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날에

요즘은 소위 ‘회복(Recovery)의 시대’ 라 불리는 듯하다. 바이든 정부가 앞장서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무너진 각 분야를 회복시키기 위한 새 정책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 시행되고 있다. 그만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적, 심리적으로 위축되었고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이 현재 계속 시행되는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회복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는 바람직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계속되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경기 부양책의 정책으로 인해 사람들이 지나친 수동적인 자세와 의존적인 자세가 그것이다. 그래서 작은 상처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누군가가 나를 회복 시켜라’ 는 식으로 드러누워 버린다면 이것 또한 적잖은 문제다. 약을 너무 좋아하면 몸의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작은 마음의 상처도 감당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때 듣었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감기는 뛰고 달리면 낫는 거야!’ 그렇다. 어쩌면 뛰고 달려야 할 시간에 오히려 웅크리고 앉아서 ‘상처 타령’ 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동안 심리학의 기본 전제는 ‘인간은 병리적’ 이라는 것 이었다. 그래서 치유를 위하여 주로 어린 시절의 상처, 상실, 학대 등을 연구했는데, 인간은 온실의 화초와 같아서 절대로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전제로 상담에 임해왔었다. 그렇지만 최근에 와서는 사람이 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은 고통을 견디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역설적인 존재’ 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조심할 것이지만, 그것을 너무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진 ‘자기 정화 능력’ 이라는 자원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정신적 자기치유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회복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우리는 결코 나약해서는 안 된다. 고통에 대해 오히려 적극적이어야 하고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어머니를 보라. 가장 많은 고통과 고난을 마음에 담고 계신 분이 세상의 어머니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정호승 씨가 쓴 시 ‘내 등에 짐’ 을 소개한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를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 이었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아니면 결코 볼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고통과 아픔속에서 세상의 어머니가 존재하게 되심을 이 어머니 날에 생각해본다. 천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이렇게 고백해본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생전에 제가 비록 당신의 등에 있는 짐이었지만...,
오히려 사랑이라 여겨주셨음을....
어머니,
이제 곧 천국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