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제사장의 삶

Author
kgmcc
Date
2022-02-13 00:35
Views
62


 

 

예수 피를 힘입어 우리 모두는 “만인 제사장”이 되었다. 제한 없이 누구나 제사장이란 말이다. 만인 제사장, 만인 신학자, 만인 선교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자기 멋대로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제사장으로 사는 길은?

첫째, “부르심”이 있는 일만 하자.

무슨 일을 할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주가 부르신 일만 하라. 세월을 아끼라. 시간이 많지 않다. 자기 욕심으로 이것 저것 하려 하지 말라. 말씀 중, 기도 중 명확한 부르심(calling)이 있는 일에 응답하라. 순종하라.

불교에서도 깨달음을 추구하는 해탈자를 “이판승”(理判僧). 시스템 안에서 기존의 법통을 이어가는 스님을 “사판승”(事判僧)이라 한다, 이 둘이 모이면 충돌이 일어난다 하여, “이판사판”이란 말도 있다. 불교에서도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게 “이판”이다. 이방 종교도 부르심 없는 일들의 허무함을 아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부르심을 들으라. 그리고 그 부르심에만 응답하고 살라. 그게 만인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둘째,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자.”

배우기만 하면, 영적 비만에 빠진다. 배우는 전제는 가르치기 위함이다. 가르침을 전제로 하면, 배움이 달라진다. 선교사에게 배우던 간디가 며칠 사라졌다. 며칠간 말없이 사라진 간디에게 선교사는 화를 냈다. 간디가 한 말은 “배운대로 살아보고 왔습니다.”이었다.

고전적인 일화가 있다. 신학교 교수가 수업시간에 어느 한 신학생에게 갑자기 채플 설교를 시켰다. 명령받고 단위에 올라간 그 신학생이 급우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할 줄 아십니까?” 알턱이 없다. “모릅니다.” 그러자 그 신학생이 “나도 모릅니다.” 대답하곤 내려왔다. 화가 난 신학교 교수가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다시 오른 그 신학생이 말한다. “제가 오늘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 이번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압니다.” “아는데 뭐하러 설교합니까?” 대답하곤 내려갔다. 화가난 신학교 교수가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제가 오늘 무슨 설교를 할 줄 압니까?” 이젠 급우생들이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말해도 내려가니..., 이렇게 말했다. 반은 “압니다.” 반은 “모릅니다.” 그러자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십시오.”대답하곤 내려갔다. 그 이후 신학교 교수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설교란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믿는 성도의 자세는 둘 중 하나다.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이렇게 살 때, 썩지 않는 싱싱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 아는 것 중에 가장 고상하고 가치가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있음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