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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글쓴이 : 샬롯 지구촌 교… 날짜 : 2019-09-23 (월) 20:57 조회 : 69
설교일 : 2019년 9월 22일
설교자 : 임대문 목사
본문말씀 : 요 14장 12-14절





<요한복음 1412-14>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실패와 성공은 내가 얼마나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나온 세월들을 돌이켜 볼 때 우리가 몰라서 넘어졌습니까? 몰라서 죄를 지었고, 몰라서 혈기를 부리고, 몰라서 남을 미워했습니까? 몰라서 바가지를 긁었고, 몰라서 사랑하지 못했고, 몰라서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몰라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알면서도 실패했던 것입니다. 나에게 죄와 유혹을 이길수있는 힘과 능력이 없었고,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넘어지고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14:12)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여기서 그는 누구입니까? 제자들입니까? 아니죠 나를 믿는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이 행하셨던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보여 달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제 이 말씀을 하셨나요?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8절을 보시면 빌립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요청합니다.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사실 아버지라고 하는 표현은 예수님이 하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자꾸 ‘아버지, 아버지’라고 하시니까 제자인 빌립도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한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여주십시오’ 이 요청은 그당시뿐만이니라 오늘날에도 이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라 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다보면 ‘하나님 보여달라’ 고 말을 하시는 분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보여주시면 제가 교회에 갈께요’ ‘하나님을 보여주시면 제가 믿죠’ 이렇게 하나님을 보여주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하겠다는데 우리는 그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왜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은 인간의 육적인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영은 형상이 없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 마음도 보여주지 못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그런데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주십시오’ 라고 예수님에게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껏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의심이 없어질 것이고 앞으로 확실하게 믿고 살아가겠습니다. 이런 바램이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의 이 요청에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는 식으로 말씀 하신것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으로 12절 말씀을 하십니다. 12. ...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전체인 맥락으로 연결해보면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사람도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숩니다. 다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뿐입니다. 그럼으로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이 할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해나가는 길인 것입니다.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는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없는 것입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로 왕 앞에서 하나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다윗도 블레셋사람들과 골리앗 장군 앞에서 하나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아합왕과 바알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믿는 성도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그 일을 행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일들을 함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보여 줄 수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4 23절입니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4:23)

회당에서 가르치시며(교육) 둘째는 복음을 전파하시며(전도, 영혼구원), 셋째는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치유사역)

가르치시고, 복음 전파하시고, 치유하시는 사역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하시던3대 사역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성도들인 우리도 이러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에게는 이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본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일들은 사실 부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와 영혼구원과 치유사역을 위해 우리는 가정과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사람도 할 것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 자신이 하신 일 보다 더 큰일도 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14장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말인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이라는 말씀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과 주님을 믿는 자들이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없으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이 하셨던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은 곧 보혜사 성령이 오심을 의미합니다. 16 7절입니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16:7)

보혜사 성령이 이 땅에 오시는 것이 무엇과 연관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시지 않으면 성령님은 결코 오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셔야만 보혜사 성령께서 오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 있었기에 성령님께서 이 땅에 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보혜사 성령님은 약속대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사건이 바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강림의 사건입니다.

사도행전2장을 보시면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을 붙잡고 전심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강림하셨습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불로 임하신 것입니다. 그 날에 그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지내던 그들이 담대히 입술을 열어 하나님이 행하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한번 설교를 할 때에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장인 행3장을 보면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님 이름으로 일으키는 사건이 나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는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자신들을 향하여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 앉은뱅이를 향해서 이렇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금과 은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러면서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나 걸으며 뛰기 시작했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여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입술로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증거될때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는 동안에는 성령과 능력으로 공생애 활동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 38절을 보시겠습니다.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10:38)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이러한 능력이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심지어는 예수님까지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역한 것을 보여줍니다. 자 성령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행하셨던 그 일을 계속하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면 그 성령님이 지금 어디에 와 계십니까? 바로 내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고린도 전서 3 16절입니다.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자 개가 사는 집은 개집입니다. 한국 대통령이 사는 집은 청와대라고 하고 미국 대통령이 사는 집을 백악관이라고 합니다. 토끼가 사는 집은 토끼장입니다. 성령님이 사시는 집은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성령님이 거하고 계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지금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십니다. 바로 내 안에 거처를 정하고 나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안에 거하신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합니다. 요한 14 16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이는 ‘돕기 위해 곁에 부름을 받고 와 계신 분’이란 뜻입니다. 그 밖에도 보호자, 변호자, 상담자, 위로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영어성경은 카운슬러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아프리카 어느 지역을 선교하시는 ‘마요즈‘ 라고 하는 프랑스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선교사님이 그 부족의 말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아주 고생을 했던 단어가 있었는데 그 단어가 보혜사 파라클레토스이었습니다.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알아들을수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자기를 도와주는 원주민 조수에게 보혜사 성령은 이런 분이라고 자세하게 설명을 한 다음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우리 옆에서 구부리는 사람" 으로 표현하면 좋겠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니, 아프리카에서는 한 번 여행을 하면 3~4개월 정도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때 많은 짐꾼들이 짐을 지고 대열을 지어 그 여행을 따라 나선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행도중에 그 짐꾼 중의 한 명이 병에 걸려서 더 이상 여행을 못하게 되면, 그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게하고 병든 사람은 여행에 방해가 되니까 그냥 버려두고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굶어 죽던지, 맹수에게 죽임을 당하던지 대부분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사람이 불쌍해서 이 사람을 업고, 마을까지 가서 구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병든 사람을 업기 위해서, 이 사람 옆에 구부리는 사람, 이 사람을 가리켜서 자기들 말로 ‘옆에서 구부리는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구부리는 사람 때문에 이 병든 사람은 마을까지 가서 병을 치료받고 나아서 생명을 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요즈 선교사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번역할 때 ‘옆에서 구부리는 사람’으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가 피곤하고, 죄에 허덕이고, 지쳐 쓰러져 죽어갈 때 우리 곁에 친히 찾아 오셔서 엎드려 허리를 굽히시고 우리를 업고 가시는 좋으신 도우미가 되십니다. 우리 연약함을 아시는 보혜사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하여 허리를 구부리시고 우리 곁에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우리가 계속 하기 위해 우리는 초자연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초능력자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기도하라고 강조하십니다. 13절과 14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3절에 너희가 내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14절에도 내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이렇게 강조하여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아시다시피 기도를 의미합니다. 왜 기도를 해야 합니까? 그것은 성령님께서 기도하실 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폭군이 아닙니다. 막무가내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할 때 역사하십니다. 기도로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성령님은 역사하십니다.

저는 생각이 많이 하는 편이다가 보니까 가끔씩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버튼을 누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멍하니 있다가 엘리베이트가 가만히 있는 것 같아서 정신차려 보면 버튼을 누르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는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준비되있고 내가 그안에 있다 할지라도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그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기도하지 못함으로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13절과 14절에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인격을 걸고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서 기도응답을 받는 것은 모두 주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조지뮬러를 기도의 사람이라고도 부르지만 고아들의 아버지라고도 부릅니다. 죠지 뮬러는 고아원을 세워 수천 명의 고아들을 한 번도 굶기지 않고 먹이고 입혔습니다. 그런데 조지 뮬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고아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저는 하나님이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고아원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지물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했고 주님이 시행하셔서 때마다 시마다 필요한 물질과 음식을 제공해주신 것입니다. 하루는 아침에 고아들에게 먹일 음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조지뮬러는 식당에 300명의 고아들을 앉혀놓고 빈 그릇을 놓고 식사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곧 먹을 것을 보내주실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식사기도가 끝나자 마자 문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아들에게 먹일 빵을 누군가가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난후에 또 문을 두드렸는데 문을 열어보니까 우유를 가득 실은 수레가 고아원앞에서 고장이 나는 바람에 무게를 줄여야 할 것 같아서 고아들 먹이라고 우유통 10개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조지뮬러는 늘 기도제목과 응답된 날짜를 꼼꼼하게 기록한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5만번이나 응답해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믿고 기도하는 조지물러의 기도를 주님이 책임지시고 응답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해나갈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내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내속에 들어오셔서 도우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연약하고 두려워 떨었던 자들입니까?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힘입었을 때 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님이 행하셨던 일을 행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하나님 보여달라고 말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보여줄수 있습니까? 성령충만을 입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일을 시작하시도록 먼저 기도할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초능력자가 될 필요도 없고 내가 보여줄 것은 없습니다. 다만 내속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실수 있도록 기도를 하는 것에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낙엽이 떨어지듯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주시는 일은 성령님이 하십니다. 바라옵기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