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빌레몬서 강해 4. 인정과 보상받는 행위

Author
kgmcc
Date
2020-12-02 14:40
Views
38
본문 : 빌레몬서 1장 13-22절

날짜 : 2020년 12월 2일



 

<빌레몬서 1장 13-22절>

13.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20.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22.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오늘은 빌레몬서 강해 마지막 시간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볼 때 예수님을 만난 사람치고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망가지고 더럽혀지고 깨어지고 실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변화가 되었습니다. 삭개오와 같이 돈만 아는 수전노도 변했고, 다섯명의 남편을 두었던 여자도 변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면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오네시모도 변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변화가 된 이 오네시모를 자기 곁에 두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3절입니다. ‘13.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기곁에 두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왜요? 14절입니다. ‘14.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빌레몬의 승낙이 없이 오네시모를 자기곁에 두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도바울은 빌레몬에게 이렇게 말할수도 있습니다 ‘야 빌레몬아 이전에 무익했던 오네시모가 예수를 영접하게 되어서 이제는 나에게 유익한자가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이 오네시모를 내곁에 머물게 해서 나를 섬기게 하고 싶다. 네가 허락해줄수 있겠니?’ 이렇게 바울이 요청하면 빌레몬이 ‘안됩니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십시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구태여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왜요? ‘나는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는 것이 바울이 가진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의 특성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않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한 쪽으로 빌레몬에게 요구를 할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할 때 빌레몬에게 어떤 유익한 점이 있게 됩니까? 바울이 빌레몬의 승낙을 구하게 되면 빌레몬이 선한 일이 억지로가 아니라 자의로 하게 되는 유익함이 있습니다. 14절 하반부를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14.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너의 선한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여기서 ‘선한일’ 이란 빌레몬이 재물을 가지고 도망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주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일이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였다’ 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오네시모를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지 않고 그냥 요청을 해서 빌레몬이 허락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수 있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지 않고 그냥 간청했기 때문에 빌레몬이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마지못해서 승낙할 수밖에 없었디 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빌레몬 자신이 스스로 자원해서 오네시모를 대할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빌레몬이 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눈에 자의적으로 한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만일 오네시모를 사도바울에게 다시 돌려보내게 되면 그것도 또한 빌레몬이 자의로 행동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난후 자기가 데리고 있거나 아니면 바울에게 보내거나 이 모든 일은 빌레몬이 자의로 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앞에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바울에게 다시 돌려보내서 바울이 더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면 그만큼 주님은 빌레몬에게 보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자의로 하는 종교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율법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모든일을 우리 자의적으로 행할 때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보상하신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억지로 해야 할때가 많습니다. 세상일은 그럴수 있습니다. 그만두고 싶어도 가족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그 자리를 지켜야 할때가 있습니다. 세상일은 그렇다 할지라도 신앙생활만큼은 억지로 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10절입니다.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바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라고 고백합니다.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에 바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많이 수고를 한 것입니다. 바울이라고 그일이 힘들고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더많이 충성하고 더많이 헌신을 합니다. 물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가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이 가신 그길을 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이 있습니다. 다른사람에게 설명할수 없는 평강이 있고 자유함이 있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지 그것도 없이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하면 누가 그길을 가겠습니까? 어거지로 억지로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봉사도 헌금도 충성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경험해야 우리는 신앙생활을 힘들지 않게 감사함으로 할수 있습니다.

 

15절입니다. 15.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구태여 사실대로 표현하자면 오네시모는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오네시모를 배려하는 마음이 바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참된 말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랑안에서 참된말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이 없이 말하면 참된 말이라도 상처가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신앙생활을 같이 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신앙이 더 성숙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리 똑바로 걷는다 할지라도 직선으로 걸을수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구 자체가 둥글기 때문입니다. 완전하게 바르게 살아갈수 있는 사람은 이세상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우리는 보다 더 겸손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울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오네시모를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줄 것을 요청합니다. 16절입니다. 16.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바울은 이 오네시모를 사랑받는 형제로 대하기를 요청합니다. 이것은 그당시 배경으로 보면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그당시에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과도 같은 존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끼쳤던 물건과 같은 존재이었기 때문에 만나게 되면 폐기 처분해버려야 하는 존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오네시모를 사랑받는 형제로 대하도록 바울은 요청한 것입니다. 왜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한 형제요 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입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로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있는 담과 인간과 인간 사이를 막고 있는 담을 허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막힌 담을 허무시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하는 일은 반대로 담을 자꾸 쌓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인간 사이에 담을 쌓아서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성도와 성도사이를 그리고 성도와 목회자 사이에 담을 쌓게 만듭니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에 그리고 부부지간에 담을 쌓게 만듭니다. 사회에서는 지역감정을 조장하게 해서 담을 쌓게 만들고, 인종들간에 위화감을 조장해서 담을 쌓게 만듭니다. 이렇게 담을 쌓게 만드는 일은 모두가 다 하나님과 원수를 맺는 행동인 것입니다. 이제 미국도 선거가 끝났습니다. 지금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서로 서로 막고 있는 담을 허무는 일입니다. 지금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을때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서로서로 막고 있는 담을 허물고 화합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앞에 나서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할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개척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뒤따라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것처럼 어디를 가든지 담을 허무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담을 쌓는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17.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너희들이 나를 동역자로 알고 영접하는 것처럼 오네시모에게도 내게 하듯이 대하여달라’ 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내용입니까?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았지만 분명히 빌레몬과 그 가족들과 그리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요청대로 오네시모를 형제로 환영하고 바울을 대하듯이 대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오네시모는 전화위복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전화 위복이 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 의해서 종의 신분이 되어 애굽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는데 그결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들어온 술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주었지만 감옥에서 나간 술 관원장은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후 그 술 관원장이 바로왕에게 요셉을 소개함으로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자, 여기서 형들이 요셉을 종으로 팔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주인 보디발 아내의 유혹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론 형들이 요셉을 종으로 팔았다는 것이 잘했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간 것이 잘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원통할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는 전화위복의 은총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주님을 만난 오네시모를 보십시오.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자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남의 재물을 훔치고 도망을 갔던 도둑놈의 신분에서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만난이후의 행적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오네시모는 옛날의 오네시모처럼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수 없습니다. 주인 빌레몬이 자신을 보거나 보지 않거나 상관없이 오네시모는 자원하는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을 해나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리 떠나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역을 해오면서 성도님들에게 단 한번도 억지로 순종을 강요 한 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억지로 섬김과 봉사생활을 하면 하나님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그 섬김과 봉사를 인정하지 않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이 늘 자원적인 마음으로 섬김의 생활을 할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해왔습니다. 자원적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만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보상해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본문 18절과 19절은 사랑이란 댓가를 지불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18,19절입니다.

18.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가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앞으로 계산하라‘ 오네시모가 얼마만큼의 물질을 가지고 도망 갔는가에 대해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네시모가 로마에 갈수 있었고 로마에서 상당기간 체류할수 있었다면 적은 액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 그렇다면 바울에게 그 돈을 갚아줄 경제적인 여력이 있겠는가? 는 질문에 학자들마다 의견은 다릅니다. 바울이 감옥생활을 오래 하고 있었는데 무슨 경제력이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또 반면에 오네시모가 빚진 것을 갚을만한 여력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이런말을 하지 않겠는가? 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에게 갚아줄만한 경제적인 여력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것보다는 바울이 이말을 할때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19절을 다시 보시면, 19.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이것은 바울 자신이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오네시모가 진 빚에 대해서는 내가 갚아주겠다고 하는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자기 수중에 돈이 없다면 바울은 자기가 일을 해서라도 갚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란 댓가를 지불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관념이나 철학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 실제가 무엇인가 하면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댓가를 지불하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천한 종의 형상을 입게 하시고 이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시는 댓가를 치루신 것입니다. 왜요? 우리 인간의 죄의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생명으로 그 댓가를 치루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오네시모가 진 빚이 있다면 자신이 반드시 갚아줄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댓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0절입니다. 20.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하고 평안하게 하라'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는 것이죠.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주는 모습을 보게 될 때 내마음이기쁘고 내가 평안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절을 보시게 되면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해줄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21절입니다. 21.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내가 너에게 말한 것보다 네가 더 많이 행할줄을 안다’ 라고 까지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진정으로 빌레몬을 믿고 신뢰를 했습니다. 그러니 빌레몬이 어찌 순종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교육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의 신화에서 나오는 이 피그말리온 왕이 아름다운 여인상을 만들어놓고 지극히 돌보고 사랑하였더니 그 조각상이 사람처럼 변하였다는 신화입니다. 이 신화에서 유래된 말입니다만 피그말리온 효과란 남이 나를 존중해주고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사람은 그런쪽으로 변할려고 노력함으로 그렇게 될수 있는 효과를 얻을수 있다라고 하는 이론입니다. 그러니까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선생이 그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 그아이가 모범생으로 바뀔수 있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되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티그마 효과입니다. 이것은 사람과 사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접근을 하면 그 결과도 기대치 이하로 떨어진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피그말리온 효과를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후에 빌레몬의 행적에 대해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빌레몬은 당연히 오네시모를 용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부탁한 것 이상으로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오네시모를 환대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경험해봐서 알게 되었지만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그 유지비가 굉장히 비싸게 드는 물건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 당시에 사는 물건값보다는 유지비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 물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마트 폰과도 같은 것입니다. 폰은 한번 사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달 사용 유지비가 들어갑니다. 일년 이년 그폰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매달 전화비를 내어야 하는데 그 유지비용이 폰값보다 훨씬 더 비싼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이 스마트 폰 과도 같습니다. 당시에 한번 사는 가격보다 그 유지비가 훨씬 더 많이 드는 것이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때 내 자신을 괴롭히고 내 영혼을 멸망시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갈때 인간관계에 불화와 갈등을 조장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일생동안 과거에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용서하지 못할 때 신체적인 건강까지도 해치게 됩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못한 마음은 정말 유지비가 굉장히 비싸게 들어가는 물건입니다. 그래서 하루속히 버려버려야 나자신을 파탄 시키고 있는 일에서 자유함을 누릴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못 박은 사람을 용서해 달라고 하는 중보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미 마음에서 용서하셨기 때문에 용서해달라고는 중보의 기도를 드릴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용서를 하면 자신에게 해를 준 사람으로 말미암은 증오심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용서하기가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아시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용서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왜요? 그이유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좀더 거룩해지시거나 하나님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힘들어도 용서를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요. 빌레몬에게만 용서해야할 오네시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가운데서도 용서해야할 오네시모가 있습니다. 그래요 주님이 나를 용서해주셨듯이 그리고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했듯이 우리도 내 인생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입니다.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래요 이 땅에서 우리가 먼저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어주십니다. 이땅에서 묶어버리면 절대로 하늘에서 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이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오네시모는 용서하면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야 묶인것들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닫힌 것이 열려지고 굽혀졌던 것이 바르게 펴지게 될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22절입니다. 22.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숙소를 마련하라’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내가 너희들의 기도로 인해서 나가게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내가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너희에게로 갈 것이다. 그때 내가 머물게 될 숙소를 마련해놓아라 는 뜻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바로 응답을 준비하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절입니다. ‘2...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바라옵기는 이제부터는 저와 여러분이 믿음으로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내가 선한 뜻으로 믿음의 기도를 했다면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면서 기도응답에 대한 준비를 우리 다함께 해나갈 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