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중요하다

복음의 핵심은 “좋다, 나쁘다” 가 아니다. “예수님을 만났는가, 아닌가” 에 달려 있다.
향유를 깬 마리아가 있다. 그의 헌신을 배우자고 말한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빠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마리아는 부활을 배웠다. 그대신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감당해야 함을 알았다. 그래서 옥합을 깨고 향유를 부은 것이다. 사실 향유를 깬 것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몸이 깨지고 피 흘리셨다. 예수님이 향유다. 자신을 깨서 죄인을 구원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향유 옥합을 가져와 주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다(요12:3). 헌신하는 자의 표본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발에 대못이 박히셨다. 그 발에 흘린 피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마리아는 왜 헌신하는가? 도망친 제자들은 왜 순교하는가?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대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이 구별되어진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가의 유무에 있었다. 마찬가지 원리다. 주님이 함께하는가? 만남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군종들처럼 길에서 환호하며 따라가다가 그저 어렴풋이 본 것은 아닌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거룩해진다. 헌신자가 되고 심지어는 순교자에 까지 이르게 됨을 성경은 보여준다. 거룩이나 헌신 그리고 심지어 순교도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드러나는 결과들이다.
착한 행실이나 헌신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광에 목이 마르고 갈망하며 살아야 한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우리는 착한 행실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영광이기 때문이다. 헌신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주님께 영광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는 성도들에겐 기쁨이 된다. 믿는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일은 단순하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9) 예수님을 믿는 것 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일은 없다. 예수님을 만나면 기도한다. 그래서 변화가 된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 믿음은 예수님을 만났는가에 있다. 예수와 만남이 기독교이다 만나면 변한다. 예수님 만나면 영광스런 삶을 살고 싶어진다. 말씀의 순종을 통해 거룩해지고 헌신자가 된다. 예수님 만나면 믿음으로 산다.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어 기적의 삶을 산다. 도망치는 제자의 발 과 같은 나를 씻으시고 대신해 못박해 대속의 피를 흘리시는 주님의 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만남이다.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마리아처럼..., 그리고 제자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