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헌신은 비판이 따른다

Author
kgmcc
Date
2019-12-22 21:02
Views
110


마리아는 자신의 가장 귀한 옥합을 깨트렸다. 왜?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계산을 초월한다. 사랑은 상식을 초월한다. 이 행동에 주변사람들은 상식적인 말을 했다.

‘왜 쓸데없이 낭비하느냐?“(막14:4)

맞는 말이다. 삼백 데나니온이면 노동자가 일년 일하는 동안 한푼도 쓰지않고  모아야 가질수있는 큰 액수이다. 이곳 미국에 사는 젊은 노동자의 일당삯이 100불이라면 3만불이 된다. 대충 계산해도 한국돈으로 3천만원이 넘는다. 재벌에겐 푼돈일수 있겠지만 여인이나 노동자에게는 큰 액수다. 그런 가치있는 향유를 마리아는 한순간에 바닥에 쏟아 부었다. 진정한 헌신자는 말이 없다. 귀한 가치가 있는 헌신임을 알아달라 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그향유의 가치를 알수있게 되었는가? 가롯 유다가 말했기 때문이다(요12:5). 진정한 헌신은 주님의 섭리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가롯 유다 같은 악인을 통해서라도 주님은 귀한 헌신을 알게 하신다.

귀한 헌신은 주변사람들을 아름다운 냄새로 가득하게 한다. 마리아의 행동은 주님뿐만 아니라 주변의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들에게도 아름다운 냄새를 맡게 했다. 믿음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다 풍겨나오는 아름다운 냄새에 취했다.

삼십 데나니온에 예수를 파는 악인이 삼백 데나니온를 드리는 헌신자를 비난하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보게 된다. 당시 예수님이 계신 앞에서 그랬다면 오늘날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작금 한국이 처한 상황은 이루 말로 할수 없다. 주사파들이 정권을 잡은 이후 그들이 행한 행동은 온전한 사람의 정신을 혼미케 한다. 헌데 더 역겨운 모습은 일부 목회자나 그리스도인들이 주사파 정권을 변호하고 우파 목회자나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한국이 처한 현상황은 어쩌면 삼십 데나니온에 예수를 파는 가룟유다가 삼백 데나니온의 향유를 예수님께 쏟은 마리아를 비판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면 이는 너무 과도한 상상일까?

어쨌든 그리스도인은 주변 사람들의 평가보다는 주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 하겠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변사람들의 오해가 있다 할지라도 주님은 나의 그 어떤 행위라도 인정하시고 칭찬하실 것이다. 믿고 담대하게 신앙생활 해나가자.

‘온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