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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과 여섯번 차이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9-08-19 (월) 11:16 조회 : 77
설교일 : 2019년 8월 18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왕하 13장 14-19절





<열왕기하 1314-19>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15.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16.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17.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오늘 본문14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엘리사가 어떠한 사람입니까?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엘리야 보다 갑절의 영감을 가진 선지자 이었습니다. 스승 엘리야가 하늘나라로 승천한 이후에 그 겉옷을 가지고 요단 강물을 쳐서 요단을 건넜던 사람입니다. 여리고 지역에서는 물에 있는 독을 제거해서 땅의 토양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쳐주었고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죽었던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병이 들어 죽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수많은 암환자를 고쳐준 의사라 할지라도 암에 걸려 죽을수가 있듯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든자를 고쳐준 하나님의 사람도 병이 들어 죽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만이 병이 들어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도 병이 들어 죽을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당시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 가 위로차 방문합니다. 14절입니다.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죽을 병에 걸려 있는 엘리사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아버지여 내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병거와 마병은 전쟁 마차와 군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라를 지키는 힘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내 아버지여 내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라는 이표현은 과거에 엘리사가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가 승천할때 했던 말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엘리사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요아스왕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아스는 왜 죽어가는 엘리사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요아스왕이 정말 엘리사를 사랑하고 존경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11절을 보시게 되면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자라고 말씀합니다. 11.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요아스는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떠나고 멀리하라고 했던 엘리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거절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이렇게 애절하게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엘리사 죽음 이후에 불어닥칠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악을 행하였던 왕이었지만 엘리사가 죽고나면 이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엘리사가 외부의 나라로부터 오는 수차례의 공격에서 구하여 준 것을 이 요아스 왕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3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모압과 전쟁을 치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물이 없어서 전쟁다운 전쟁을 치루어 보지도 못하고 죽을 지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엘리사는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서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게 될 것과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에돔 골짜기로부터 물이 흘러와서 그 물을 마시고 힘을 내어서 이스라엘 나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하 3 20절입니다. 2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그러니까 물이 없다고 한다면 전쟁에서 승리할수 없었을텐데 물이 가득하게 되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6장을 보게 되면 아람나라가 종종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는데 그때마다 엘리사 선지자가 언제 어디로 침략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때마다 대비할수 있었고 전쟁에서 항상 승리를 할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엘리사는 여러 차례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었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나라를 지켜준 수호신과 같은 엘리사가 이제 병들어서 죽게 되었으니 요아스왕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염려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요아스는 엘리사를 존경해서 라기 보다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아버지여 내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라고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기도와 갑절의 영감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지켜낸 병거와 마병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외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기도와 영감을 통하여 교회와 가정과 사업체와 직장을 지키는 병거와 마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엘리사를 보십시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자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사랑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자신의 육신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울부짖고 있는 요아스에게 엘리사는 활과 화살을 가져오도록 합니다. 15절입니다. 15.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엘리사가 왜 갑자기 활과 화살을 가져오도록 합니까? 활과 화살은 그당시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입니다. 그러니까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는 표현은 그당시 적군인 아람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무장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요아스가 활과 화살을 가져왔을 때 엘리사는 있는 힘을 다하여 요아스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습니다. 16절입니다. 16.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엘리사가 자기손을 왕의 손위에 얹고. 이전 개혁한글 성경을 보시면 ‘왕의 손위에 안찰하고’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순간입니다. 죽어가는 순간임에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기의 손을 요아스의 손위에 얹고 안찰하였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왜 이렇게 있는 힘을 다해 요아스의 손위에 얹고 안찰을 했을 까요? 그것은 전쟁을 앞두고 있는 요아스 왕에게 자신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이 흘러가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게 되면 엘리사는 나라를 정말 사랑했던 사람인 것을 우리는 알수가 있습니다. 요아스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엘리사가 이렇게 행동을 했던 것은 자기가 죽고난 다음에도 이 요아스를 통해 이스라엘 나라가 이방 나라로 부터 계속 구원받을수 있기를 소원했기 때문입니다. 갑절의 영감을 가진 엘리사가 죽음의 순간에 활과 화살을 잡고 있는 요아스의 손위에 자기 손을 얹고 안찰하였던 것입니다.

활을 잡은 요아스의 손위에 손을 얹은 엘리사는 동쪽의 창문을 열고 그곳을 향하여 화살을 쏘아라고 명령합니다. 17절 상반부입니다. 17.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동쪽은 요아스가 싸워야 할 아람나라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을 향하여 활을 쏘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제 곧 아람나라와의 전쟁이 있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이방인 국가인 아람나라라는 것입니다. 남쪽 유다가 아니라 아람나라라는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도 싸우는 대상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싸워야 할 주된 원수는 누구입니까? 믿는 성도인 우리가 싸워야 할 원수는 사탄 마귀입니다. 인간들이 아닙니다. 불신자도 아니고 김집사, 박집사도 아닙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원수는 바로 어둠의 세력, 하늘의 공중 권세 잡은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어서 엘리사는 그 화살을 쏜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17절 후반부입니다. 17.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싸워야 할 대상을 분명히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화살의 의미를 가르쳐줍니다. 요아스가 가지고 있는 화살이 어떤 화살입니까?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라고 설명합니다. 여러분 이말은 아람과의 전쟁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의해서 승부가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그 승부가 결정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람과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내실것이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따라서 아람과의 전쟁은 승리가 보장된 전쟁임을 알수있습니다. 계속해서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치라고 지시를 합니다. 18절입니다. 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자 화살의 의미를 설명해준 다음에 그 화살을 들고서 땅을 치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 요아스는 몇 번을 쳤나요? 세 번을 쳤습니다. 그런데 19절을 보면 엘리사가 대단히 노합니다. 19절입니다. 19.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요아스를 향하여 아니 적어도 대여섯번을 칠것이지 왜 세 번밖에 치지 않습니까 라고 분노했습니다. “왕이 세 번밖에 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 번밖에 아람을 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엘리사의 예언대로 요아스는 아람을 세 번밖에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25절 하반부입니다. 25.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자 그러면 왜 엘리사는 세 번밖에 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엘리사가 왜 그렇게 화를 내었습니까? 왜냐하면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숫자적 개념이 문제가 아닙니다. 요아스가 세 번을 쳤든지 삼십번을 쳤든지 백번을 쳤든지 숫자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엘리사가 이미 요아스에게 그 화살을 들고 땅을 치라고 말하기전에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주었고 그리고 그 손에 들고 있는 화살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아람과의 전쟁이다, 그리고 그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 화살은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 구원의 화살이 되어주실 것이다. 그럼으로 승리가 보장되었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싸워줄테니까 너는 하나님만 믿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라는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미 화살의 의미를 설명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밖에 안쳤기 때문에 엘리사가 심히 노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아스는 엘리사가 자기의 손위에 손을 얹으면서까지 싸워야 할 대상을 가르쳐주고 화살의 의미를 설명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엘리사의 말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임박해서 엘리사가 하는 행동이 요아스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어짾튼 그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그사람을 어떻게 사용할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되어서 살아갔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최선을 다해 살았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배웠는가를 주님은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기의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때 주님은 그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한가하게 빈둥빈둥 놀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고기를 잡다가 그물을 깁고 있다가 세관에 앉아서 일을 보고 있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일에 앞장서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그 열심을 보고 주님은 부르시고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엘리사를 보십시오. 엘리사가 어떻게 갑절의 영감을 받았습니까?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습니까? 엘리야가 가는 곳곳마다 귀찮게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주었졌음에도 불구하고 대강 세 번 쳤던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잘알고 있습니다. 달리기 경주에서 누가 이겼나요? 거북이가 이겼죠. 토끼가 지고 나니까 너무 화가나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피나는 노력을 해서 다시한번 도전해서 경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경주를 하게 되었는데 두 번째 경주에서도 역시 토끼가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토끼가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달팽이가 토끼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너 또 졌다면서?” 그래서 열 받은 토끼가 너무나 화가나서 발로 달팽이를 뻥 찼버렸습니다. 그러자 달팽이가 저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일년쯤 지나서 토끼가 집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문을 열고 보니까 일년전에 자기가 발로 차버렸던 그 달팽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달팽이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니가 지금 날 쳤냐?‘ 여러분 달팽이는 일년동안 열심히 토끼집을 찾아왔습니다. 이 말 한마디 할려고.... ”니가 지금 날 쳤냐?

우리는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면 되지, 욕심내지 않고 착하게 살면 되지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만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요아스처럼 한번 두 번 세 번만 치고 그만 두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요아스처럼 활과 화살을 주셨습니다. 요아스처럼 악을 행하고 합당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활과 화살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형제 자매가 아니라 사탄 마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예수님이 승리를 해놓신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쟁은 승리가 보장된 전쟁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최선을 다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요아스처럼 우리의 성품에 문제가 있음을 잘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영적인 전쟁을 치루어 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이 화살은 구원을 위한 화살입니다. 구원의 화살입니다. 나를 위한 화살은 아닌 것입니다. 누군가의 영혼을 살려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 각사람에게 주신 화살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구원의 화살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나 전도를 몇번 시도하다가 그만 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계속 최선을 다해 달려가야 합니다. 세 번만 치고 그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도전을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탄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온전하게 승리를 하며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줄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화살을 가진 저와 여러분 성령님을 의지하여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수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