면서까지 남에게 유익이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려고 합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경우를 보면 자기가 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을 할려고 하는 모습을 봅니다. 엘리사가 이렇게 자신이 책임질려고 하는 모습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행동임을 알아야합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엘리사가 행한 기적을 보면 모두가 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위한 기적입니다. 그러니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남의 유익을 위할 때 일어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마시고 싶으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셔겠습니까?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까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능력을 자랑하고 싶어서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자를 살리셨겠습니까? 돈벌기 위해서 병을 고쳤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중에서 가장 큰 기적이 바로 십자가의 기적입니다. 이 십자가의 기적을 통해 죽었던 저와 여러분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사와 같이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남의 유익을 위한 행동을 한다 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그나아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라고 이스라엘 왕에게 요청했습니다. 왜요? 그사람이 바로 이스라엘 왕에게는 골치꺼리이고 문제꺼리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남의 유익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백년에 한번 나올 정도의 목소리를 지녔다고 하는 세계 최초의 흑인 오페라 성악가인 마리아 앤더슨은 평소에 “나”라는 말보다 “우리”라는 말을 즐겨 썼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말을 할 때 왜 ’나‘ 라는 말 대신에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십니까? 그때 이 마리아 앤더슨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인생을 많이 경험하다 보니까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노래 한 곡 부를 때도 작곡가가 있어야 하고 피아노 제조업자가 있어야 하며 반주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속의 나는 작은 협력자일 뿐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지금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사람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지금할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힘을 합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이스라엘 왕처럼 불신앙적인 모습으로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성품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곁에 엘리사 선지자와 같은 믿음의 사람을 두게 하십니다. 반대로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스라엘 왕과 같이 문제를 만나 분노하고 감정적으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사람을 볼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엘리사 선지자와 같은 마음자세로 그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나의 이손이 예수님의 손이 되고 내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 될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그냥 두시겠습니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내눈에 보이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와 기적을 내가 경험하게 되는 축복의 순간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라옵기는 엘리사와 같은 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심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역사를 볼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