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멍에

Author
kgmcc
Date
2021-03-28 02:10
Views
9
 



 

 

가짜 선지자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나무 멍에” 를 꺽어 버린다.(렘28:10)

하지만 하나님은 ‘쇠멍에‘ 를 지게 하신다. 2년 안에 바벨론 포로에서 벗어난다는 “장미빛 가짜 예언” 하던 하나냐는 2달 만에 죽는다.

그말을 믿고 따랐던 시드기야 왕은 자기 눈 앞에서 아들들이 죽는다. 자신은 두 눈 뽑히고, 철사에 묶여 질질 끌려 바벨론으로 간다. 이로서 유다는 멸망하게 된다. 나무 멍에를 거부하다가 쇠 멍에 지게 된 것이다.

요나에게는 다시스로 가라는 것이 나무 멍에였다.

거부하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죽다 살아나는 쇠멍에를 지게 된다. 멍에는 단순 “고통 견딤” 이 아니다. “목적” 이 있다. 멍에를 지는 동안 성장과 훈련이 있다. 왕자 모세에게 미디안 광야는 멍에다. 자기 양도 아닌 장인 양을 치며 살았다. 낮아짐, 비굴한 삶의 연속이다. 이 40년이 “새 모세” 가 되어 구원자 모세로 변화시킨 것이다. 룻을 보라. 수치를 안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먹을 게 없어서 “이삭 줍기”한다. 이삭줍기는 낭만이 아니다. 수치, 절박, 생존의 멍에다. 룻은 자기에게 주신 멍에를 성실하게 진다. 그것이 복이 되었다. 보아스를 만나서 반전의 은혜를 누린다. 메시야 조상이 된다. 멍에는 변장된 축복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는 자”로 부르셨다. “이해자”가 아니다. 이해하고 멍에 지는 거 아니다. 믿고 지는 것이다. 드라마 볼 때, 배우 쳐다보지 말라. 상황 결정은 작가가 하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냐도 아니다. 물론 시드기야도 아니다. “하나님”이 결정한다. 하나님의 선한 결정을 믿으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오라한다. “내 멍에를 메고 배우라. 그러면 쉼이 있다.”(마11:28-30) 멍에는 소 2마리가 같이 끈다. 대개 어미소와 새끼 소가 짝 이룬다. 어미소가 리드하고 더 많은 짐을 짊어진다. 이걸 통해서 새끼는 “배운다.” 어미의 페이스를 맞추면 “쉽다.” 어미 소는 새끼의 스피드와 힘을 안다. 맞춰준다. 멍에가 없으면 못 배운다. 사역의 일이 힘드는가? 일꾼에게는 일없이 빈둥 빈둥 노는 것이 더 지옥이다.

나무 멍에는 내게 딱 맞는 멍에다. 그게 복된 삶이다. 나무 멍에를 피하거나 꺽으면 주님은 자신의 멍에를 주신다.

쇠멍에를 주신다. 그럼으로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번 한 주 는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신 고난 주간이다. 내게 주어진 멍에를 지고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