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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9-03-18 (월) 20:46 조회 : 79
설교일 : 2019년 3월 17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요 3장 14-17절





<요한복음 314-17>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알고 계시는 내용입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수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니고데모가 또 다른 질문을 하죠.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수 있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는것입니까?’ 이렇게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고 말씀하시면서 오늘 본문 말씀으로 다시 대답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어떻게 사람이 구원을 받고, 어떻게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 할수 있습니다. 본문 14절과 15절입니다.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여기서 그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모세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광야생활을 하던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 불평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자 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시고 그 불뱀에 물린자마다 죽어갔습니다. 이모습을 보고 모세가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자 하나님께서는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살아나게 되는 방법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높이 세워라. 그리고 그 장대에 매달린 구리뱀을 보는 자마다 살아나리라 말을 하라’ 민수기21 8-9절입니다. 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구리뱀이 장대에 매달린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한다는 의미로 그 구리뱀 사건을 비유로 말씀 하신것임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오늘 본문은 두 개의 십자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구리뱀이 장대에 매달린 ‘광야에서의 십자가’ 이고 또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의 십자가는 훗날에 예수님께서 지시게 될 십자가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돌발적인 사건이나 헤프닝이 아닌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해놓신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광야의 십자가는 그당시 뱀에게 물려 독으로 죽어 가는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이나 광야를 행진하다가 뱀에게 물린 것이 아닙니다. 자고 있는데 뱀이 나와서 물리기도 하고 식사 하는중에 뱀에게 물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식구들과 얘기를 하던중에 뱀에게 물리기도 한 것입니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장소와 시간에 뱀이 나타나서 사람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사람이 수 천명 수 만명씩 불뱀이 물은 독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들이나 산에 있어야지 왜 집안에 나타나서 사람들은 무는 것입니까? 이것은 죄의 특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죄가 어디 있습니까? 거리에만 있습니까? 죄가 싸움터에만 있습니까? 죄가 뒷골목에만 있습니까? 죄가 우범지대에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에 있고, 우리 집안에 있고, 직장이나 사업터에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죄는 있습니다. 불뱀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서 사람을 무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한 사람만 골라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뱀이 아무나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문 것입니다.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이 죄를 짓고 싶어서 짓는 것 아닙니다. 죄가 내 마음대로 조절이 된다면 세상에 죄를 짓고 살아갈 사람은 없습니다. 죄는 대상이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시시각각 죄는 뱀처럼 이빨을 드러내면서 물어버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죄로 인해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모세는 하나님이 살길을 주신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구리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매답니다. 그리고 그 장대를 쳐다보는 사람마다 살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살게 되었으니까 이것은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생명을 살리게 되는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소식을 듣은 사람들의 반응은 세가지이었습니다.

첫째 사람은 와! 이런 기쁜 소식이 어디 있는가? 하면서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종류의 사람은 복된소식을 듣고서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종류의 사람은 반신 반의 하면서 엉거주춤한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셨다. 이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된다.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라고 하는 복음을 듣고 기뻐하고 감격하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한번 두고 보자 엉거주춤한 상태로 눈치만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오늘 구리뱀 사건의 비유에서 주는 교훈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 즉 구원 받게 되는 것을 단계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떠나야 함(죄악의 자리)

구리뱀 사건이 있고 난후 그다음 구절인 민수기21 10절입니다. 10.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오봇에 진을 쳤고‘ ’그곳을 떠나‘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불뱀이 있는 그 장소에 그냥 주저앉아 있으면 안되죠. 벗어나야 합니다. 그 자리는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죄악의 자리, 유혹의 자리, 그래서 사단 마귀에게 물렸던 자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건이 있었습니다만 이 사건으로 인해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당시 세월호 배가 바닷물속에 들어갈때 그 배안에 있던 사람들중에 배 간판으로 나왔던 사람들은 다 살았습니다. 그런데 배 선실안에서 떠나지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습니다. 왜요? 그 선실안은 죽음의 자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죽음의 자리에서는 일단 떠나야 합니다.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짓고 사단 마귀로부터 물려서 힘들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자리를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환경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당시 여객선 세월호 침몰 때 그 배에 있었던 학생들이 부모님들에게 가장 마지막에 보내진 카카오톡 메시지의 내용은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방송실에서 모두들 꼼짝하지 말고 그냥 여기 남아있으라고 하네“ 그런데 그 방송실에서 전해진 말을 듣고 그 자리를 지켰던 학생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탄 마귀는 죄악의 자리, 유혹의 자리에서 그냥 있으라고 말을 합니다. 괜찮다 고 속삭입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있는데 뭐 괜찮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학생들을 보면 배가 흔들리는 중에서도 자기들끼리 농담하고 장난치는 모습이나 목소리들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죄를 짓게 하거나 원망 불평하게 만드는 그 자리는 떠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약해서 죄에서 이겨낼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하고 같이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그사람이 계속 남을 욕하고 비판을 하는 말을 한다고 가정해보십시다. 그 말을 계속 듣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온통 부정적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두마디 거들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런 환경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에 그럴 자신이 없다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영혼이 살길인 것입니다. 죄악의 자리 원망 불평의 자리에서는 떠나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대에 매달린 구리뱀을 보기 위해서 자기들이 살고 있었던 그 장막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난후에 그 자리를 떠났던 것입니다.

2. 믿어야 함

본문15, 16절입니다.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중복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를 믿는 자마다’ 입니다. 그 죄악의 장소를 떠나서 하는 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믿음의 의미는 단순한 지식이 아닌 말씀을 따라가는 행동이 포함된 것입니다. 일단 죄악의 장소에서 나와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헤매면 안됩니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건때 배 선실에 있다가 배간판위로 나온 사람들은 오로지 출구(Exit)이라는 사인만 보고 그 복도와 계단을 지나왔다고 합니다. 배안에 불이 꺼져서 앞이 잘 안보였지만 그래도 더듬거리면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따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중에서 ‘출구‘ 라는 사인을 보지 않고 여기저기 찾아 헤매다가 죽어버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직 ’출구‘ 라는 글자만 보고 나간 사람만이 제대로 살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우리가 백화점 몰에서 샤핑을 할때 4층이나 5층에 차를 파킹 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샤핑을 마치고 난후에 집으로 갈때는 어떻게 나갑니까? 오직 Exit라고 하는 단어만 보고 그 길을 따라 나갑니다. 그러면 나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Exit이라는 단어를 보지 않고 그냥 나가게 되면 헷갈려서 헤매게 되죠. 그러니까 오직 출구(Exit) 라는 글자만 보고 일관성있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당시 불뱀에 물렀던 이스라엘 백성들중에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동한 사람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모세가 만들어서 매단 구리뱀을 쳐다보며 살리라’ 라고 한 말씀을 생각 하고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은 살아났던 것입니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장막집을 나왔지만 이곳 저곳을 헤매었던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한 곳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여기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진리인 것입니다. 5층에 파킹한 그 자리에서 나오는 길도 집중력있게 Exit 이라는 사인을 보고 나와야 하는데 예수님이 가신 그길을 가기 위해서는 말씀만 의지하고 나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16 24절입니다.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을 쉽지 않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도 쉽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내 제자가 될려거든 그리고 나를 따라올려거든 그런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가는 편한길 넓은길 보기 좋은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은 아닙니다. 그길은 사망의 길인 것입니다. 좁은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고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고 손해를 볼수도 있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길은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간절함

모세가 들고 있는 막대기에 매달린 구리뱀은 해나 달만큼 크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아무 자리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쳐다보는 사람이 확실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내가 모세가 들고 있는 구리뱀을 쳐다보아야 하겠다라고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구리뱀 사건을 말씀한것도 니고데모에게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을 알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요한복음3 1 2절입니다. 1.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니고데모는 구원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당시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십자가는 보이지 않을것입니다. 보이면 좋고 안보이면 말고 이런 마음자세를 가진 사람에게 십자가는 보이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 그 장대에 매달린 구리뱀을 보지 못하면 안되잖아요. 반드시 보아야 하고 그래서 반드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그 장대에 매달린 구리뱀을 쳐다볼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유명한 배우나 가수가 여기 샬롯 시내에 와서 공연을 한다고 해도 내가 그 배우나 가수를 보겠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는한 그 공연을 볼수 없는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몇주전에 살펴본 나아만 장군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병이 든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가 자기 문둥병을 고쳐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엘리사 선지자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몸이 깨끗하여질 것이라고 말하죠. 이 말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대노하여 우리 나라에는 더 좋은 강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저 보잘것없는 요단강에서 목욕을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서 돌아갈려고 합니다. 그때에 주변에 있던 지혜로운 종이 나아만 장군에게 이런식으로 말을 하죠. ‘장군님 이보다 더 좋지않은 일을하라고 명령해도 해야할 것인데 하물며 몸을 씻으라는 이 간단한 일을 하지 않고 그냥 갈 것이 무엇입니까? 날씨도 더운데 목욕하는셈 치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들어가 일곱 번 몸을 잠급니다. 그결과 나병에 걸린 몸이 어린아이의 살결같이 깨끗하여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나아만 장군에게 병치료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저 고개를 들고 간단히 장대에 매달린 구리뱀을 쳐다보면 될 것을 안쳐다보고 죽은 사람들을 말입니다. 불 뱀에게 물린 독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데도 ‘쳐다보라’ 는 말을 믿고 쳐다보기만 하면 되는데 보지 않아서 죽은 것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모세를 통하여 보여주신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 진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말씀하신 구원의 방법이기 때문에 십자가는 구원을 얻게 되는 길입니다. 누구나 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쳐다보면 그렇게 쳐다보는 중에 십자가 안에 있는 생명의 능력이 내게로 전달되어 영생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독사의 독에 의해서 온 몸의 열기가 불덩이 같고 몸이 부어 당장에 터져 죽을 지경이라 하더라도 쳐다만 보면 신비롭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지식이 아니고 과학도 아닙니다. 말씀으로 약속해주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어찌 다시 살아날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죽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리 뱀을 쳐다봄으로 살게 되자 마치 구리 뱀에게 무슨 마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리 뱀을 성전에 갖다 놓고 구리 뱀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이는 구리 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쳐다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고있습니다. 쳐다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쳐다보면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구리뱀 사건이 있고 난후 오랜 시간이 지나 남유다 왕국 제 13대 왕으로 히스기야 왕이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이 히스기야 왕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당시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는 장소인 전국에 있는 산당을 없애서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하고 깨끗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때 열왕기하 18 4절을 보시면 모세가 만들었던 구리 뱀을 부수어 버린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4. (히스기야 왕)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놋뱀을 ....부수고‘ 그리고 ’느후스단‘ 이라 불렀는데 의미는 ’놋 조각‘입니다. 그 구리뱀은 단지 놋쇠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렸던 것입니다.

구리 뱀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구리뱀을 숭배하고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왕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왜 이 구리뱀을 숭배하느냐 하면서 구리뱀을 부셔버린 것입니다. 그래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이라고 말씀하셨기에 십자가의 길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십자가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성숙한 자녀입니다. 바라옵기는 이 성경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