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성탄 시리즈1. 베들레헴의 의미

Author
kgmcc
Date
2020-12-09 13:46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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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48장 1-7절

날짜 : 2020년 12월 9일

 

<창세기 48장 1-7절>

1.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3.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7.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이번 주 수요일부터 약 3주 동안은 성탄 시리즈로 같이 은혜의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이일후에’ 여기서 이일이 어떤 일인가 하면 본문 앞장을 보시면 이제 나이가 많은 야곱이 아들 요셉을 불러놓고 이런 유언을 합니다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고향 가나안땅에 묻히게 해다오” 야곱이 이 말을 하고 난 이후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 야곱은 병이 들어서 이제 곧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병들었다’ 라고 하는 소식을 들은 요셉은 자기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아버지 야곱에게 갑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제 죽음을 앞둔 야곱은 그 자리에서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양자로 삼고 축복해줍니다. 그래서 요셉은 다른 형제들보다 두배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잠시 설명을 해드리면 야곱의 열두 아들인 열두 지파중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들어가고 우상숭배를 했던 단지파가 빠지게 됩니다.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요한 계시록 7장을 보시면 열두지파의 이름이 나오는데 단지파가 빠지고 대신에 요셉지파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요셉지파는 에브라임지파를 의미하고 있다고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해석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자, 어쨌든 죽음을 앞둔 이 야곱은 아들 요셉에게 자신이 지나온 옛날 일들을 말합니다. 7절입니다. 7.내게 대하여는 (야곱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봅니다)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밧단은 아내 라헬의 고향입니다. 하란으로도 성경에 기록)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라헬이 남편인 야곱을 따라 고향 밧단(하란)을 떠나 여행길을 가다가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 아들을 낳는 도중에 죽었습니다. 그때 이 라헬은 ‘베노니’ 라고 외치고 죽습니다. ‘베노니‘ 는 ’슬픔의 아들‘ 이라는 뜻입니다. ’불쌍한 내아들아‘ 그렇게 외치고 라헬은 죽었던 것입니다. 엄마도 없이 평생 살아가야 할 아들을 생각하면서 “아이고 불쌍한 내아들아, 베노니” 라고 외치고 그만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차마 ’베노니‘ 라고 이름을 짓지 못하고 대신에 ’베냐민‘ 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당시에 오른손은 행운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니까 ’죽지않고 살아난 것이 행운이다‘ 라는 뜻으로 ’베냐민‘ 이라고 이름을 지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이 창세기 35장 17절에서 19절까지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17.그가(라헬)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이 에브랏은 지금 베들레헴의 옛날 지명이름입니다. 참고삼아 언급하면 이 사건은 약 4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내 라헬은 요셉에게는 친어머니가 됩니다. 그리고 베냐민은 요셉의 친동생이 됩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이 묻힌곳이 베들레헴입니다. 지금도 베들레헴 지역에 성지순례를 하면 라헬의 무덤이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베들레헴하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그당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 제국 전체에 인구조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의 영향아래 있는 사람들은 모두다 자기 고향에 가서 등록을 해야 했습니다. 이 명령을 무시하고 등록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과 자녀들은 사회 활동에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서 등록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계획해놓으신 시간표에 따라 마리아는 베들레헴 지역에 있는 어느 한 말구유에서 아기를 낳게 됩니다. 그래서 미가서 5장 2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오게 되리라’ 라고 하는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세상의 역사가 하나님이 계획해놓으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여기서도 우리는 다시한번 확인합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베들레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오는 성탄절을 맞이할 때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던 베들레헴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볼수 있으시길 소망합니다.

그러면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땅으로 돌아오는 도중 베들레헴에서 겪었던 그 사건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베들레헴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야곱은 자기가 죽기 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이제 곧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가장 중요한 일만큼은 자기가 살아있을 때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에게 중요한 일은 바로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야곱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는 일이었습니다. 5절입니다. 5.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야곱의 두아들) 내 것이 될 것이요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것이라‘ 여기서 내것이라는 의미는 야곱의 아들인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것이 될것이다‘ 라고 하는 야곱의 말을 의미해보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기 아들로 삼겠다는 의미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이 들어왔을 때 마지막 힘을 다해 간신히 일어나 앉아서 이렇게 말한것입니다. 그아이들은 내가 양자로 삼겠다. 내 아들로 삼겠다. 그리고는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아들로 입양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말을 합니다. 7절입니다. 7.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땅에서 죽었는데... 그러니까 라헬은 집에서가 아니라 여행길에서 아이를 낳다가 산고가 심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헬을 베들레헴에 장사지냅니다. 자, 그렇다면 베들레헴은 야곱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베들레헴은 야곱에게 라헬을 생각나게 합니다. 자신이 젊어서 모든 것을 내걸고 사랑했던 여인 라헬, 그 여인을 얻기 위해서 7년을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얻었던 것은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칠년을 더 고생해서 마침내 라헬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굶기지 않게 하기위해서 6년을 더 고생해서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도합 20년 동안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라헬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기쁘게 일을 했던 야곱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인을 아내로 얻어서 자기 인생에 가장 큰 행복을 누렸던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했던 라헬이 죽어서 장사지내게 된 곳이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가 사랑했던 아내가 죽어서 묻혔던 그 베들레헴을 한 순간도 잊지 못하고 지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베들레헴은 야곱에게 라헬뿐만 아니라 아들 베냐민을 생각나게 합니다. 아내 라헬이 아들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라헬은 죽으면서 야곱에게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있어서 베들레헴은 사망과 탄생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아픔과 기쁨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베들레헴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생명이 죽은 자리이고, 동시에 사랑하면서 살아야 할 생명을 얻은 자리입니다.

그로부터 약 17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십자가가 세워졌던 갈보리 언덕이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영원전부터 그렇게 사랑하셨던 독생자 예수님이 못박혀 죽으신 자리입니다. 마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다가 고통속에서 라헬이 죽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한 생명의 죽음으로 끝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자리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 나와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그 곳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을 할때 죄를 지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 뱀에 물려 죽어갔습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뉘우치고 회개했을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어 달도록 명령하십니다. “모세야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매달아라. 그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마다 다 살아나게 되리라” 그래서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아 높이 세웠고 그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과 15절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베들레헴 지역 갈보리 언덕에 매달려 죽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육신의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과 13절입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 문장을 영어성경에 보시면 children born of God 입니다. 육신의 부모님이 낳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낳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낳으셨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이름을 믿는 자들’ 그럼으로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이 진실로 믿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자, 라헬이 죽었던 베들레헴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볼수 있습니다. 라헬을 사랑했던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했던 하나님을 볼수 있습니다. 라헬이 죽음으로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것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서 우리가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을 보여줍니다. 라헬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죽었던 베들레헴은 온세상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베들레헴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사건을 보여줍니다.

5절입니다. 5.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을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입양하는것과 베들레헴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요셉은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의 아들입니다. 야곱은 아들이 많았습니다. 레아와 그리고 레아와 라헬의 여종들로부터 얻은 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라헬로부터 얻은 아들이었기에 그리고 엄마 없이 살아가는 요셉을 야곱은 특별히 더 사랑했습니다. 창세기 37장 3절입니다. “3.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야곱이 요셉에게만 값비싼 채색옷을 요셉에게 입히자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고 요셉의 옷에 숫염소의 피를 묻혀서 아버지에게 가져갑니다. 아버지 야곱은 피묻은 요셉의 옷을 보면서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먹혀 죽었다고 믿게 됩니다. 그 슬픔의 장면이 창세기 37장 34절과 35절에 나옵니다. “34.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내 아들아 나도 너 있는 곳에 갈란다’. 저도 목회를 하는 동안 세상을 떠나는 장면을 여러번 곁에서 지켜보았지만 특별히 자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낼 때 부모님들이 외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가슴을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생명처럼 사랑했던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슬퍼했습니까? 생명처럼 사랑했던 아들의 죽음을 자기 마음속에 파묻어두고 지내고 있던 야곱에게 하루는 이상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요셉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야곱에게는 아들이 부활한 것과 같은 복음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당시 최강대국가인 애굽나라의 총리가 되어 온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 요셉을 만나기 위해 애굽에 왔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17년동안 지내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기 바로전에 야곱은 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의 아들로 입양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온 하늘과 이 온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통치자의 권세를 가지시고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세상을 마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앞에 가게 될 때 예수님께서 나를 인도해주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라간 저와 여러분을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 너는 이제 내아들이야 너는 내것이야” 믿으십니까?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입양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9절을 보시면 예수님을 맏아들로 말씀하고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이미 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 야곱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가 됩니다.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지만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아들로 입양했기 때문에 요셉은 맏아들이 되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요셉의 형제가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과 딸로 삼아주십니다. 그러니가 예수님은 맏아들이 되고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죽어가기 직전에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요셉이 데려온 그 두아들을 보면서 자기의 아들로 입양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은 에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나를 양자 삼아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5절입니다. 15.너희는 ...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그리스도인이란 다른말로는 하나님이 양자로 삼아주신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마도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야곱이 왜 자기들을 양자로 삼으실까 라는 의문을 가질수도 있었을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하나님이 세우신 열두지파가 된 축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양자로 삼아주신 축복을 평생동안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베들레헴은 원수가 되었던 벽을 허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어떻게 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낳았습니까? 창세기 41장을 보시면 요셉이 애굽나라 바로왕의 꿈을 해몽해주고 그후에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요셉이 꿈을 해몽 해준대로 첫해에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때서야 애굽의 바로왕은 요셉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요셉의 아내가 될 사람을 선택해서 요셉과 결혼을 하게합니다. 그 아내가 누구인가 하면 당시 애굽 나라 대 제사장인 보디메라의 딸 아스낫입니다. 그당시 보디메라 제사장은 태양신을 섬기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이 애굽의 제사장의 딸이 요셉에게 시집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들이 바로 에브라임과 므낫세입니다. 그러니까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종교 집안의 출신입니다. 그당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는 두꺼운 벽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인간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그냥 둘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두게되면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마지막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을 해버립니다. 사랑했던 요셉 때문에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이방인이었지만 야곱은 사랑의 마음으로 그 이방인의 벽을 깨트려 버렸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서 14절까지입니다. “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방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과 화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벽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야곱이 했던 일이요 예수님이 하셨던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제 야곱이 세상을 곧 떠나게 되는 시점에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와 구원의 신비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성령께서 개입하시고, 성령께서 조명하시고, 영감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기 아들로 삼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 이야기를 합니다. 베들레헴은 야곱의 아픔과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사랑했던 라헬이 죽었고 사랑해야할 새 생명이 태어난 곳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베들레헴은 하나님의 아픔과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셨던 아들이 죽어야 했던 곳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그 아들이 죽기 위해서 오셨던 곳이고 또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죽으셔야 했던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바라옵기는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양자로 삼아주심으로 하늘나라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었듯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양자로 살아주심으로서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음을 믿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