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영적 성숙 과정

Author
kgmcc
Date
2021-02-20 21:35
Views
9


 

날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누구 죄냐고 묻는다.

부모 죄냐, 자신 죄냐? (요9:1) 이처럼 현재 상황을 과거에 매여 해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과거에 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항상 미래적 이다. 그리고는 맹인 눈을 뜨게 한다. 이것이 메시지다. 맹인은 우리를 상징한다. 어둠 속을 산다. 비참하다. 존귀를 잃었다. 걸인이다. 불안하다, 두렵다. 이 어둠과 불행에서 건질 분은 예수님이시다. 맹인이 눈뜨는 걸 보고 '우리도 희망 가지라' 는 메시지가 있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른다.

말씀 만으로도 고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깨끗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 행동에 대해 창조할 때 진흙으로 인간을 만드신 창조자 적인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진흙으로 눈을 고쳤다고 해석하는 신학자들이 있다. 그럴듯한 해석이지만 실상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성경이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맹인이 고침을 받는 과정에서 이유를 알수 있는 행동도 있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완전히 고칠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로암 으로 가라' 말씀하신다. '실로암' ‘보냄을 받았다’ 는 뜻이다. 보냄 받은 곳까지 가라는 것이다. 신앙은 눈 뜨는 것으로 멈춰서는 안된다. 보냄을 받은 곳까지 가야 한다. 충성과 순종의 자리까지 가야 한다. 거기에 기적이 있다.

 

눈 떠야 할 사람 많다. 눈 뜨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

왜 여전히 맹인으로 사나? 기적의 현장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보냄을 받는 곳까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진흙을 바르기만 하고 마냥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실로암으로 가야 한다.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 그리고 예배의 자리로 가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순종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사는 게 모두 기적일 것이다.

보내심을 받은 곳에서 신앙 생활 해나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