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복치료(Suit Therapy)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누가 노숙자인지 우리는 단번에 알수 있다. 옷차림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옷차림을 보면 그사람의 내면 상태를 쉽게 짐작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내면이 외면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내면을 다듬고 가꾸는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음의 상태는 곧 겉으로 나타난다. 요즘과 같이 코로나 펜데믹 시기에 예전보다 삶이 버겹고 웬지 마음이 울적할때는 우선 밝은옷을 차려 입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이미 마음에 병이든 사람은 밝은 옷으로 바꾸어 입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점잖은 남자도 예비군복을 입으면 약간 터프한 가이(?)가 되지만, 반면 양복을 입게 되변 신사로 변모(?)해진다.이것을 심리학 용어로 ‘의복치료’(suit therapy)라고 부른다.
유명한 신학자인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를 보면, ‘가장하라’는 내용이 있다. 그런 척 하고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그렇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의인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의 삶을 보면 아직 의인이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하시니까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것 뿐이다. 내가 의인이라고 믿고, 의인인 척 하고 살면, 나중에 의인 같은 마음과 행동을 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마지막 그날에 주님이 채워주셔서 내가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빌 3:21).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한지 오래되어도 의인인척 가장(?) 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 믿음이 없는 것이다. 옷을 바꾸어 입어보지도 못하는 사람은 이미 마음에 깊은 병이 든 상태와 같은 이치이다. 하나님이 나를 의인으로 인정하겠다는데도 안 믿으니까 믿음이 없지 않는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더욱 남을 정죄하고 살아간다. ‘그렇게 체하고 살바엔 차라리 믿음생활하지 말라’ 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짜 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첫 단계는 변화된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 과정을 ‘옷 입으라’ 고 표현한다.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 입고”(골 3:21). 처음엔 내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는 것 이지 원래 나는 이런 고상한(?) 성품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겸손한 듯 행동하고 오래 참음의 행동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진짜 겸손과 오래 참음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변화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옷 입음의 원리이다.
우리는 다 부족한 존재이다. 변화를 원하지만 변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옷을 입으라’고 말한 것이다. 성경의 원리대로 옷부터 입자.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덮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만을 보시는 것을 기억하자.
이곳 미국은 아무래도 한국보다 주변의 시선을 살피지 않고 살게 된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나자신의 내면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서라도 이전보다 좀더 옷차림에 신경을 써보면 어떨까 한다.
새해 첫주일이다. 이 새해에는 예수님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거룩한 자녀로 하루하루 살아가도록 모두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