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두 종류의 친구

Author
kgmcc
Date
2023-10-22 01:21
Views
50

예수님의 눈에는 두 종류의 친구가 있는 듯하다.

은혜가 필요한 친구와 공로가 필요한 친구이다.

나사로가 죽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죽음을 앞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한다.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요 15:15)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말한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눅 7:34)

예수님의 눈에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되신 것이다.

반면에 은혜가 아닌 공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친구라 부르신다.

혼인 잔치에 예복 안 입고 온 사람을 향해,

“친구여 어찌 예복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마22:12)고 질책한다.

배신자 가룟유다가 입맞출 때,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마26:50)고 말한다.

그리고 포도원 품꾼 이야기에서 늦게 온 사람보다 더 받을 기대하고 원망하는 사람에게,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것이나 가지고 가라”(마 20:23,14)

은혜가 아닌 공로를 내세워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질책 받았다

이른 아침 일자리를 얻었다. 그로 인해 자신과 가족들이 굶지 않게 되었다.

100% 은혜다. 그것만 붙들고 살면 된다.

그런데 주인은 늦게 온 사람부터 일당을 준다.

1시간 일한 사람에게 1 데나리온 준다. 일찍 온 사람은 기대 심리가 생긴다. 기대가 고조된다.

이때부터 은혜가 아닌 계산기가 작동한다.

은혜를 망각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은혜는 기본, 권리는 특권이다. 은혜 대신 공로가 자리 잡는다.

자기에게 약속한 1데나리온을 주자 분노가 폭발한다.

만약 주인이 일찍 온 순서부터 일당 주었으면, 다들 만족해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대 순서로 주었는가?

은혜는 깃털과도 같다.

작은 정보 하나만 들어와도, 작은 소리 하나만 들어도 은혜는 날아가 버린다,

그 자리엔 공로와 특권 의식이 대신한다.

그래서 은혜로 시작하였다가 공로로 끝난다. 이러다가 먼저가 나중 된다.

은혜는 휘발성이 있어 순식간에 사라진다.

메마른 사람 되는 건 시간 문제다.

명심하자.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은혜의 강에 푹 젖어야 한다.

아니면, 무능해진다. 아무 것도 못한다. 오히려 주의 나라 일에 방해가 될 뿐이다.

예수님은 은혜를 갈급하는 사람에게 친구라고 부르신다.

예수님은 은혜를 날려 보낸 사람에게도 “친구여”라고 부르신다.

같은 단어이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은혜로 시작했다.

명심하자.

은혜는 깃털과 같고 휘발유와 같다는 것을...,

공로가 아닌 은혜에 갈급한 삶을 살아가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