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시기심

Author
kgmcc
Date
2021-06-19 22:42
Views
21


 

더 가지면 행복할 줄 안다. 없어서 불행하다 생각한다. 아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

사울왕이다. 시기심을 이기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다. 시기심은 자신, 가족, 국가까지 파멸시킨다. 시기심은 적과 아군을 혼동시킨다.

잘 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적을 바로 아는 것이다.

아군 끼리 싸우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시기심은 한 순간에 이 구분을 사라지게 한다.

총구를 친구에게 겨눈다. 비극이다. 멀리 있는 사람을 시기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정치인을, 부자는 다른 부자를, 음악가는 음악가를 시기한다.

모차르트 시기하는 살리에르를 보라. 목사를 시기하는 것은 스님이 아니다. 또 다른 목사다.

겸손하고 괜찮아 보이는 목사가 예상외의 행동을 한다. 왜? 시기심, 열등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주신 은사, 능력을 허비한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시기심을 방치하지 말라.

모세의 소집에 응하지 않은 “엘닷과 메닷” 이 예언한다.

기분 상한 여호수아가 ‘그들의 예언을 말리라’ 고 요청한다.

모세 말이다. “네가 내 대신 시기하냐? 하나님이 그들 뿐 아니라 모든 백성이 다 선지자 되게 하길 원한다.”(민11:29)

모세의 인격 사이즈가 다르다.

시기심의 한계를 극복한 여호수아는 희생과 어려움을 먼저 선택하는 사람으로 변한다.

정복이 어려운 불모지 “딤낫 세라” 를 구한다.(수19:50) 그리고 섬김의 상징인 "딤낫 세라" 에 묻힌다.

여호수아에게 있어 “딤낫 세라” 는 시기심을 이기고, 희생의 자리로 가는 십자가의 길이다.

희생하면, 시기심은 사라진다. 시기심은 하찮은 감정이다. 하찮은 것은 하찮게 여기라.

믿음이 뭐냐? 시기심 같은 하찮은 감정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이다.

시기심 때문에 쓸데없는 긴장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다.

사울왕이 대승적 자세를 취했다면 어떠했을까?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 이 노래를 좋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장수 10명 있으면, 블레셋 뿐 아니라 유프라테스까지 정복하겠군!’

‘이런 장수 더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지!’

지금 미국 정치인들의 행동을 보면 정말 답답하다. 특히 공화당 지도부가 하는 모습을 보면 이젠 안타까움을 넘어 속이 뒤집혀진다. 치졸한 개싸움 그만하라! 하나님이 맡긴 사명 감당하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시기심은 작지만, 치명적인 십자가의 원수다.

자, 이제 하찮은 시기심 날려버리고 더 큰 승리를 위해서 나가자.

깊숙이 시기심을 감추고 하찮게 살겠는가?

믿는 성도일수록 조금 더 멀리,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