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필요가 원함보다 더 중요하다. 하지만...

Author
kgmcc
Date
2020-01-12 22:08
Views
94


 

필요를 따라 사는 삶이 있고, 원함을 따라 사는 삶이 있다. 세상은 원함으로 살지만, 성도는 필요를 따라 살아간다. 원함은 많은 것을 요구하나, 필요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종이에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펜은 1개이다. 그러나 자기가 갖고 싶은 펜은 여러개일 수 있다. 미혼이 이성을 원함으로 바라보면 여러 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요로 바라본다면, 남편이나 아내 1명이면 된다. 이성을 원함으로만 사는 사람을 바람둥이, 카사노바, 꽃뱀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이성을 필요로 바라보는 사람을 성실한 남편과 아내라고 부른다. 필요에 집중하면 생명이 충만해지고, 원함에 집중하면 황폐함을 맛보게 된다. 신앙의 삶이란 원함으로 살지 않고, 필요로 사는 삶이다.

애굽에 있을 때 이스라엘의 원함은 탈출이었다. 탈출이후 마실 물이 없자 원망한다. 마실 물이 주어지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한다. 먹을 만나가 생기자 고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설득과 권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 원함만을 추구한다. 너무 집요하게 원하면 주신다. 그것이 심판이다. 고기를 원하니 고기를 주셨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1개월을 고기만 먹게 주셨다.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민 11:20). 마실 물이 부족한 형편에 고기만 먹게 되는 것은 고역이다.

한달 전에 이스라엘의 원함은 고기였다. 그러나 한달이 지난후 이스라엘의 경멸의 대상도 역시 고기였다. 원함이 경멸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성경은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자와의 결혼을 원한다. 원함이 지나치면 들어주신다. 그것이 심판이다. 자기의 원함이었던 불신 배우자가 몇 년 지난 후에는 불행의 근본 원인으로 드러날 때가 많다. 원함이 경멸로 바뀐 것이다. 일단 원함의 마음이 되면 인간은 무엇이 좋은 것인지 모르게 된다. 그러므로 최상의 기도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인생이 필요를 따라 사는 인생이다. 원함으로만 연속되어지는 삶은 불행이다. 원함대로 살고 이루어지는 삶은 노예의 마음과 같다. 필요가 아닌 원대로 자녀를 의사로 만들어서 행복해하는 부모는 없다. 그 원함은 거기서 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원함이 그치지 않는 한 부모와 자녀 모두 불행하게 살아간다.

누가 말했듯이 불만족이란 원함을 분모로 하고, 채움을 분자로 하는 것이다 (불만족=채움/원함).

많이 채워지는 데로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원함으로 살기 때문이다. 원함은 거의 무한대의 탐욕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만 가지를 가져도 불만이다. 채워도 채워도 만족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진정한 만족은 분모가 필요로 바뀔 때 나타난다 (만족=채움/필요). 필요는 몇가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그마한 채움만 있어도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지혜자는 분모를 원함이 아닌 필요가 되도록 행동한다. 진정한 만족이란 더많은 채움이 아닌 분모가 원함데서 필요로 바뀔 때 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은 쉽지만 실제 그렇게 대치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 하다. 그럼으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나의 필요나 원함이 아닌 하나님의 필요나 원함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족하는 삶은 주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며 기도할 때 주어지는 것이다.

필요와 원함의 구분도 중요하지만 나의 필요와 원함이 아닌 주님의 필요와 원함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