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화목의 상징

Author
kgmcc
Date
2020-11-14 19:30
Views
8


 

 

대부분의 사람은 한쪽만 보고 주장한다. 두 친구가 싸웠다. 이사람 말을 들으면 이쪽을 주장하게 되고 저사람 말을 들으면 저쪽을 주장하게 된다. 마찬가지 원리로 “사랑”을 강조하는 사람은 용서하자고 한다. 은혜가 중요하다고 한다. “공의” 를 강조하는 사람은 징계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의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사랑과 공의의 두 간격을 해결하는 길은 십자가뿐이다. 죄의 댓가는 죽음이다. 그런데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었다. 그것이 십자가다.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를 다 충족시킨다. 부모의 마음은 십자가를 조금 이해한다. 자녀가 말썽 부린다. 진노가 일어난다. 동시에 불쌍하다. 화도 나고, 눈물도 난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마음이 십자가의 마음이다.

가난한 학생이 있다. 학비를 내고 공부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그 학생만 예외로 할수 없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심지어 그 학생도 모르게 학비를 대신 내준다. 이것이 십자가다.

선생으로서 모든 학생들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했는가? 한가지 잣대로만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길이다. 십자가는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자로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 십자가는 버림받은 사람, 실패자를 재활용한다. 다시 세우고 승리자가 되게 한다. 고난이 온다. 벗어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이기는 과정을 통해 멋있어지기를 원하신다. 강함과 성장이 목적이다.

마귀는 힘들게 하려고 고난을 준다. 망신 주려고 고난을 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멋지게 하신다. 망신에서 영광을 누리게 하신다. 이것이 십자가의 지혜이다. 성도에게 십자가만한 복은 없다. 십자가의 길 만한 지고의 지혜는 없다. 험한 십자가 붙들고 살아가자.

평화를 외치는 사람은 많다. 희생을 외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작은 희생이라도 감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신앙이 무엇인가? 자기 부인에 있고, 십자가를 지는데 있는 것이다(눅9:23). 생활 속에서 손해 좀 보고 살자. 희생하며 살자. 그러면 평화를 맛볼 것이다. 좀 더 손해를 보고 살아갈수 있다면 예수님도 인정하는 제자가 아니겠는가? 세상은 이런 자들로 인해 지금까지 평화를 누려 왔음을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된다. 미국 선거가 끝난 지금 이싯점에 믿는 성도는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뒤따라가는 본을 보이며 살아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