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필요에 의한 삶

Author
kgmcc
Date
2022-01-01 22:20
Views
131


 

필요를 따라 사는 삶이 있고, 원함을 따라 사는 삶이 있다. 세상은 원함으로 살지만, 성도는 필요를 따라 살아가야 한다. 원함은 많은 것을 요구하나, 필요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종이에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펜은 1개이다. 그러나 자기가 갖고 싶은 펜은 여러개 일 수 있다. 미혼이 이성을 원함으로 바라보면 여러 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요로 바라본다면, 남편이나 아내 1명이면 된다. 이성을 원함으로만 사는 사람을 바람둥이, 카사노바, 꽃뱀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이성을 필요로 바라보는 사람을 성실한 남편과 아내라고 부른다. 필요에 집중하면 생명이 충만해지고, 원함에 집중하면 황폐함을 맛보게 된다. 신앙의 삶이란 원함으로 살지 않고, 필요로 사는 삶인 것이다.

애굽에 있을 때 이스라엘의 원함은 탈출이었다. 탈출이후 마실 물이 없자 원망한다. 마실 물이 주어지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한다. 먹을 만나가 생기자 고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설득과 권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 원함만을 추구한다. 너무 집요하게 원하면 주신다. 그것이 심판이다. 고기를 원하니 고기를 주셨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1개월을 고기만 먹게 주셨다.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민 11:20). 마실 물이 부족한 형편에 고기만 먹게 되는 것은 또다른 고역이다. 광야에선 만나와 같은 식물 음식이 훨씬 더 적합하다.

한달 전에 이스라엘의 원함은 고기였다. 그러나 한달이 지난후 이스라엘의 경멸의 대상도 역시 고기였다. 원함이 경멸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성경은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자와의 결혼을 원한다. 원함이 지나치면 들어주신다. 그것이 심판이다. 자기의 원함이었던 불신 배우자가 몇 년 지난 후에는 불행의 근본 원인으로 드러날 때가 많다. 원함이 경멸로 바뀐 것이다. 일단 원함의 마음이 되면 인간은 무엇이 좋은 것인지 모르게 된다. 그러므로 최상의 기도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인생이 필요를 따라 사는 인생이다. 원함으로만 연속되어지는 삶은 불행이다. 원함대로 살고 이루어지는 삶은 노예의 마음과 같다. 필요가 아닌 원함대로 자녀를 의사로 만들어서 행복해하는 부모는 없다. 그 원함은 거기서 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원함이 그치지 않는 한 부모와 자녀 모두 불행하게 살아간다.

많이 채워지는 데로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원함으로 살기 때문이다. 원함은 거의 무한대의 탐욕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만 가지를 가져도 불만이다. 채워도 채워도 만족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요는 몇가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그마한 채움만 있어도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를 따라 살면, 만족이 있다. 필요를 따라 살면 풍성한 생명을 맛보며 살게 된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향이 나의 원함에 있는가? 필요에 있는가?

2022년 임인년 새해 첫 주일이다. 올 한해는 원함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인생을 계획하며 살수 있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