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와 새출발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곧장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야보고와 요한을 부를 때도 그들은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마태를 부를 때에도 세리의 직업을 버리고 곧장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제자들은 탁월함은 없었지만 마무리하는 능력은 매우 신속하고 탁월했다.
유능하지만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 무엇이든지 잘 끊지 못한다는 점이다.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고 미적거린다.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래서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머뭇거리는 사람이 끊는 것은 언제인가? 망할 때이다. 모든 기회를 다 놓치고 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음이 있었다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중독자들이 그렇지 아니한가? 많은 희생이 있었고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이다. 막상 쓰임 받을 시간이 거의 남지 않을 때이다.
생전에 많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이며 계속 방탕의 길을 걸어오다가 암에 걸려 죽음을 며칠 앞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하나님앞에 처절하게 간구했다. “하나님, 한번만 더 제 생명을 연장해주시면 이번엔 정말 남은 생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그러자 하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제, 그만 올라오거라”
팻 맥라건의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 라는 책이 있다. 제목만 들어도 강력한 인사이트가 생기는 책이다. 바보의 특징은 결심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심하다' 라는 영어 'decide'는 이런 유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de'는 '어디로부터'(from)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cide' 는 'cut'(자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결심이란 '무엇으로부터 잘라내다'라는 뜻이 있다.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잘라내고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결심이다. 어설픈 것을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어정쩡한 습관을 잘라내야 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는 사람은 결심한 것이 아니다.
결심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서가 불안해서 앉으면 종이를 찢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이 증세를 고치기 위해서 여러 정신과 병원을 찾아다녔다. 어떤 의사는 과거의 상처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어려서 종이로 머리를 맞은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어떤 의사는 과거의 경험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혹시 종이 공장 근처에 산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어떤 의사는 인간관계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종이 공장 여종업원과 헤어진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민 끝에 마지막 의사를 찾았다. "무엇 때문에 왔는가?" "나는 정서가 불안해서 앉으면 종이를 찢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종이 찢지 마!" 그래서 종이를 더 이상 찢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쉬운 일을 어렵게 생각한다. 결심하고 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냥 안 하면 된다. 그냥 끊으면 된다. 그냥 돌아서면 된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일은 쉽다. 그분은 어려운일도 쉽게 행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다음주부터 새해가 된다. 좋은 출발은 성공한 마무리의 연장에 있음을 기억하자. 사도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다(빌3:13).
올 한해 일어난일에 대해선 치매증 환자가 되자. 앞으로
내년 새해에 일어날 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힘차게 걸어갈수 있게 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