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옷입으라

Author
kgmcc
Date
2020-01-19 22:16
Views
93

내겐 세명의 딸이 있다. 모두가 다 예쁘고 착하다. 헌데 바깥에선 각각의 딸을 보는 눈들이 다른듯하다. 유독 한 아이를 더 마음에 들어한다. 왜냐하면 그아이는 다른 둘 보다 옷을 더 잘입고 다니기 때문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귀걸이도 착용한다. 주변 사람들 눈에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입고 다니는 옷’ '머리 스타일' 인듯 하다. 그사람이 입고 다니는 옷이나 머리 스타이을 보면 평시에 우울하고 소극적인 사람인지, 밝고 활발한 성품의 사람인지를 쉽게 구별할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옷은 그 사람의 내면을 더 잘 드러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심리학자들은 삶이 힘들고 마음이 울적할때는 치유의 전 단계로 밝은 옷부터 입고 다니라고 충고를 한다. 옷을 바꿔 입는 것을 통해서도 치유는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과 옷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점잖은 남자도 예비군복 입혀 놓으면 종종 해괴망측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반면에 정장을 입혀 놓으면 전혀 달라진다. 심리학 용어로 이것을 ‘의복치료’(suit therapy) 라고 한다.

S 루이스의‘순전한 기독교’를 보면, ‘가장하라’ 는 내용이 있다. 그런 척 하고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의인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의 삶은 아직 의인이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하시니까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것 뿐이다. 내가 의인이라고 믿고, 의인인 척 하고 살면, 나중에 의인 같은 마음과 행동을 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마지막 그날에 주님이 채워주셔서 내가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빌 3:21).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한지 오래되어도 의인인척 가장(?) 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의인으로 인정하겠다는데도 안 믿으니까 믿음이 없지 않는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더욱 남을 정죄하고 살아간다.‘그렇게 체하고 살바엔 차라리 믿음생활하지 말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짜 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첫 단계는 변화된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 과정을 ‘옷 입으라’고 표현한다.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 입고”(골 3:21). 처음엔 내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는 것 이지 원래 나는 이런 고상한(?) 성품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겸손한 듯 행동하고 오래 참음의 행동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진짜 겸손과 오래 참음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변화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옷 입음의 원리이다.

내게 욱하는 성질이 있다. 반응이 올 때마다 친절로 옷 입는다. 억지로라도 남에게 문도 열어주고 배려도 해준다. 이렇게 친절로 옷 입으면 나중에는 친절해 진다. 어떤 사람에게 교만이 있다. 자꾸 남을 무시한다. 억지로라도 겸손하게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말을 해보라. 나중에는 진짜 겸손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변화되기 이전에 미리 옷부터 입어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 부족한 존재이다. 변화를 원하지만 변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옷을 입으라’고 말한 것이다. 성경의 원리대로 옷부터 입자.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덮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만을 보시는 것을 기억하자. 예수님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