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은혜를 따라 살자

Author
kgmcc
Date
2022-01-29 21:28
Views
158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마음에 안들 때 쓰시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친구여’ 이다.

마태복음에 3번 나온다. 혼인 잔치에 예복을 안 입고 온 사람을 향해,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마22:12)고 질책한다.

배신자 가룟유다가 입 맞출 때,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마26:50)고 말한다.

그리고 포도원 품꾼 이야기에서 늦게 온 사람보다 더 받을 기대하고 원망하는 사람에게,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마 20:13-14) 고 말한다.

모두가 다 예수님의 마음이 편치 않으신 상황에서 사용하신 표현이다. 이 세가지 상황에서 공통된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청함과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인물은 길거리를 걷다가 혼인잔치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청함을 받고 혼인잔치에 참석했다. 두 번째 인물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을 받았다. 포도원 품꾼들은 포도원 주인에게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이 청함과 선택을 받은 것은 은혜이다. 혼인잔치에 참석을 하고, 제자로 활동을 하고, 포도원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은혜이다. 선택을 받지 않았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여기서 세 번째 이야기를 국한시켜 생각해보자. 은혜로 일자리를 얻었다. 하루 일당을 벌게 되었다. 100% 은혜다. 그것만 붙들고 살면 된다. 그런데 주인은 의도적으로 늦게 온 사람부터 일당을 준다. 1시간 일한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준다. 그 모습을 본 일찍 온 사람에게는 기대 심리가 생긴다.  은혜가 공로의 마음으로 바뀌어졌다. 헌데 자기들에게 약속한 1데나리온을 주자 분노가 폭발한다. 만약 주인이 일찍 온 순서부터 일당을 주었으면, 다들 만족해서 돌아갔을 것이다. 몇시간씩 늦게 와 일한 사람들일수록  더 큰 은혜의 마음을 가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근데 왜 반대 순서로 주었는가? 우리는 쉽게 은혜를 망각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작은 은혜 하나만 내눈에 보이고 내 귀에 들려도 내게 주어진 은혜는 날아가 버릴수 있다. 은혜로 시작하였다가 공로로 끝나게 된다. 그러다가 먼저가 나중된다.

얻을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은혜의 강에 푹 젖어야 한다. 아니면, 무능해진다.

은혜가 마르지 않는 한 우리는 먼저가 된자로 살아갈수 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매일 매일 은혜에 젖어 살아가자.우리는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주여, 은혜 위에 더 큰 은혜를 부어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