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중에 있을때

우리는 가끔 예측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한다. 교통사고, 질병, 인간관계의 갈등, 상실, 실패, 실연,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등이 그렇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건에 잘 반응하는 것이다.
올바르고 건강한 반응은 고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미 일어나 버린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대부분 고통스런 상황에 처하면 그 상황을 부인하거나, 때론 남을 탓하게 된다. 혹은 고통으로부터 도피할 길을 선택한다. 그런 반응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경에 나온 믿음의 사람들은 직면한 문제를 부인하지 않고 문제를 인정한다. 그 문제를 하나님께로 가지고 나아간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석하고, 문제에 반응 했다.
인생 전체로 볼 때 고통의 문제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종으로 팔린다. 당시 요셉이 경험한 고통은 상상을 초월 한다. 하지만 요셉은 그 고통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일상의 삶에 충실한다.. 그는 돌아갈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 할 수 있는 일상의 삶에 성실히 임한다. 요셉이 국무총라 될때 그는 축복된 자리를 끝까지 성공적으로 지속할수 있었던 것은 고통의 시간이 밑거름이 되었던 탓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고통 속에 축복의 씨앗을 담아 두신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힘이 들어도 용기있게 고통의 보따리를 열어야 한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 나면서부터 맹인된 거지, 그들은 고통 때문에 결사적으로 예수님을 만난다. 고통이 예수님을 만나는 촉진제가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게 된다.
고통스런 현실을 만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는 것이다. 칠레의 산호세 광산이 매몰되었을 때 그곳에 33인의 광부들이 갇혀 있었다. 그들이 700m 아래 지하에서 구출을 기다리는 동안, 삽질을 해서 지상으로 올라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매일 규칙적인 일상의 삶에 충실했다. 음식을 소량으로 나누어 먹으며 생명을 유지했다. 그들의 할 일은 두려움을 정복하고 믿음을 갖는 것이었다. 절망 중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소망을 붙잡고 인내했다. 결국 69일 만에 그들은 구출되었다. 폴 틸리히는 “믿음이란 용기를 가지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코로나 19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속에서 생활하는 요즘이다.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은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 상황에서 성실히 내게 주어진 묵묵히 해나가자. 훗날 인생 전체적인 그림에서 볼 때 요셉처럼 지금 이 고통과 어려움이 내게 축복의 기회가 되었다고 주님앞에 고백하게 될 것을 믿으며 지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