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성탄 시리즈3. 큰 기쁨의 좋은 소식

Author
kgmcc
Date
2020-12-23 12:48
Views
77
본문 : 누가복음 2장 8-14절

날짜 : 2020년 12월 23일

<누가복음 2장 8-14절>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3주 전부터 수요일마다 성탄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성탄 시리즈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탄절은 일 년 중에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전세계가 웬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올 한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 어쩌면 2020년 한해를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한 두달 후면 괜찮아 질 거야“. 이렇게 생각하다가보니 결국은 결국 올한해 다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나온 몇 년동안 연합 뉴스가 발표한 국내와 국제 10대 사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올해 2020년도는 발표된 것을 제가 찾지 못해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와 국제 10대 사건들을 살펴보았습니다만 대략 10대 뉴스 중에 나쁜뉴스가 8개나 9개이고 좋은 뉴스가 1개나 2개 정도 나와있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대부분이 부정적인 내용들이 될것으로 보게 됩니다. 아마 코로나 백신이 나왔다는 소식도 10대사건에 포한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반갑고 좋은 소식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도 뒤집어보면 그만큼 좋지 않았던 상황속에서 생활해왔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좋은 소식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씁쓸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뉴스를 접할때마다 기쁘고 좋은 소식보다는 안타깝고 나쁜 소식들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이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부분 안타깝고 슬픈 소식들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식은 언제나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내용들임을 성경은 보여줍니다.오늘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이 보내신 가브리엘 천사가 온세상 사람들에게 미치게 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본문의 내용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탄생이 왜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이 됩니까?

한 밤중에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고 있을 때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서 이런 소식을 전하여 줍니다. 10절입니다.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그러니까 천사는 그당시 양떼를 지키고 있는 목자들에게 ‘너희들만이 아니라, 유대민족만이 아니라, 이세상 온 인류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한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온 인류에게 미칠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은 어떤 소식입니까? 잘아시겠지만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은 바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이 땅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생이 왜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구주란 구원자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구세주,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는 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은 아담 안에서 하나님의 마땅한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되었고 이 죄 때문에 가난과 질병과 저주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인간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원래 원어를 보시면 ‘테텔레스타이’ 인데 이 말의 뜻은 ‘값을 지불했다’. ‘완불했다’ 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죄값을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죄값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합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왜 우리 인간에게 죽음이 왔습니까?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제는 예수님이 오시기전까지 우리 인간이 풀지 못할 숙제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죽고 싶어 죽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요즘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서 예전보다도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자살의 배후에는 어두움의 영이 역사하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어둠의 영에 사로잡히게 될 때 사람들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의 수렁을 피하고 싶어하지만 그 누구도 이 죽음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문제를 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와 죽음의 법아래 있는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더 이상 사망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저주는 죄와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가장 큰 승리는 바로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기쁨은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성탄의 소식을 가장 먼저 들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8절입니다.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성탄의 소식을 가장 먼저 천사들을 통하여 들었던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목자들은 사회적으로 천민 취급을 받던 계층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남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그 밤중에도 그들은 깨어 양떼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당시 천대를 받고 살아가는 신분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듣을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을 불러서 귀하게 쓰십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베들레헴 들판에서 저녁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열심히 양 떼를 돌보고 있는데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드온은 밀 타작을 하다가 사사로 부르심을 받았고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사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엘리사는 밭을 갈다가 부르심을 입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거나 세관에서 일을 하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일에서 성실하게 묵묵하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갈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부르시고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십시오.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하나님은 일을 맡기고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계속 일을 맡기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를 원망하고 주변 사람들을 비판하고 환경을 탓하는 영적인 백수에게는 있는 것 마저 빼앗아 충성된 사람에게 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 28, 29절입니다. 28.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있는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자는 그 있는 것 까지 빼앗기리라’ 한달란트를 받고 난이후에 가만히 있었던 사람은 그 한달란트 마저 빼앗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 내게 주어진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생활해나가야 하겠습니다.

비록 내가 하는일이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크고 화려한 일이 아니라 하찮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 일에 충성하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탄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12절입니다.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얼마전에 우리가 기적과 표적이 주는 의미에 대해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만 기적은 영어로 miracle 이고 표적은 영어로 sign입니다. 그리고 기적은 초자연적인 사건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 빌딩이 무너졌는데 한달후에 그 무너진 빌딩속에 갇혀있는 아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그 아기가 생존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기적이라 말합니다. 이렇게 기적은 실상 그자체입니다. 하지만 표적은 실상이 아닙니다. 실상이 아니라 실상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표적이라고 하는 단어가 나올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표적이 보여주고자 하는 그 실상이 무엇인가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그렇다면 천사가 전한 성탄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강보(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 입니다.

강보 즉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가 성탄의 표적이라면 사실 너무 초라하지 않습니까?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의 등장치고는 너무 초라하고 볼품이 없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가 되시고 영원토록 우리를 다스리실 만왕의 왕이시라 한다면 그래도 예루살렘의 궁전에서 태어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부터 구름을 타고 오신다든지 아니면 황금빛이 찬란한 독수리를 타고 오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오시지 않았습니다. 아주 초라하게 오셨습니다. 그것도 짐승들이 살고 있는 마구간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인간의 모습으로 그것도 낮고 천한 말구유에 탄생하셨습니까?

첫째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죄성을 가진 우리 인간들은 천사만 보아도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9절을 보시면 천사를 본 목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이사야 선지자도 그랬고 에스겔도 그랬습니다. 다니엘은 정신이 다나가서 앓아누웠습니다. 기드온은 천사를 보고 죽는 줄 알고 울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사만 보아도 무서워하여 두려워 떨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범죄를 하고 도피하고 있는 범인이 경찰만 보아도 무서워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천사만 보아도 이렇게 크게 무서워하는 우리 인간들인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직접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둘째는, 진정한 영광은 낮아짐과 희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마구간은 짐승들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장소이지 인간이 태어날 장소가 아닙니다. 아무리 가난한 가정이라 할지라도, 마구간에서 아기를 출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영광‘이라고 말할때, 더럽고 추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대단히 찬란하고 황홀하고 눈부신 것들을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내 앞에서 꼼짝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진정한 영광은 낮아짐과 희생으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광이란 높은 자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광이란 희생으로부터 출발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 예수가 바로 성탄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의 낮아지심과 희생이 바로 성탄의 표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성탄의 표적이 있어야 합니다. 성탄의 표적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나 포인세티아 꽃 과 같은 장식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낮아짐에 있고 섬김과 희생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살아가는 이웃들을 섬기며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주변의 사람들이 성탄의 표적을 보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천사들의 찬양내용은 무엇입니까?

13, 14절을 보시면 가브리엘 천사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찬양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13절 14절입니다.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 라고 천사들이 찬양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세상을 보면 평화보다는 전쟁과 싸움이 더 많이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하다못해 성탄절 하루만이라도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가 되면 좋겠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오히려 평상시보다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하고 시끄럽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 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께 영광‘ 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에게 영광' 이 된다 의미입니다

왜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우리 인간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범죄하여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 인간이 죄와 죽음의 법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한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영광을 흠집 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셔서 죄 값을 지불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와 죽음의 법아래 놓여 있던 영혼들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훼손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 인간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군사적인 평화나 경제적인 평화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평화는 원어로 보면, ‘샬롬’입니다. ‘샬롬’은 처한 상황이나 주어진 형편과 상관없는 절대적인 평화를 의미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누구나 다 누릴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은 사람들만이 이러한 평화를 누릴수 있습니다. ‘기쁨의 좋은 소식’ 은 곧 복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땅에 사는 누구에게나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의 심령속에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예수님을 믿을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땅위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때 평안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최고의 관심은 평화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와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지어다” 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만나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것을 이야기하면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어떠한 환경과 문제 속에서도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성탄의 소식은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우리 인간이 죄와 사람에서 벗어나게 되는 성탄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탄의 소식은 밤에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맨 처음 전해졌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초라하고 볼품이 없다 할지라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기쁨의 소식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성탄의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초라하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모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마 20장 28) 이러한 예수님처럼 저와 여러분도 섬김과 봉사의 생활을 해나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예수님 믿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도 성탄의 표적처럼 낮아짐과 섬김과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땅에서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