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강해9 하나님이 주신 선물
<룻기 4장 1-22절>
1.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2.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7.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3.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18.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오늘로서 그동안 이어져 왔던 룻기강해가 끝나게 됩니다.
우리가 집에 밥이나 반찬이 없고 배는 고파서 먹기는 먹어야 하는데 그때 가장 간단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물론 라면입니다. 요리를 잘하시는 분이라고 한다면 급히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할수 있겠지만 보통 남자들의 경우는 밥이나 반찬이 없는 상황에서 배가 고프면 일단 라면을 끓어 드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라면을 끓이는 것에도 그 요리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물을 적게 넣으시는 분도 계시고, 물을 많이 넣고 국물을 많이 해서 드시는 분도 계십니다. 라면 수프를 라면에 넣을때 같이 넣는 사람도 있고 나중에 수프를 넣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면 발이 덜 익었을때 꺼내서 먹는 사람이 있고, 충분히 익힌 다음에 드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란도 라면이 한창 끓고 있을때 넣어서 젓가락으로 휘저어서 익혀 먹는 사람이 있고, 라면을 그릇에 담아놓고 그 위에 계란 알을 넣는 사람도 있습니다. 라면을 잘 끓이는 사람이 하는 말인데 제일 마지막에 식초 한방울을 넣으면 라면 국물맛이 좋아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시도 해보지 않아서 국물맛이 좋아지는지는 모릅니다. 어쨌든 이렇게 간단한 라면 한 봉지를 끓이는 것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라면을 요리하는 가 보다는 결국엔 그 라면이 맛이 있는가, 맛이 없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물을 많이 넣는 것보다는 적게 넣어서 더 맛있다고 하면 적게 넣는 것입니다. 수프를 먼저 넣는 것이 라면맛이 낫다면 나중에 보다는 먼저 넣어야 합니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결과가 중요합니다. 라면을 먹을 때 라면 맛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 맛이 있어야 합니다. ‘음식 맛이 있다‘ 라고 하는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음식은 그렇지만 신앙생활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결과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과정은 더 중요합니다. 이는 마치 운전하는 사람에게 교통법규를 따르는 것이 중요한것처럼 우리 믿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보아스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을 해나가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보아스가 이렇게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을 해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와 룻은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릴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아스는 자기 자신이 돈이 있고 능력이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좋은대로 일을 해나갈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을 해나갑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보아스가 일을 진행하고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무슨 일을 할때마다 보아스가 진행하는 그 원리을 적용하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보아스는 일을 어떻게 진행해나갑니까?
첫째로 공개적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다른 말로는 정정 당당하게 일을 진행해나갑니다.
1절입니다. “1.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그당시 성문은 일상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밤이 되면 성안에 들어와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성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 일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성읍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문에 앉아 있기만 하면 웬만한 사람들을 다 만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책임이 있는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족을 만나기 위해서 성문에 올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기업을 무를 권리를 가지고 있는 그 친족이 지나갑니다.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자가 지나가는지라” ‘마침’ 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보아스와 그사람이 약속한 것도 아닌데 마침 그 시간에 그사람이 지나간 것입니다. ‘마침’ 이라고 하는 단어가 이전에도 기록되고 있었는데 기억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룻이 나오미와 함께 모압땅에서 베들레헴 지역에 오자마자 먹고 살기 위해서 룻이 남의 밭에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갔는데 그 밭이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 그 시간에 보아스가 그 밭에 나타났다고 룻기 2장 4절에 말씀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만남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보아스가 그 친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사람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무개’입니까? 그것은 이름이 아니죠. 이름은 모릅니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그사람은 자기가 해야할 의무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6절입니다.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그 아무개 친족은 자기가 손익 계산을 해보니까 손해입니다. 그래서 책임을 안지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이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부릅니다. “아무개여” 옛날에 아마 제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었던 것 같습니다마는 텔레비젼에서 어느 드라마를 본적이 있는데 전체 내용이 어떤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장면만은 기억이 납니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배우는 걸핏하면 ‘거시기‘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사람은 자기 마음이 급해지면 평소보다 더 자주 ’거시기‘ 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옵니다. 아마 전라도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그 마을에 어떤 사건이 생겼는데 그 청년 혼자 그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그청년 앞에 모여서 물어봅니다. “지금 이일이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을 좀 해봐라“ 그때 그청년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거시기가 말이여 거시기에서 거시기를 했는데 그래서 거시기가 거시기가 되었다 말이요“ 그 청년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동네사람들이 다시 물어봅니다. 그 청년이 열심히 설명하지만 동네사람들이 알아들을수 있는 말은 ’거시기‘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화가나서 ’에라 이 거시기 놈야‘ 하면서 그 청년을 때리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거시기‘ 라는 단어를 성경적인 말로 바꾸면 ’아무개‘ 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이행할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시면 이렇게 말씀하실것입니다. ’아무개야, 아무개지역에서 아무렇게나 살다가 여기 왔구나‘ 하나님이 기억하실 필요가 없는 사람은 그냥 아무개가 됩니다. 마태복음 19장을 보시면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나아가서 영생을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사람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6절입니다. “16.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어떤 사람" 입니다. 그리고 누가 복음 16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를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지는 나사로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그 부자는 이름이 없습니다. 이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이름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그냥 ’아무개야‘ 이런 존재가 되면 우리는 세상을 잘못 산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부르실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자, 기업을 무를 자격이 있는 그 사람을 불러놓고 보아스는 열명의 장로를 초청합니다. 여기서 장로들이란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의미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명은 온전한 숫자를 의미하고 또 증인들이 되기에 충분한 숫자입니다. 그리고는 보아스가 일을 진행 합니다. 4절입니다. “4.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보아스는 단둘이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많은 증인들이 있는 앞에서 얘기합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 훗날에 문제의 소지가 없이 일을 진행해 나갈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은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혜롭게 일을 행합니다.
증인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했고. 두서없이 한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일을 해나갑니다. 지금 보아스가 해결해야 할 일은 두가지입니다. 한가지는 나오미의 기업을 회복시켜주는 것이고 또 다른 한가지는 룻과 결혼을 해 엘리멜렉의 자손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한사람이 책임을 지고 해야 합니다. 나오미의 기업을 회복시켜주는 사람 따로, 룻과 결혼을 하는 사람 따로 이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입니다. 반드시 한사람이 이 두가지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나오미의 기업을 회복시키는 것을 먼저 이야기 합니다. 만약에 이 보아스가 룻과 결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했다가 그 가까운 친족이 내가 책임을 지겠다라고 한다면 보아스의 계획에 차질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의 기업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합니다. 3절입니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하므로“ ”...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하므로“ 이 보아스의 말을 들어보면 나오미에게는 아직 남편인 엘리멜렉의 소유의 땅이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전에 이 베들레헴지역에 흉년이 들었을때 엘리멜렉은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지방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때 자기 소유의 땅을 처분했는데 팔리는 것은 팔고 팔리지 않은 것은 그대로 두고 떠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땅은 별로 쓸모없는 땅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무개 친척이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그 땅을 사서 기업을 회복시켜주어도 나오미는 늙었기 때문에 자손을 낳지 못할것이고 그래서 자기는 손해볼것이 없겠다는 계산을 합니다. 나이가 있는 나오미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기업은 자기의 것이 될것이니까 손해 볼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사람들로부터 친족의 기업을 물어주었다고 하는 칭찬도 듣게 될 것이니까 괜찮은 듯해서 4절 후반부를 보시면 그 아무개가 수락합니다. ”4.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그때 보아스가 두 번째로 룻과의 결혼을 얘기합니다. ‘기업을 무른다’ 라고 하는것은 땅만이 아니라 후손을 이어주는 것 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밭을 사고나서는 룻과 결혼을 해야하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게 되면 그 자녀의 이름으로 그밭을 기업으로 주어야 한다고 보아스가 그 아무개에게 설명합니다. 5절입니다.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나오미 문제만이 아니라 룻의 문제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언급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아무개 친족은 손해입니다. 나오미 만을 책임 지면 엘리멜렉의 소유의 땅을 자기가 사주고 나오미를 책임져도 자녀를 낳지 못할 것이니까 결국 모든 것이 다 자기의 소유가 됩니다. 하지만 룻의 경우는 다릅니다. 룻은 아직 젊기 때문에 자녀를 낳을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그 땅은 그 자녀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손해가 됩니다. 그래서 무르지 못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6.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아마도 보아스가 그 아무개 친족에게 ”당신이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자격이 있으니까 나오미 기업을 물러주어야 한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면 그 아무개 친족은 자기 주변에 열명의 장로들도 있고 언핏 생각해보아서 뭐 그렇게 손해 보는 것도 아닐것 같아서 자기가 하겠다고 말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기업을 무르는데 대한 손실을 자세하게 설명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기업을 무르겠다고 한다면 이러한 손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 것입니다. 두가지 면에서 볼 때 보아스가 참으로 지혜롭다고 할 수있습니다. 하나는 그 친족이 스스로 물러나게 해서 뒷말이 없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보아스 자신이 룻과 살수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때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종할려고 할 때는 그사람에게 주님은 참된 지혜를 주십니다.
세 번째로 희생과 댓가를 감당하는 일입니다.
보아스는 자기에게 손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려고 했습니다. 왜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손실이나 희생이 와도 감수할 마음이 되어 있었습니다. 7절 8절을 보시면 이 아무개 친족은 자기 신발을 벗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신발을 벗는 것은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나중에 그 친족이 다른말을 하면 그 친족의 신발이 증거가 됩니다. 그 친족이 신고 있었던 신발을 보아스가 보여주면서 권리를 포기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또 열명의 장로들이 증인이 될것 이니까 법적으로는 완전하게 효력이 발생한다고 할 수있습니다.
그 아무개 친족이 ‘기업을 무르는 것을 포기한 것’ 은 자기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그 아무개 친족과 보아스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득을 얻을려고 했습니다. 받을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줄려고 했습니다. 자기가 손해를 보아도 그렇게 일을 진행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9절과 10절을 보시면 이 보아스가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겠다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포합니다.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보아스는 룻을 사랑하기 때문에 손실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 보아스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사랑해서 결혼을 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신부로 삼아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업을 무를 자격을 갖추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드리심으로 댓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신부로 삼아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의 낙원을 잃어버린 저와 여러분에게 더 좋은 하늘나라의 낙원을 찾아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세상에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정숙한 신부의 마음을 가지고 다시 오마라고 약속하신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나 또한 보아스와 같이 손해를 따지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럴때 훗날에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게 되면 그날에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이름을 불러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불러지는 그날까지 손실을 따지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도 또다른 보아스가 되어 신앙생활을 해나가실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럴때 11절과 12절에 주변사람들이 축복의 말을 합니다. “11.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1절 중간을 보시면 ”라헬과 레아 두사람과 같게 하시고...“
이 축복의 말은 야곱의 아내인 라헬과 레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자녀 열두명이 태어났고 거기에서부터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번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축복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보시면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한다’ 는 축복을 빌어주는데 이 베레스의 후손도 아주 많이 번성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축복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갈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손해가 와도 희생을 하고 감수를 하겠다고 하는 일입니다. 그럴때 이 보아스와 같은 축복을 받게 될 줄을 믿습니다.
*족보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룻이 보아스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이 오벳입니다. 17절입니다. 17.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의 아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이였습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의 족보가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18절에서부터 22절까지 족보가 나오는데 21절과 22절을 보십시다.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이 다윗왕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비로소 제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왕을 통해서 비로소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나라가 나라다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다윗왕 시대를 그리워하고 다윗왕을 가장 위대한 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을 보시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 5절 6절을 보시겠습니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마태복음에 나오는 족보와 룻기에 나오는 족보를 비교해보면 두가지 차이점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는 룻기에는 없는 라합과 룻의 이름이 마태복음에서는 기록되어있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그런데 룻기서에는 라합과 룻의 이름이 없고 아버지와 자녀의 이름만 나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룻기 마지막에는 ’다윗을 낳았더라‘ 로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에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왕' 이라는 칭호가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왕의 족보임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왕의 족보에 그당시 이방여인 이었던 라합과 룻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다윗왕의 족보로부터 예수가 나오는 것을 마태복음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다윗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다윗왕 시대에 이스라엘나라를 가장 강대한 국가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백성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왕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 사건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었고 그분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룻기서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평범한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가 하나님을 믿고 성실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다윗이라는 귀한 상급을 주신 것처럼 이제 우리도 평범한 일상속에서 신실하고 선한 싸움을 해나갈 때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긍휼하심과 은혜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에 살았던 기생 라합과 모압땅에 살았던 룻 이라는 이방여인을 통해 다윗왕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육적인 혈통을 통해 예수님이 탄생하십니다. 이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갈려고 한다면 이전에는 어떠한 삶을 살았든지,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어떠한 환경속에 있었던지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시고 은혜롭고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할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다가 힘들고 어려울 때 여리고 성에서 웃음을 팔고 살았던 기생 라합이 처했던 환경을 생각하십시다. 그리고 남편을 잃어버리고 과부로 살아야 했던 모압땅의 여인 룻을 생각하십시다. 그리고 그 이방 여인 라합을 사랑하고 가정을 꾸민 신실한 사람이었던 살몬을 생각하십시다. 또한 자기 어머니 라합처럼 이방여인이었던 룻을 사랑하고 아내로 맞이한 보아스를 생각하십시다. 이 살몬과 라합 그리고 보아스와 룻 그리고 나오미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부터 평생을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에게 다윗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다윗왕을 통해 그들의 인생이 가장 큰 은혜와 영광의 삶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훗날에 우리가 하나님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인 예수님으로 인하여 나의 삶은 영광이었고 은혜로운 삶이었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룻기에 나온 사람들처럼 어떠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다가 죽음이후에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다고 하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