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가장 복된 질문

Author
kgmcc
Date
2022-05-15 02:09
Views
139


 

이번 주일 ‘아둘람 굴에서의 축복‘이란 주제로 은혜의 시간을 나눈다.

우리는 고난의 삶인 아둘람 굴에 있을때 대개 3가지 질문을 한다.

 

첫째, “왜”를 묻는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오는가?

그런데 이유를 물으면, 부정적인 대답이 나오게 된다 “원망”이 나온다. 이유를 모르니 원망과 불평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둘째, “어떻게”를 묻는다.

이 질문의 목적은 고난 벗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질문을 하면서 대부분 “인간적인 방법”을 찾는다는 것에 있다.

 

셋째, “무엇”을 묻는다.

고난도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고난 당했다”고 말하지 않는가?

우리가 원해서 받는 고난은 없다. 대부분 자기 뜻과 상관없이 “고난 당하는 것”이다.

지금의 자리로 이끄심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해야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이라고 물어야 한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곧장 이렇게 묻는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행22:10)

빌립보는 바울이 원해서 간 곳이 아니다.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보냄 당한 곳”이었다.

그런데 귀신들린 점치는 여종을 고쳤다고, 감옥에 갇힌다.

바울은 “왜”를 묻지 않았다. “어떻게”를 묻지 않았다. 그래서 원망이 없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올 방도를 찾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서 “무엇”을 묻는다.

기도하고 찬송한다.(행16:25)

결국 옥문이 열리고, 자결하려던 간수가 영접하고, 온 가족이 구원받는다.

그것이 빌립보 교회의 출발이 되기도 한다.

 

요셉도 마찬가지다. 원해서 노예가 된 것이 아니다. 원해서 감옥에 간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 “어떻게”를 묻지 않고, “무엇”을 묻는다.

이유는 모르지만, 보내신 목적이 있음을 믿는다.

주어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철저히 순종”한다.

모르는 부분, 할 수 없는 부분은 “맡기고 신뢰”한다.

결국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아둘람 굴에서의 삶은 쉽지 않다. 맛이 쓰고 힘들다. 환난과 역경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믿는 성도는 “무엇”을 물어야 한다. 주어진 그 자리에서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목적지는 아둘람굴 인생이 아니다. 유다 베들레헴 예루살렘 성이다.

광야가 아닌 가나안 땅이다. 이세상이 아닌 천국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질문만 하며 사는 인생이 복된 인생이다.

세가지 인생의 질문들 가운데 가장 복된 질문만 붙잡고 신앙생활을 해나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