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룻기 강해2- 남은 것을 보십시요!

Author
kgmcc
Date
2020-09-16 15:25
Views
540
본문 : 룻기 1장 1-5절

날짜 : 2020년 9월 16일



 

<룻기 1장 1-5절>

1.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여러 성도님들께서도  아시는 사실이지만 1492년 10월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서 이 미국 신대륙이 발견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미국 신대륙이 인도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가 그당시에 쓴 항해일지를 보면 상당히 혼란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콜럼버스는 200 여년전에 마르코 폴로가 인도에 갔다 와서 쓴 ‘동방견문록’ 이라는 책을 읽고 난후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언젠가는 인도에 가야 하겠다는 꿈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 콜럼버스가 미국 신대륙에 도착하면서부터 자기가 읽었던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라는 느낌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콜럼버스는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그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콜럼버스는 아주 멋진 비단옷을 입고 큰 말을 타고 다니는 품위가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될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도시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다리가 있고 금으로 뒤덮인 집을 볼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곳은 하나도 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 마르코 폴로가 사실보다 훨씬 더 많이 과장해서 말한 것이죠. 오늘날 ’마르코 폴로가 정말 인도에 갔는가’ 하는 사실에 대하여 많은 역사학자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동방견문록에는 사실보다 과장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세상에 금으로 만든 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금색으로 칠한 집을 보고는 그렇게 기록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당시 미 대륙에 살고 있었던 인디언들과 그 인디언들이 거주하는 티피라고 하는 원추형으로 된 집을 보면서도 콜럼버스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는 사람이 벌거벗고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도 없었고, 그런 집에서 산다는 얘기도 없었는데 이상한 사람들과 이상한 집들이 눈에 보이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콜럼버스는 자기가 죽을때까지 미국 신대륙이 인도인 것으로 믿었으니, 이 콜럼버스는 일생동안 혼돈가운데 지내다가 생애를 마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혼란스러운 장면이 나옵니다, 룻이 살았던 이 사사시대는 혼돈과 혼란의 시대입니다, 사사시대는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왕이 세워지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사울에게 왕이 되기 위한 기름부음의 예식을 행합니다. 이로서 사사 시대는 끝나고 이스라엘 왕정시대가 시작 됩니다, 그런데 이 사사시대 동안에는 4개의 사건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집니다. 이 네가지 사건이 되풀이 되어지는 것을 잠시 살펴보면,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땅에 들어간후에 얼마되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이방신을 섬기면서 타락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주변나라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십니다. 주변 국가의 침략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지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간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와 호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사사를 세워서 엉망이 된 상황을 구원해내십니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을 멀리하는 죄악된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앞에 회개와 간구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서 다시 회복시키시는 이러한 4개의 사이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사사시대에 일어난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룻기 바로 앞에 있는 사사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이 이 사사시대의 특성을 한마디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21장 25절입니다. 25.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래요 사사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된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하는 것을 기준으로 여기며 살았던 시대이었기 때문에 사회와 나라의 시스템이 안정되지 못했습니다. 사회와 나라가 먼저 안정되어야 나와 내 가정이 안정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일하는 회사나 사업터가 안정이 되어야 나와 내 가정이 안정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와 내가정이 힘들고 혼란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내가 속한 사회나 나라의 시스템이 안정되어있으면 나와 내가정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코로나 사태의 경우만 보아도 의료 시스템이 잘되어있는 대한민국과 그렇지 못한 다른 나라의 경우를 비교해보면 알수 있습니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의료 시스템이나 구제기관을 통해서 내가 회복하고 다시 일어나는데 도웅믈 받을수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이 들어도 재교육기관과 그리고 상담 기관을 통해서 내가 다시 경제활동을 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사시대는 사회나 나라가 안정되지 못한 혼돈의 시대이었습니다. 1절입니다.

1.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이때는 사사 시대인데 흉년이 들었습니다. 평상시에도 사회와 나라가 혼란스러운 사사시대인데 흉년까지 들었습니다. 아직 체계적인 사회 질서가 잡혀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나 국가가 이 가정이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각자가 알아서 살길을 찾아가야 할 때 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오는 이 가정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인 모압 지방에 가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네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이고 다른 민족들은 하나님이 내팽겨친 존재들이라고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들을 사람취급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선민사상을 가진 가정이 이방인 지역에 가서 산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다는 것입니다. 웬만하면 안 떠날텐데 떠날 수 밖에 없는 아주 비참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자,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사람입니다. 베들레헴은 우리말로 해석하면 ‘떡(빵)집‘입니다. 베들(떡)과 레헴(집) 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당시 베들레헴은 보리와 밀 그리고 포도가 많이 나는 곡창지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베들레헴지역에는 언제나 먹을것이 많아서 떡집을 의미하는 ‘베들레헴’ 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떡집에 떡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남자의 이름은 엘리멜렉입니다. ‘엘리’‘나의 하나님’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못박혀 죽으실때에 하신 말씀중의 하나가 바로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었는데 그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있까” 입니다. 여기서 ‘엘리 엘리’ 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멜렉’ ‘왕’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나의 왕이신데 지금 내가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잠시후에 다루어보겠지만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멜렉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 입니다. 나오미라는 뜻은, ‘기쁘다, 즐겁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어난 현실을 보면 하나도 기쁘고 즐겁지가 않습니다. 지금 기쁘고 즐거운 분위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떡집에 떡이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엘리멜렉에게 이런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기쁘고 즐겁게 살기를 원하는 나오미에게 괴롭고 어려운 일들만 생깁니다. 그래서 이 가정은 살기위해서 정든 이 고향땅 베들레헴을 떠납니다. 그리고 2절 하반부를 보면 이 사람들은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인것을 알수있습니다. ‘2.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에브랏 사람’ 이라는 표현은 우리나라말로 하면 본입니다. 경주 김씨, 전주 이씨 처럼 엘리멜렉의 본이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출생지가 베들레헴이요 본이 에브랏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에브랏은 누구입니까? 이 에브랏은 갈렙의 아내이름입니다. 모세가 죽은후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들어왔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 다음 순위의 지도자 입니다. 그당시 제 2인자인 갈렙의 아내가 바로 에브랏입니다. 그리고 이 에브랏이 아들 훌을 낳았는데 이 훌은 출애굽기 17장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 광야에서 아말렉 족속과 싸울때에 그때 등장합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지팡이를 잡은 두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피곤해서 두팔을 내리면 아말렉족속이 이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모세의 형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가 계속 두팔을 들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때 모세를 도운 훌이 바로 갈렙과 에브랏이 낳은 아들입니다. 이것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그 후손도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어쨌든 본문 2절에 나오는 사람들이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신앙의 뿌리가 있는 집안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들은 가나안땅에 들어올때부터 그 지역에 정착을 했던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태어나기전인 선조때부터 몸담고 있던 고향인데 그지역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요즘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오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금 이민 오시는 분들은 어느정도 돈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미국에 와도 이곳 주변에 한국가게가 있고, 또 인터넷을 통해 그날 그날 한국 소식을 들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국이 그리우면 비행기를 타고 갔다 올수 있습니다. 이렇게 요즘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민입니다. 얼마나 힘이들고 어려웠으면 이방인 지역에 가서 살려고 했겠습니까? 옛날 우리나라가 정말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때 먹고 살기 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든 조국을 떠나 이민을 가야 했던 것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모두가 다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엘리멜렉 과 나오미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이방인의 지역에 갔지만 처음에는 이런 저런 온갖 어려움을 다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어느정도의 어려움은 극복했다 싶었는데 그만 남편이 죽습니다. 3절입니다. 3.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이방인이 살고 있는 모압땅에서 의지하고 살았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으니 아내인 나오미는 얼마나 슬프고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때까지 두아들 말론과 기룐이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나오미는 아직 젊은 여인인 것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친척이 한명도 없는 이방인의 나라 모압땅에서 의지하고 살았던 남편을 잃어버리고, 두아들을 데리고 살아가는데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나오미에게는 두아들이 남아 있었고, 그 두 아들이 나오미가 힘들고 외로운 인생을 헤처나갈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두아들이 마침내 결혼을 하게됩니다. 4절입니다. 4.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그들은 모압여자 중에서 아내를 맞이 하였는데...“ 그당시 이스라엘 율법서를 보면 가나안땅에 사는 이방인들과는 결혼하지 말라 라고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압땅에 사는 이방인과는 결혼하지 말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또 나오미 가족이 이 모압땅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지 십년쯤에“ 라는 말은 두 아들이 결혼을 한지 십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들이 결혼을 하고 십년이 되었으면 엄마의 입장에서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자손이죠. 나오미는 손자 손녀를 보길 기대했습니다. 이 십년이라고 하는 기간을 성경에서는 인간이 기대하고 참을수 있는 한계치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후손에 대한 축복의 약속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땅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십년이 되었는데도 아내 사래가 임신을 하지 않습니다. 십년이 되자 그만 지친 아내 사래가 자기의 여종인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보내고 동침하게 합니다. 창세기 16장 3절입니다. 3.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아브람이 가나안땅에 거주한지 십년후였더라‘ 그리고 아브람은 그로부터 1년후인 아브람의 나이 86세때 사래가 아닌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10년이라는 기간은 인간으로서 기다림의 한계점인것을 종종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십년이란 세월은 강산도 변하게 할만큼 긴 시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떻게 보면 강산도 변할 만큼 긴 세월인데 어찌 인간의 마음이 변하지 않겠는가? 라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이 결혼한후부터 10년동안 아들 가정에 자녀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나라사람들도 자손에 대한 소망이 특별하지만 유대인들은 우리나라나 중국 사람보다도 자손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이스라엘 선교사님들로부터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결혼을 한지 10년후에 자손이 생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 반대의 일이 생깁니다. 두 아들이 모두 죽습니다. 나중에 룻과 보아스가 만날 때 좀더 자세히 나누겠지만 그당시 유대사람들은 자기 후손이 없으면 죽은 후에 자기 존재는 없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남편과 두아들이 죽어버린 나오미의 경우는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런 일은 ‘이제 내가 죽으면 나와 내 가족의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신분이 되었다‘ 라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나오미와 같은 입장이 된 여인을 구원하기 위해 그당시에 기업을 무르는 ‘고엘 제도’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남편인 엘리멜렉의 형제들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민 나오미는 이젠 그렇게 해서 자녀를 볼수있는 나이가 지났습니다. 참 기가 막힌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런 기막힌 인생이 나오미에게 일어났는데 오늘 본문 전체내용을 보면 그저 담담하게 이런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 베들레헴지역에 흉년이 들었더라.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땅에 이주를 하였더라. 남편이 죽었더라. 두아들이 결혼한지 10년이 되었더라. 두아들도 죽었더라’

참 기가막힌 인생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간단하게 1절에서 5절 사이에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그이유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하나님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왜 이러한 일이 나오미에게 일어납니까? 하나님 왜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납니까?’ 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질문을 해도 대부분의 경우 성경은 그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설명을 내가 듣는다고 해서 그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갈릴리 바닷가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저 건너편에 가고 있을때 큰바람과 함께 풍랑이 일어납니다. 그때 제자들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왜 이렇게 바람을 불게 해서 우리를 힘들게 하십니까? 그이유를 설명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설명을 해주시지도 않으시지만, 설사 설명을 해주신다고 할지라도 제자들은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설명해달라고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것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했습니까?” 라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하나님 저를 만져주세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겪고 있는 이 혼란과 혼돈에서 벗어날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내가 경험할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 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고 두아들도 죽었지만 그래도 나오미에게는 실날같이 가늘게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에 비한다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정말 작아 보이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모두 잃어버리고, 그래서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남겨두신 것이 있습니다. 나오미에게도 남아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두 며느리 입니다. 5절입니다. 5.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두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두아들과“ 이 두 아들이 나오미에게는 너무나 크고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남편도 나오미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큰 존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이세상에서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없어진 존재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강조합니다.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나오미에게 남은 두 며느리는 두 아들과 남편에 비해서는 너무나 하찮고 작은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남은것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 때,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내가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남아있는 이 하찮고 작은것을 통해서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남은 이 작은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볼수있게 하십니다.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나의 자녀, 나의 가정, 나의 직장, 나의 사업터, 나의 재능, 나의 믿음, 이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우리가 지금 너무나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십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게 왜 이런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그이유를 말씀해주세요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께 물어보아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설명해주시지도 않으시지만, 설명해주셔도 우리가 다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 안다고해도 지금 내 문제를 해결할수도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날 정말 많은 목회자들이 이 코로나 사건이 왜 지금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가? 에 대한 메시지를 자주 전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코로나 사태와 산불 사태와 그리고 폭력 시위와 폭력 진압의 사태가 뒤엉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목사님도 계시고, 중국 공산당과 같은 어두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계략과 음모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목사님도 계십니다. 주님이 곧 재림하시고, 세상 종말이 바로 문턱에 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목사님도 계십니다. 모두가 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작 과정은 될수 있겠지만 궁극적인 문제 해결책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에게 남편과 두아들이 죽었을때 숱한 나날들을 뜬눈으로 밤을 새워가면서 하나님께 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왜 이런일이 제게 일어나야 합니까?'  우리는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나오미의 비통한 심정으로 하나님앞에 무슨 말을 하든지 이해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자신에게 일어난 그 이유를 알수없었습니다. 또 설사 알았다 할지라도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럼으로 지금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남겨놓으신 것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내게 닥친 문제 해결을 해나갈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을 통해서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남아있는 것을 통해서 나오미가 다윗왕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하십니다. 내게 남아있는 것이 내눈에는 별로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남아 있는 것을 저와 여러분이 보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길 원하십니다. 내게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자녀입니까?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형제 자매입니까? 믿음입니까? 재능입니까? 물질입니까? 이제 우리도 나오미처럼 남은것을 바라보십시다. 나의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의 자녀가 죽고, 내가 사랑하던 배우자를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그래도 내게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물질과 건강을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내게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남아있는 것을 보시길 원하십니다. 그 남아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은 그 남은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라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그렇게 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방인 여인을 통하여 다윗왕을 낳게 하시고 메시야를 탄생 시키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라옵기는 나오미가 남은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저와 여러분도 받으실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