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어려울때

용서를 하기가 힘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용서는 내가 하는 것, 내 결정, 내 의지 심지어는 내가 이를 악 물고 행할려고 하기 때문이다. 당한 것으로 인해 마음이 아프고 힘든데, 용서하라고 하니 더 아프고, 더 힘들어 지는 것이다.
용서가 힘들지만, 얻을 유익도 있다. “용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죄인이다. 용서받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용서해야 용서받는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주기도문의 내용을 보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용서해야 용서받는다. 좋은 투자처럼 보인다.
그럼 용서가 행위인가? 이를 악물고 실천해야 하는 자력 구원의 덕목인가? 아니다.
용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용납”이란 말을 쓰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만 달란트(약 10조원) 탕감 받았다. 은혜다. 실제라면, 까무러칠 정도의 감격이다.
탕감받은 그는 관대해 질 것이다. “용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100데나리온(약 천만원) 빚진 자의 멱살 잡고, 감옥에 넣는다.
관대함, 용납이 없다. 무슨 뜻인가? 그는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은혜의 감격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크리스천은 탕감받은 은혜로 산다.
그래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납하게 되는 것이다. .
이런 면에서 용서는 나 중심이지만, 용납은 은혜 주신 하나님 중심이 된다. .
넘치게 은혜 받았으니, 이제 누구든 용납하며 살아가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용서하기 어려우면 용납을 하는 마음을 가지자. 그러면 용서하기가 좀더 쉬워질 것 같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용서하기가 힘들면 먼저 용납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그럴때 불만이 사라지게 됨을 깨닫게 될 것이다.불만이 없어진 상황에서 용서는 보다 용이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