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사명으로 살아야 한다

Author
kgmcc
Date
2020-03-15 17:33
Views
88


 

 

사람은 세 번 태어나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데. 제1의 탄생은 육체적 탄생이고, 제2의 탄생은 영적인 탄생이며, 제3의 탄생은 사명적 자아의 탄생이다. 카를 힐티 유명작가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발견하는 날이다” 사명자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수가 있다는 의미다.

사명을 잃어버린 아담은 낙심으로 숨었고 가룟 유다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사명을 회복한 베드로는 반석의 삶을 이루어 간다. 사명을 받은 아브라함은 75세에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났고 99세에는 가슴에 불이 붙어 이삭을 낳았다. 사명의식을 가진 모세는 80세에 당시 최강대국가의 바로왕을 대적하는 삶을 시작한다. 사명자는 맡겨진 사명을 다 할 때까지 죽지 않음을 보여준다.

1337년 독일 뮌헨에서 뒤츠 슈벤블라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반란죄로 잡혔는데. 그는 네명의 부하와 함께 사형을 선고 받고 참수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 때에 슈벤블라가 재판관에게 간절하게 이런 부탁을 했다. "제가 떨어진 내 머리를 들고 부하들 앞에까지 달려가 볼 테니 제 부하들을 살려 주십시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라 재판관은 그렇게 할것을 약속했다. 사형 집행관의 칼에 의해 슈벤블라의 목이 떨어졌고 그순간 그는 두 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붙잡고 부하들 앞까지 달려갔던 것이다. 결국 그의 부하 네명은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 그의 행동을 사람들은사명의 경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수많은 생명을 위해 사도바울이 달린 ‘사명의 경주’(딤후4:7)와는 어찌 비교 될수 있겠는가?

새나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 수 있다. 기차의 엔진이 크고 무거워도 그것 때문에 질주한다. 사명 감당은 힘들다. 하지만 그 부담스러운 사명이 우리를 비상하게 한다. 내가 어릴 적에 시계에 달린 큰 추를 볼때마다 그 추 때문에 시계가 힘들어 보여서 큰 추를 떼면 좋겠다고 생각한적이 있다. 그 추를 떼면 시계바늘의 생명은 끝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오늘날 과감히 추를 떼버리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있음을 본다. 성도의 사명은 힘들어 보이지만 나를 살린다. 성도가 사명의식을 가질때 나타나는 표징은 무엇인가? 교회와 예배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교회 사랑의 문이 열릴 때 축복의 문이 열리고 교회 사랑의 문이 닫힐 때 축복의 문이 닫힌다.

지미카터는 대통령 시절 대통령직 보다 주일 학교 교사직을 더 귀하게 여겼다. 교회는 거지와 백만장자가 동업할수 있는 곳이다. 교회는 힘든 문제들에 쌓여있어도 넉넉한 미소가 생기게 하는 곳이다. 멋진 여성과 양복을 입은 신사가 겸손히 소매를 걷어붙이고 설거지 하며 바깥 마당 청소를 할수 있는 곳이다.

사명의식을 가질 때 오는 생명으로 교회가 살고 내가 살아나게 됨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