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빌레몬서 강해2 하나님 눈에 성공적인 삶

Author
kgmcc
Date
2020-11-18 13:41
Views
19
본문 : 빌레몬서 1장 4-7절

날짜 : 2020년 11월 18일


<빌레몬서 1장 4-7절>

4.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배경 요약>

빌레몬서는 사도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서신서입니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고 하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오네시모라고 하는 종이 주인의 재산을 훔쳐서 로마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따라 로마에서 오네시모는 사도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오네시모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죠. 그리고 오네시모는 지난날에 자신이 지었던 죄에 대하여 회개합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 오네시모의 믿음이 자라게 되자 이제 사도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만 그냥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인 빌레몬에게 한통의 편지를 써서 돌려보내는데 그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자, 오늘 본문은 가장 먼저 감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4.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바울은 지금 감사를 하고 있는데 누구에게 합니까? 물론 하나님께 감사를 합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요? 내 하나님이죠.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지금 바울이 감사하고 있는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하나님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실 때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기도는 언제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니까 교회론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교회론적인 관점이 아닌 인격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면 하나님은 바로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하는 공통적인 고백은 ‘나의 하나님’ 이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찬양합니다. 우리가 잘아는 시편 23편 1절을 보시면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편 18편 1절을 보시게 되면 1.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또 시편 16편 2절을 보시게 되면 2.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밖에도 다윗은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이시오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의 구원자이시라’ 라는 고백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이 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만나고 내가 경험하고 내가 찬송하고 내가 감사하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경배해야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다른 사람의 하나님은 내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내게 가장 귀한 분이되십니다. 내 아버지하고 다른 사람의 아버지하고는 너무 너무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성경을 볼때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이나 다윗에게 주신 말씀이나 바울에게 주신 말씀들이 다른 사람에게가 아니라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내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자 바울이 가진 감사의 특징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항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여러분 좋은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물론 좋은일이 있어도 감사를 하지않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감사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감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항상 감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려면 두가지 마음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첫째가 무엇인가 하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대부분 욕심 때문입니다. 내안에 가득차있는 욕심 때문에 우리가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욕심과 감사는 반비례 합니다. 유명한 사상가이었던 세네카는 ‘행복론’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그 사람의 욕심을 줄여 주라’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일 나의 자녀가 정말 행복한 사람으로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내 자녀의 인생가운데 욕심을 줄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된 우리는 반대로 행동합니다. 자녀들의 욕망을 자꾸 키워주는 일을 합니다. 남보다 더 좋은 것, 더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자녀들의 욕망을 키워주는 일을 합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자녀들이 웬만한 일에는 감사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실 저는 가진 것이 없어서 자식들에게 못해줍니다만 물질이 있던, 없던 자녀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행위는 지혜롭지 못한 행동입니다. 욕심이 많으면 많을수록 감사가 사라지고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어지게 됩니다. 반면에 욕심을 내려놓으면 내려놓는 것만큼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기가 쉬워지고 그래서 감사가 많아지게 됩니다. 그럼으로 자녀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선 자녀들이 원하는 것보다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인가를 따져서 도와줄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감사는 욕심과 반비례합니다. 그래서 성경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어떻게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형들이 어릴때부터 자기를 미워하고 죽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형들이 자기를 종으로 팔아버렸습니다. 종의 신분이 되어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런 환경속에서도 요셉은 성실하게 일을 해서 마침내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이제 좀 나을까 했는데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합니다. 그 유혹을 뿌리치니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정도 되면 요셉의 입에서는 원망과 탄식이 쏟아져 나올수 있습니다. 형들을 원망하고, 보디발 아내를 원망하고, 또 자신의 말보다도 음란한 아내의 말을 듣고 감옥에 넣은 보디발 장군의 어리석음을 원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탄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요셉이 한번도 자기 입술을 열어 원망한적이 없습니다. 형들이나 보디발과 그 아내에 대해서 원망과 탄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꿈을 주셨는데 나에게 주신 꿈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을 요셉은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애굽에 팔려갈때도, 감옥에 들어갈때도 이런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내가 애굽에 팔려가게 된 것도 내가 감옥에 들어가게 된것도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믿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남들의 눈에는 변변찮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금 이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환경에서 주어지는 아픔과 고통도 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서 허용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기 때문에 사람과 환경을 원망하거나 탄식하며 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어떤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인지라 기도하면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길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정해놓으신 길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자 그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에게는‘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실수도 결과적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내가 넘어지거나 내가 실수를 하는 것을 너무 쉽게 합리화 시키는 핑계꺼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선으로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잘못에 대한 회개와 그 잘못을 다시 되풀이 하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을수 있는데 하나님은 나의 실수와 잘못된 행동까지도 결과적으로 선이 되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이겨내지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내가 다섯 번 넘어지고 열 번 넘어지고 스물번 넘어져도 내게 다가오신 하나님은 ’자, 다시 시작해보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는 정반대이죠. 내가 넘어지고 쓰러질때마다 ’너는 안돼, 너는 일어설수 없어, 너는 실패한 자야‘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백번 넘어졌을지라도 내게 다가와서 ’그래, 우리 다시한번 시작해보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믿었기에 사도바울은 항상 감사할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감옥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할수 있었습니다. 사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질병으로 인해 몸이 자유롭지 못하고 이해할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상황속에서 감사할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습니다. 욕심을 버리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으십시다. 그럴 때 우리는 언제든지 감사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감사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있습니다. 4절 하반부와 5절입니다. ’4.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기도할때에 너를 말함은‘ 여기서 너는 빌레몬이죠. 바울은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 감사한 것이 아니라 빌레몬에게 믿음과 사랑이 있음에 대해 감사를 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나와 내 가정에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는 감사를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성장되고 성숙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를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레몬에게 믿음과 사랑이 있음을 보면서 감사를 한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나보다도 다른 사람이 사랑과 믿음이 있는 것을 보면서 감사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러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5절 하반부 입니다. ’5.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들음이니‘ 들어서 알았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들었습니까? 오네시모를 통해서 들었겠죠. 오네시모가 누군가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사실은 종들이 자신의 주인에 대해서 대체로 좋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오네시모는 빌레몬 집에서 도망쳐나온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은 믿음과 사랑이 있는 분이시다고 바울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사실 주인이 인정사정 없는 사람이라면 오네시모가 돌아갈려는 마음을 가질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사람인 에바브라를 통해서 바울은 빌레몬의 신앙생활을 들었습니다. 이 에바브라가 누구입니까? 빌레몬 집에서 시작된 골로새 교회의 초대 목회자입니다. 골로새에 살고 있던 에바브라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약 120마일(200km) 떨어진 에베소 도시에 간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만나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후 이 에바브라가 고향인 골로새에 돌아와 평신도 지도자인 빌레몬의 집에서 골로새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물론 에바브라와 빌레몬이 같은 시간에 바울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에바브라와 빌레몬이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배웠다는 사실은 대부분 신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골로새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그 문제 해결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 에바브라가 로마에 있는 바울을 찾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빌레몬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목회자이니까 이 빌레몬을 얼마나 잘 알겠습니까? 이렇게 사도바울은 빌레몬의 종인 오네시모를 통해서, 그리고 또 골로새 교회 목회자인 에바브라를 통해서 빌레몬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들었습니다. 사실 남들을 통해 듣게 될 경우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을 더 많이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빌레몬에 관해서는 좋은 면만을 듣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바울은 이제 빌레몬을 칭찬하기 시작합니다.

 

그 칭찬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 칭찬은 믿음의 교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6절 앞부분입니다. 6.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 빌레몬은 믿음의 교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빌레몬은 적잖은 종을 거느리고 살만큼 부유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부유하고 총명한 빌레몬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그당시에 상류층에 있는 사람들과 교제를 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빌레몬은 그런 교제를 하지 않고 믿음의 교제를 하며 살아갔습니다. 빌레몬은 돈이 있는 사람이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주인이었지만 신분이 낮은 종들과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물질과 신분의 차별을 뛰어넘은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교제는 두가지 유익한 결과를 얻게 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선을 알게 한 것입니다. 6절 상반부입니다. 6.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믿음의 교제를 하니까 성도들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된것입니다. 다시말해 성도로서 실천해야할 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빌레몬과 믿음의 교제를 나누면서 성도들은 ‘아, 신앙생활은 저렇게 하는 구나.’ ‘주일 성수는 이렇게 하는 구나.’ ‘예배때는 예물을 드려야 하는 구나.’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저렇게 섬기면서 화목하게 남을 대해야 하는 구나.’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저렇게 까지 해야 하는 구나’ 이러한 선한 내용을 알게 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믿음의 교제를 해야 합니까? 믿음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믿음의 교제를 할때 얻게 되는 유익한 결과는 그리스도께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6절 전체를 봅니다. 6.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믿음의 교제를 할 때 우리가 선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교제를 하는 목적은 우리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들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만들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께 이르게 하는 것’ 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의 교제를 한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음의 교제가 아니라 친목이요 사회적인 교제일 뿐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이렇게 믿음의 교제를 해오는 것에 대해 칭찬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 바울의 빌레몬을 향한 칭찬은 성도들의 마음이 평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7절 상반부입니다. 7.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빌레몬 때문에 성도들의 마음이 평안함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 집을 예배처소로 내놓은 정도로 희생했지만 빌레몬을 그것으로 인해서 목소리 높이고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빌레몬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언제나 피스메이커로서 분위기를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빌레몬은 언제나 평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빌레몬처럼 나로 말미암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평안을 누릴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의 칭찬은 바울 자신이 빌레몬으로 인하여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7절 하반부입니다. 7.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빌레몬이 베푸는 사랑으로 인해 바울은 목회자로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의 심정이라 할수 있습니다. 부모가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자기의 자녀가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든지 아니면 좋은 일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그것만큼 부모에게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감옥에 있지만 빌레몬이 주변 성도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품으로 인해서 성도들이 평안을 가지게 되고 선을 알게 되고 결국은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게 된다고 하는 사실에 너무나 기뻤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빌레몬의 모습은 너무나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빌레몬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때의 성공은 지금 내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가? 얼마나 내가 많이 가졌는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난하고 내가 어려운 중에 있다할지라도 나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이 마음의 평안을 누릴수가 있고 나로 말미암아 그사람이 위로를 얻을수가 있다면 하나님 보실 때 그사람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내게 가진 것이 있고 배운것도 있다 할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남을 섬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멋진 사람입니다. 빌레몬은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 빌레몬은 재물을 가지고 도망쳤던 오네시모가 자기를 찾아왔을때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듯이 평강의 마음으로 오네시모를 대해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에게는 항상 감사를 하고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바울의 모습을 봅니다.

록 현실은 감옥안 이었지만 하나님에게는 항상 감사를 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하며 살아가는 바울의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바울은 누구보다도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감사를 하며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특별히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이 감사의 달에도 감사하지 못한다면 언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성숙한 사람만이 감사를 풍성하게 하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감사를 넘치게 하면서 살아갈수 있는 믿음이 굳센사람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도록 하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바울과 빌레몬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