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강해3 다른 행동! 다른 축복!
<룻기 1장 6-13절>
6.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일본의 유명한 리더십 컨설팅의 대표인 이와타 마쓰오 라는 사람이 쓴 책중에 ‘결국 성공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차이’ 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결국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 7가지’ 의 내용이 나옵니다. 간단히 제목만 설명해드리면 첫째 기술이나 능력보다 인품을 더 중요시 한다 둘째 예의범절이 깍듯하다 셋째 자신을 믿는 마음이 강하다 넷째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한다 다섯째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섯째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수 있는 용기가 있다 일곱째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며 미래 지향적인 생각을 가진다 이렇게 성공하는 사람이 가진 특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와타 마쓰오는 능력과 인품 두가지를 다 가지고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만일에 둘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인품을 갖춘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무슨일이든지 잘해나가고, 성공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되는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공평하신분이십니다. 그런데 공평하다고 하면 모두에게 다 똑같이 대해주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생각은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두에게 다 똑같이 대하시는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으면 하나님은 공평하게 구원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평하시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행동을 하면 하나님도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역사하신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약점이 많고 실수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곧잘 빈정대고 흉보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약점이 있고 실수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격려하고 감싸주는 또 다른 한사람이 있다고 하십시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기 때문에 이 두 부류의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다릅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와 룻의 경우도 다른 사람과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다른 사람들과는 또 다른 축복을 나오미와 룻에게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 나오미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음주에는 룻이 다른사람과 달랐던 점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나오미와 룻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을 저와 여러분도 누리며 살아갈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오미는 다른사람과 무엇이 달랐습니까?
첫째로 나오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사람과 달랐습니다.
6절입니다.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여기서 우리는 두 단어를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돌보시사‘ 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양식을 주셨다‘ 입니다. 뒤에 나오는 단어인 ’양식을 주셨다’ 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십시다. ‘양식을 주셨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흉년이 다 지나가서 더 이상 굶지 않고 살아갈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현실입니다. 팩트입니다. 사실이나 현실이나 팩트는 그 누구가 보아도 인정을 합니다. 눈에 보이니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이나 여자나 남자나 노인이나 아이나 누구나 다 인정합니다. ‘먹을 양식이 있는 것’ 은 사람들 눈에 보이는 사실이고 현실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자기백성을 돌보시사‘ 라고 말하면 이것은 해석입니다. 해석은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이 다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 라고 나오미는 그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나오미의 마음에 그렇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은 끝나고 풍년이 와서 먹고 살만하게 되었다’ 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사람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 주셨기 때문’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땀흘리고 고생을 한 결과로 먹을 것이 생겼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때에 맞게 비가 내려주는 바람에 풍년이 되어 먹을것이 풍성해졌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먹을 양식이 생긴 것‘ 은 사실이고 누구나 인정을 하는데 어떻게 해서 먹을 양식이 풍족하게 생기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돌봐주셔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먹고 살수있게 되었다‘ 라고 받아들입니다. ’돌보시사’ 라는 말이 히브리원어로 ‘파캬시‘ 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 의미는 ’찾다, 방문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어느 한 지역에 홍수나 산불이 나서 큰 재난을 만났을때 그나라 대통령이나 왕이 어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 지역을 방문할때 이 ’파캬시’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유다 베들레헴 지역에 흉년이 들어서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라고 나오미는 그렇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지금 나오미는 어떠한 상황에 있습니까? 남편 엘리멜렉 과 두아들 말룐과 기룐이 죽었습니다. 죽은 두 아들로부터 얻은 자손도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오미는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 라는 믿음을 가지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아주신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오미도 인간인지라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섭섭한 감정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13절 후반부를 보시면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13. ...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하나님의 손이 나를 쳤다. 나를 징계했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장 20절을 보시면 나오미가 고향에 돌아왔을때 마을사람들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쳤다’ ‘하나님이 나를 심히 괴롭게 했다’ 이것이 바로 나오미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입니다. 남편이 죽고, 그후에 두아들도 죽었을 때 나오미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첫시간에 살펴보았지만 나오미의 뜻은 ‘기쁘다, 즐겁다’ 는 의미입니다. 아마 나오미는 자기 이름처럼 평상시에 잘웃고 즐거워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낙천적인 성품을 가진 여인입니다. 하지만 이방인의 나라에 이주를 한이후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너무나 큰 비극을 만남으로 인해서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나오미가 ’마라’ 가 되었습니다. ‘마라’ 는 쓰다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한약과 같이 쓴것을 먹을때 인상을 찡그리게 되는 것 처럼, 나오미는 그런 모습으로 하루하루 지냈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나 동네 사람들에게 하는말을 들어보면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과 원망스러운 마음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오미가 하나님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믿음을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닝믜 사람도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에 대해 원망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인정했던 욥도 그랬고,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도 그랬습니다. 잠시 원망하고 한탄을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시편 105편 16절입니다. ”16. 그가(하나님)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하나님께서 어느 지역에 기근을 보내어 흉년의 세월을 지내게 할 때가 있습니다. 힘들게 할때가 있습니다. 왜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그동안 의지하고 있던 것을 끊어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만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에브랏 사람 출신입니다. 에브랏은 여호수아 다음으로 제 2인자였던 갈렙의 아내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에브랏 사람이라는 말은 곧 갈렙의 후손이라는 의미입니다. 나오미 가정은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집안입니다. 그리고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도 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흉년이 들게 되자 의지했던 토지를 더 이상 의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후 나오미가 이방인 지역에 와서 살아가는 동안에 남편과 두 아들을 의지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마저도 끊어버리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는 성도가 선택할수 있는 길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며 세상과 사람들을 의지하며 살아가든지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 성도들을 보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양쪽 둘 다 걸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쪽에 걸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코로나 19 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쭉정이와 알곡을 갈라놓으시는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의지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든지 선택하도록 하십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나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특별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내가 아무것도 의지할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서 큰 역사를 하십니다. 나오미가 자기 고향땅 베들레헴에 돌아가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찾아오셨다’ 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자기 고향을 떠난지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이런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 모양으로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냐.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이제 나이가 먹은 할머니가 되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차마 고향마을 사람들을 만날수 없겠구나.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인데, 뭐 그냥 여기서 살아야지’ 이러면서 그 모압땅에서 그냥 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나오미는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의지할 것 하나도 없는상황인데 이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겠다“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오미가 다른 사람과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나오미에게 다른 사람과는 다른 축복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가진 것이 없고 의지할만한 것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할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내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갈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셨다’ 라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남들과 달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남들과 다른 축복을 나오미에게 베푸십니다. 바라옵기는 나오미에게 베푸셨던 축복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베풀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오미가 다른사람과 달랐던 점은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본문 8절에서 13절까지 내용을 보면 평상시 나오미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왔는지를 알수있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이 결혼을 하고 10년이 지나도록 손자 손녀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어머니 의 입장인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얼마든지 구박 할수 있는 상황입니다. 아들을 낳지않고 딸만 낳아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는 판국에, 아들은 고사하고 딸도 없으니까 대놓고 구박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8절입니다. “8.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기를. 자비를 베풀기를 원한다" 라는 덕스러운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13절 후반부를 보시면 ”13.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다’ ‘너희들에게 자손이 없는것도, 너희들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기 때문이다. 모든것이 내 잘못이다. 내 잘못 때문에 너희들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구나. 그래서 너희들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말한것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나이가 있으신 집사님과 권사님들과 같이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모여서 성경공부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가 끝난후 친교시간에 권사님들이 하시는 공통된 화제꺼리가 있습니다. 너나 할 것없이 며느리 욕을 합니다. 잘못된 것은 죄다 며느리 때문이고, 잘된 것은 자기 아들 때문이라는 식입니다. 성경 공부할때는 사랑이 많고 이해심도 많으신 집사님, 권사님들이신데, 성경공부가 끝나고 식사 시간에는 며느리만 있으면 반찬이 따로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듣다보니 무안해져서 권면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뿐입니다. 일주일 후에 식사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자기 며느리를 반찬으로 내놓더군요. 그때 저는 ‘믿는 성도들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나 며느리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똑같구나‘ 라고 생각한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며느리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결혼하고 10년 동안 자녀가 없습니다, 자기 아들까지 죽었습니다. 우리 집안에 팔자가 센 며느리가 들어와서 건강한 우리 아들이 죽었다라고 비난할수 있습니다. 무슨 여자가 결혼해서 10년이 되어도 자식한명을 못낳느냐고 구박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이 모든 것은 자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나 때문에 너희 남편들이 죽었는데 너희들을 보니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휼륭한 인격을 가진 여인입니까? 오르바와 룻이 남편을 잘 만났는지 못만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어머니는 참 잘 만났습니다. 남편을 물론 잘 만나야 하지만 시어머니를 잘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어떤 여인은 자기 시어머니가 너무 미워서 ‘시‘라고 하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시금치도 안먹는다 고 하는 그런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나오미는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가짐이 다른사람과는 달랐습니다. ’좋은일이 생긴것은 당신덕분이고 나쁜일이 생긴 것은 다 내탓이다’. 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우리도 종종 말은 그렇게 할때가 있습니다. ‘이 일이 잘못된 것은 나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 마음은 그러지 않을수 있습니다. 말로만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말과 마음이 같았습니다. 11절에서 13입니다.
"11.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진정으로 며느리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다. 그러니까 돌아가거라" 이렇게 간단히 말해도 됩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마음을 담아 길게 며느리들이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자, 나오미가 하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당시 유대 결혼법을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 25장 5,6절입니다. ‘5.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그러니까 어느 여인이 결혼을 하고 살다가 자손이 없이 남편이 죽게 되면 그 과부는 다른데 시집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남편의 형제에게 시집가는 것이 그당시의 유대인 법입니다. 오늘날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당시 환경에서는 이 제도가 두가지 관점에서 좋은 제도이었다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번성하고 생육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수 있는 길이고,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아무런 경제적인 힘이 없는 과부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라고 말합니다. 11절 이하를 보시면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집으로 돌아가라’ 라고 말하면서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설사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진다고 해도 그아이가 자랄때까지 너희들이 기다릴수가 없고 설사 너희들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그때가 되면 너희들이 아이를 가질수 있는 나이가 지나게 된다. 이렇게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앞으로 자기 인생을 잘 선택해서 살아갈수 있도록 쉽고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사실 이 나오미는 이런 말을 하지 않고 두 며느리와 같이 지내는 것이 자기에게 더 유익할 수가 있습니다. 그동안 며느리와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도 착하고 나오미 말을 잘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두 며느리는 지기네들도 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대땅 베들레헴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오미는 이렇게 말할수도 있습니다. “얘들아 나와 같이 유대 베들레헴으로 가자. 거기는 내가 조상때부터 살고 있었던 땅이라 우리를 도와줄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여기서는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내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래도 내가 어떻게 해볼수가 있을것이다. 여기보다는 훨씬 더 나을수 가 있을 것이다” 통하든 안통하든 이런 말을 해서 아직 인생 경험이 적은 며느리를 데리고 갈려는 시도를 해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자기 노후 대책보다는 며느리의 앞날을 더 생각합니다. 그래요. 이렇게 나오미는 사람들과 관계를 할때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왔습니다.
정리합니다. 이렇게 나오미처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어려움과 고난은 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것이 내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배반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나오미는 인생의 막바라지에서 하나님만을 붙잡고 의지합니다. 그리고 이 나오미가 가진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나오미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왕의 외고조 할머니의 신분이 되게 해주십니다. 우리도 나오미가 가지고 있었던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다. 비록 내앞에 눈물이 있고 아픔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지십시다. 내게 눈물이고 내게 아픔이어도 하나님만을 선택하고 하나님만을 붙잡으십시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정으로 그 사람이 처한 입장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십시다. 당장은 손해를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의 원리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손해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주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억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 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음주에 살펴보겠지만 룻도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나오미처럼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바라옵기는 나오미와 룻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다른사람과 구별되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