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부분 과 전부

Author
kgmcc
Date
2022-02-27 00:37
Views
61


 

목표가 보이지 않을 때가 최악이 아니다. 가짜 목표를 좇으면서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최악이다. 사울은 골리앗의 외형을 보고 두려워한다. 외형을 서로 비교하면서 다윗이 상대가 안된다고 외친다. 어느 한 부분을 보고 전부로 착각한 것이다.

광야는 시험의 자리다. 왜? 부분을 전부로 착각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주렸다. 시험이 온다. “돌로 떡” 만들어 먹으란다. 떡은 부분이다. 근데 40일 굶으면 떡이 전부로 보인다. 이게 시험이다.

“떡으로만” 사는 것 아니라고 말한다. 떡은 부분이다. 말씀이 전부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천사가 보호해서 안전할 것이란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 인기도 부분이다. ’자기에게 절하면 만국의 영광을 준다‘ 하지만 세상의 영광도 부분이다. 하늘의 영광이 있다. 시험의 특성은 부분을 전부로 여기게 하는 것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제일 많이 한 게 “원망”이었다. 왜 원망하나? 근시안이기 때문이다. 상황만 보니 원망한다. 조건만 보니 원망한다. 물론 우리 인간은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 이해 못하는 큰 뜻이 있다. 그걸 신뢰하면 원망이 아닌 감사가 나온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알고 하는 게 아니다.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다.

전부를 볼 수 있을 때, 극적 변화가 일어난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외친다.

“구원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 칼과 창은 부분이란 의미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전부란 뜻이다. 이게 광야의 깨달음이다. 매순간 시험에 휘둘린다. ‘부분을 전부’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시험 이기는 길이 뭔가? 부분을 부분이라 인정하면 이긴다. ‘돈은 부분이야, 권력은 부분이야, 명예는 부분이야. 하나님만이 전부야’

나의 전부되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온 사람이 다윗이다. 전부를 이해할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때 전부를 보며 가는 삶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