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위치 보다는 관계

Author
kgmcc
Date
2021-08-28 21:50
Views
30


 

요셉은 바닥에서 시작했다. 그를 죽이려는 형들의 음모로 구덩이에 떨어졌다. 절대 절명의 위기였다. 구덩이 신세였다.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려서 애굽에서 노예가 되었다. 목숨은 건졌으나 여전히 바닥인생이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긴 결과 감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노예보다 더 깊은 바닥인생으로 전락했다. 요셉의 17세부터 30세까지는 완전한 바닥인생이었다. 구덩이, 노예, 감옥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 요셉은 위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과 고난에 처하게 되면, 자신의 비참한 위치에 초점을 맞춘다. 부르짖는 내용도 이 험악한 위치에서 건져달라는 기도가 대부분이다. 기도는 간절한데, 내용은 위치 변화에 대한 부르짖음이다. 고난의 상황에서는 너그럽게 봐줄 수 있다. 그러나 좀 형편이 나아진 상황에서도 위치에 대한 부르짖음만 있다면, 지극히 기복적인 신앙이다.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위치보다 관계를 점검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창39:2) 고 말한다. 위치는 노예인데, 관계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모습이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치는 감옥인데, 관계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모습이다. 심지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도 위치보다 관계에 관한 관심이 크다. 요셉은 위치 때문에 교만해지거나 타락하지 않았다. 총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쓰임 받는 종이라는 의식을 잃지 않는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바닥이면 어떤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라면, 그것이 부흥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위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두려움이 없다는 고백이다. 위치가 아닌 관계의 확신이 있는 다윗의 고백이다. 성도는 바닥이나 정상 그 어디에도 놓일 수 있다. 문제는 위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모든 성도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이끌면 그것이 바른 양육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관계를 중시했다. 그래서 공생애 기간동안 제자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생활했던 것이다. 이런면에서 볼 때 성도의 삶에 고난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바른 관계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된 인도하심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광야의 40년을 통과하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어 나간다. 그래서 광야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광야라는 위치에 마음을 두지 말고, 바른 관계를 맺는 축복의 장소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지금 서있는 곳이 어디든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