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고립중에도 감사

Author
kgmcc
Date
2023-11-12 04:00
Views
49

감사는 신비롭다. 그래서 감사는 경이롭다. 전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의 신비다. 그런 신비로운 감사 중에 하나가 고립가운데 드리는 감사다. 고립이란 갇힌 상태다. 요셉이 떨어진 곳은 구덩이 이었다. 형제들이 그를 구덩이에 떨어뜨렸다. 그 후에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11년 동안 고립되었다. 그 다음에 2년 동안 감옥에 갇혀 살았다. 요셉이 고립 중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고립의 기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고립의 기간 동안 꿈을 꾸고 미래를 준비했다. 애굽의 언어를 익히고, 문화를 익혔다. 정치가로서 필요한 것들을 배웠다.

고립은 외롭다. 슬프다. 고립의 기간은 오해받고 변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배신과 배은망덕을 맛보는 기간이다. 의지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잊혀지는 순간이다. 버림받는 것도 힘들지만 잊혀지는 것은 더욱 힘들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립의 과정을 거쳤다. 다윗도 거의 13년 동안 광야에서, 아둘람 굴에서, 블레셋에서 고립의 날들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기가 막힌 웅덩이’(시40:2)에 빠졌다고 시편에서 고백했다. 예레미야도 여러 번 시위대 뜰에, 옥에 갇혔다. 진흙 구덩이에서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바울은 3년 동안 아라비아 광야에서 고립의 날들을, 그리고 그의 생애 절정에서 로마 감옥에 갇혀 고립의 날들을 보내야 했다. 노아는 무려 120년동안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부터 따돌림을 받으며 지내야 했다. 누군들 이 고통의 날들을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은 그 고통의 날들을 낭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배와 같은 날들로 만들었다. 그 비결은 감사에 있었다.

요즘 나는 쪽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 미국에서 쪽파 종구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동료 목회자를 집으로 불러 들여 간신히 종구를 한웅큼 얻어 이번 가을에 심었다. 그중에 몇 개는 캐서 파전을 해먹고 나머지는 내년까지 둘참이다. 추운 겨울동안 쪽파는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한다. 겉모양만 보면 죽은 것과 같다. 하지만 이기간 동안 쪽파는 오직 뿌리만을 돌본다. 추운 겨울을 지내고 이른 봄에 자라난 쪽파가 일년중에 제일 맛있다고 한다. 적은 수의 쪽파이지만 봄의 쪽파가 어떤지 몇포기는 캐내어 파전 해먹을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쪽파에게 겨울은 값진 시간이다.

믿는 성도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겨울을 지내는 쪽파처럼 외부활동을 단절한 채 고립의 날들을 보낼 필요가 있다. 그때 우리는 내면을 성찰하고, 내면을 가꾸고, 내공을 쌓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외친다.

외롭고 고립된 인생이라면 예수님이 가장 그러했다. 그분은 이세상에서 머리둘곳이 없이 외롭게 지내시다가 홀로 십자가에 달리신후에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그러니 이세상 살아가는 동안 고립 때문에 절망하지 말자. 힘들어도 머물고 있는 곳을 더욱 사랑하자. 머물고 있는 곳에서 섬기고, 머물고 있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랑하자. 만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떤가? 내면을 더욱 성찰하고 돌이켜보면 감사할 조건이 되는 것이다. 감사의 계절이다. 일년 내내 어느곳 에서나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