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설교를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총 게시물 166건, 최근 1 건

분노하여 떠나니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9-02-11 (월) 22:19 조회 : 186
설교일 : 2019년 2월 10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왕하 5장 9-12절




<왕하 5912>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유태인들이 즐겨보는 지혜의 책인 탈무드를 보시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하루는 어느 제자가 선생 랍비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부자와 현자중에 누가 더 위대합니까?

그러니까 선생 랍비가 당연히 이렇게 대답했겠죠. "그거야 물론 현자가 더 위대하지." 그러자 그제자가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부잣집엔 학자도 현자도 많이 드나드는데 어째서 현자의 집에는 부자들이 드나들지 않는 것입니까?" 이 제자의 질문에 랍비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현자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부자는 돈만 알았지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야."

자 오늘 본문을 보시면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만 지혜는 별로 없는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볼수있습니다. 그사람이 바로 아람 나라 장군 나아만이죠. 이 나아만은 부자일뿐만 아니라 권력과 명예까지도 가진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세상 부러울것이 없는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아만에게 어느날 갑자기 나병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자기집에서 일을 하던 이스라엘 출신인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선지자를 만나 나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와서 왕을 만납니다. 이때 엘리사 선지자는 하인을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서 나아만 장군을 자기에게 보내달라고 전달합니다. 그래서 이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9절 말씀입니다.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지금 나아만이 자기 병을 고치러 엘리사에게 가고 있는데 말들과 병거들을 데리고 갑니다. 나아만이 말들을 데리고 가는 이유는 우리는 이해 할수 있습니다. 많은 양의 금은보화와 의복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것을 실고 갈 말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군병들까지 엘리사가 사는 마을에 데리고 갈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나아만은 병고치러 가는 것이지 전쟁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 하고 싶어하는 나아만의 마음을 엿볼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나아만은 나병에 걸려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양의 금은 보석과 군사들을 데리고 다님으로서 나병에 걸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감추어볼려고 하는 심리를 우리는 알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은 사람들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얼마나 가졌는가 내가 어떤 신분에 있는가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에스겔서 46장을 보시면 성전에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왕이라고 해서 따로 특별히 드리는 것 아닙니다. 백성들과 똑같이 드렸습니다. 왜요?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니까요. 계급을 보시고 신분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심령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눈에는 모두가 다 똑같이 죄인들입니다. 자기 죄를 대속할 숫양 한마리를 가지고 하나님앞에 가서 죄사함을 받아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에스겔서 46 10절 말씀보시겠습니다. 10. 군주가 무리 가운데에 있어서 그들이 들어올때에 들어오고 그들이(무리들이죠) 나갈때에 나갈지니라” 그러니까 제사를 드릴때는 군주라고 해서 특별히 대우해주지 않고 백성들과 똑같이 행동을 하게 했습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교회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옛날에 제가 다니던 교회에는 장로님들이 앉는 자리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강대상 오른쪽에는 장로님 석이 있었고 왼쪽에는 성가대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를 드릴때 성가대석과 장로님석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가대석쪽을 보면 그래도 은혜가 됩니다. 천사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석을 보면 이분들은 주무시는지 기도를 하시는 지 대부분 눈을 내리깔고 앉아계십니다. 도대체 그 자리에 앉으셔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나아갈때는 내가 가진 신분과 직분이 필요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아야 할 죄인들입니다. 지금 나아만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많은 말들과 군사들과 함께 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 주시는 말씀에 대한 순종이 쉽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순종을 할 수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순종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할지라도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장애가 되는 요소

1. 자존심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나아만이죠)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이 나아만장군은 엘리사가 보낸 하인을 통해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라고 명령을 들었습니다. 아니 이 나아만이 누구입니까? 그당시 강대국가인 아람나라의 제 2인자인 군대장관입니다. 그렇다면 미리 나와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으면서 환대를 해주어야 죠. 그리고 지금 나아만 자기가 그냥 빈손으로 왔나요? 굉장히 많은 양의 금은 패물과 귀한 의복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줄 것은 주고 받을것은 받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나아만은 문전 박대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화를 내고 돌아갈려고 하는 모습이 그다음 11절에 나옵니다.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그가(엘리사이죠) 내게로 나와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치유 기도를 한후에 자기 병이 난 자리에 손을 대어서 고쳐줄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보지도 못하고 하인의 입을 통해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시오’ 라고 하는 명령을 들은 것입니다. 혼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많은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푸대접을 받으니까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습니까? 그래요.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바로 자존심입니다. 상한 자존심은 나를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합니다. 사실 나병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듣게 된 것은 얼마나 복되고 기쁜 일 입니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기만 하면 병고침을 받을수 있는데 가서 씻으면 되잖아요. 뭐 돈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게 자존심이 상하는 것 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환대하여주지 않고 내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하고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되지 않도록 분위기를 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은혜로운 말을 해도 그사람을 알기 때문에 은혜가 안될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은혜로운 말을 하면 그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아멘하고 은혜를 받을수 있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들어라 하지만 이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본받지 말아라”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경에 맞는말을 하고 은혜로운 말을 하면 아멘 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보다는 그 메신저의 태도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그사람이 맞는 말을 해도 귀를 닫아버리는 행동을 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지혜롭고 성숙한 사람은, 메신저 보다는 선포되는 메시지 내용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그사람의 삶이 문제가 있고 또 그사람이 내게 섭섭한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지금 그사람 입에서 올바른 말과 성경적인 말이 나올때는 ‘아멘’ 하는 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그래야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습니다. 그사람의 삶은 그사람의 문제 이고 나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자존심의 문제에 걸려 더 크고 가치있는 일을 하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마태복음 15장을 보시면 가나안 여인이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앞에 데려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통때 같으면 그정도 상황이면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면서 고쳐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예수님께서 그렇게 행동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 가나안 여인보고 무엇이라 합니까? “자녀들에게 줄 음식을 개에게 주는 것은 마땅하지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가나안 여인보고 개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말씀입니까? 자기 딸 귀신 들린것만해도 부끄럽고 상처가 되는 데 거기에다가 개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이 여인의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고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자존심이 상하고 상처가 되었지만 이 가나안 여인은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럴때 예수님께서 이 가나안 여인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여러분 큰 믿음은 오래된 믿음이 아닙니다. 직분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믿음도 아닙니다.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씀도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는 믿음이 큰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행하시는 기적을 볼수가 잇습니다. 자존심을 극복하는 사람이 삭개오처럼 뽕나무 위에 올라갈수 있습니다. 자존심을 극복한 사람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이라도 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발가벗김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조롱거림을 당해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을 세우는 결과와 순종의 결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순종하심으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실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자존심을 극복하고 생명을 바치시면서 까지 순종을 하신 그 십자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어 천국에 살아갈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정말 자존심이 상하고 견디기 힘드는 일이 생길때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래서 자존심을 극복하고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실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므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장애되는 요소

2. 내 생각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내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와서.... 내생각에는 나아만 장군은 자기가 이 시골마을에 도착을 하면 엘리사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환대하여 줄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서 두손을 들고 하나님을 향하여 치유위한 기도를 하고 자기 병이 난 부분을 만지면서 낫게 해줄줄 알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라면 다들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가 그냥 맨손으로 오는 것도 아니고 정말 귀한 금은 보화를 많이 가져왔잖아요.

그런데 우리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순종을 통하여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의 역사에는 반드시 순종이라고 하는 재료가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순종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내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맞는 경우는 순종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전부 다 맞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가 이해할수 있는 선까지는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해줄수 있는 확률이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80퍼센트정도 맞아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50퍼센트 또 30, 20퍼센트 까지 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해률의 정도 차이일뿐 내생각이나 이해를 할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생각에 맞지 않고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사실은 굉장히 힘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자기 생각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10퍼센트만이라도 내생각과 맞았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흥분하지 않았을 것인데... 내가 일어나리라고 예상했던 생각과는 단 1퍼센트도 맞지않아. 아마 엘리사라는 친구가 당당하게 나를 만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사기꾼이거나 겁쟁이일수 있어’ 그래서 분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완성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서 우리는 내 생각을 초월한 순종을 할수 있습니다. 이단은 내 생각은 물론 성경말씀까지도 무시해버리는 맹종을 강요합니다. 가정을 깨트리거나 직장이나 사업을 깨트리면서 까지 순종을 강요하는 것은 사실은 맹종이지 순종은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완성된 말씀인 성경내용을 기준으로 해서 내생각을 넘어선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내생각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경말씀에 그렇다고 한다면 내 생각을 내려놓을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장애되는 요소

3. 환경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이 나아만이 순종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떠났던 또 다른 이유는 환경에 있습니다. 자기나라에는 이 요단강보다 훨씬 더크고 더 깨끗한 아바나강과 바르발강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물에 씻어서 내몸이 깨끗하게 된다고 한다면 차라리 훨씬 깨끗하고 훨씬 더 아름다운 우리나라 강에 가서 몸을 씻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요단강은 폭이 좁고 수심이 얕고 흐름이 빠릅니다. 그래서 물이 맑지 못하고 물이 좀 흐립니다. 그러니까 흙탕물이 흐르는 그 요단강물에 몸을 씻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당시 애굽 사람들은 아람나라에 있는 아바나 강과 바르발 강 이 두강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황금의 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나아만은 좋은 환경에 있는 두 강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환경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는데 방해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때로는 좋은 환경이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힘들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옛날 30-40년 전 보다는 훨씬 더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좋은 교회에 다닐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귀찮으면 집에서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수가 있습니다. 참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좋은 환경이 순종을 어렵게 합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모양만 성도인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모양만 성도인 숫자조차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환경에 있기를 원하는 것 아니라 우리가 순종하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환경이 좋으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리시기까지 순종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좋은 환경이 순종을 더 잘 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이 샬롯 지구촌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해서 신앙 환경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 환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힘든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환경이 중요할수도 있지만 하나님 눈에는 하찮은 것입니다. 환경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바꾸실수 있으십니다. 환경을 더힘들게 할수도 있고 더좋게 할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와 여러분이 순종할수 있는 마음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자존심, 자신의 생각, 그리고 예전의 좋은 환경이 말씀에 순종하는데 장애가 되었습니다. 바라옵기는 내 자존심, 내 생각, 그리고 이 환경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