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지나온 모든 일에 감사할수 있는 이유

Author
kgmcc
Date
2020-12-30 13:13
Views
88
본문 : 로마서 8장 26-28절, 살전 5장 18절

날짜 : 2020년 12월 30일

 

<로마서 826-30>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데살로니가 전서 518>

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오늘은 올 한해 마지막 수요 성경공부 시간입니다. 내년 새해 수요성경공부는 요나 강해로 시작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싯점에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적당한 단어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감사야 말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지나온 이 한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낼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한 구절인 데살로니가 전서 5장18절입니다.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에서 18절까지는 올 한해 저희 교회 표어 이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의 내용이 너무 좋아 내년 새해에도 저희 교회 표어로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바라옵기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 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런데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지나온 이 한 해를 돌아보면 내가 원하지 않았고 내가 환영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던 이유 중에는 나의 실수와 부족함도 있지만 나의 잘못과는 전혀 관계없이 일어난 사건들도 있습니다. 내가 빨강색 신호등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차가 와서 박았습니다. 또 운전하고 가는데 작은 돌맹이가 날라와 차 유리창에 금이 갔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직장에서 lay off 당했고 또 가족중에 생명이나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또 다른 본문인 로마서 8장 26-30절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범사에 감사를 할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지나온 한해동안 일어난 이 모든일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감사할수 있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한해 일어난 일에 대해서 지금 내가 감사할수 있는 이유는

1.첫째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감사하며 살아갈때도 있지만 감사를 하지못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직장이나 사업이 내 뜻대로 잘되어지고, 자녀들도 내가 원하는데로 잘되어지면 좋겠는데 일이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실패를 하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상황에 처하게 될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어떻게 도우십니까? 본문 26절 말씀입니다.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때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무슨 기도를 하겠습니까? 27절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하나님이시죠)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뜻대로 간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는 것‘ 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이 결국 우리를 위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원하고, 내 바램대로 되어지는 것이 우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로 되어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와 내 가족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서 내게 아픔과 상처가 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된다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한 결과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금물은 너무 짭니다. 마늘은 너무 맵습니다. 된장은 냄새가 나고 고춧가루는 눈물이 나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소금과 마늘, 그리고 된장과 고춧가루를 따로 따로 그냥 먹을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조금은 먹을수 있겠지만 그 댓가로 하루종일 속이 좋지 않은 하루를 보내게 될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요리사의 손을 거치게 되면 맛있는 된장찌개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28절 말씀이죠.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 하나를 볼때는 소금, 마늘, 된장, 고춧가루처럼 짜고 맵고 냄새나고 눈물이 나게 할수 있습니다. 직장을 잃어버리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사업에 실패한 것, 이것 자체는 좋은일이 아닙니다. 선은 아닙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내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연약하게 만들고, 더 이상 기도할수 없게 만드는 악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성령이 나의 연약한 부분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 하시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뜻은 화목이고 평강입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화목과 평강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이 나를 위하여 기도를 하십니다. 내가 인내하고 평강을 가질수 있도록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때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평강을 가지고 화목하면서 계속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때 주변의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시면서 선한 결과를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런 선한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힘이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는 감사하면서 지낼수 있습니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최고의 선은 행복’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가 행복이 인간의 목적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이후 독일에서 태어난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는 ‘그냥 무조건 행복이 아니라 도덕적인 행복이 바로 최고의 선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힘들게 하면 그것은 선이 아니라는 것이죠. ‘도덕적인 행복이 최고의 선이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은 무엇입니까? 그냥 행복도 아니고, 도덕적인 행복도 아닙니다. 그 기준은 내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이 바로 '우리 인간의 최고의 선이요 목적' 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만 허용되어진 축복입니다. 28절 말씀 앞부분을 다시 보시면,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 이것은 바로 믿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믿는 성도들인 우리만 알고 있는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좋지않은 일들을 많이 겪어왔습니다. 어머니 라헬이 자기 동생 베냐민을 낳으시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다른 열명의 형들로부터 미움과 시기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형들로 인해 종의 신분이 되어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애굽에서는 보디발장군의 아내의 모함에 의해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감옥에 들어온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감옥을 나가게 되면 자기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 사람은 감옥을 나가고 난뒤에는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2년이나 더 감옥에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원망이나 불평을 하는 말을 우리는 찾아볼수 없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고 지낼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를 우리는 창 45장 5절의 말씀에서 알수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형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5.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리고 7절과 8절 입니다.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까? 열 일곱살에 종이 되어서 말도 안 통하는 애굽나라에 팔려갔으니 얼마나 외롭고 서러웠겠습니까? 요셉은 자신이 원해서 종이 된것도 아니고 애굽에 가고싶어서 간 것도 아닙니다. 감옥을 원해서 감옥에 간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순간, 순간을 이겨낼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룰것이다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님들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형님들이 나를 팔아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형님들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흉년이 들게 되면 굶어 죽게 되실까봐 미리 나를 물과 곡식이 풍부한 이곳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애굽 총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이렇게 형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형들을 원망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형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했지만 하나님이 선한 결과를 만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이루어내실 선한 결과를 바라볼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내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는 이순간 성령이 한탄하시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그 선한 결과를 이루어 내시기 위하여 일을 행하십니다. 강퍅하고, 메마르고. 불평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심령을 만져주십니다. 닫혔던 환경과 장벽을 열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가 원하고 바래왔던 일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내게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보다도 더 큰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면서 이 힘든 순간을 감사하면서 극복하실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나온 한해 내가 이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 할수 있는 이유는

2.이 모든 일이 예수님의 모습을 닮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행하실 선하신 결과를 믿고 있다고 해서 지금 당장 악한 일이 선한 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악한 상황이 선한 상황이 되고, 실패의 환경이 성공의 환경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주었지만 그 사람이 감옥을 나간후에도 요셉은 계속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그대로 머물러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되어지는 상황으로 인해 나의 인격이 변화되어지고 성숙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고 바라봄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입니다.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예수님의 형상)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기대하시는 목적입니다. 그 아들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힘든 상황인줄을 아시면서도 그 상황을 허용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꼭 닮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20장 29절) 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으면 그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닮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볼 때 자기를 닮으면 대견하고 기쁜 마음이 생깁니다. 자식이 성장할수록 자기를 닮지 않고 옆집 아저씨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저와 여러분을 자녀로 선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은 바로 자신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본문 30절입니다.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미 예정하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게 되어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신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의로운 신분이 되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나의 행위가 저절로 의로와 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제가 미국 시민권자 신분이지만 여전히 나는 한국말이 영어보다 훨씬 더 편하고, 한국음식을 미국음식보다 더 좋아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신분은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속에 계신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성화 되어 살아가다가 이 육신의 껍질을 벗게 될 때 나는 영화로운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행하시는 영광의 작업중에 있는 작품들입니다. 어떤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의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한해를 보내신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성도님들에게는 올 한해 특별히 그 형체를 많이 바꾸기 위해서 아주 뜨거운 불속에 오래 들어가 있다가 나오신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했는데 크고 무거운 망치로 여러번 두들겨 맞는 일을 경험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특별히 2020년 올한해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예전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원치 않고 바라지 않았던 일들을 겪어야만 했습니다.하지만 지금 이시간 이것 한가지만을 명심하십시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광의 작업중에 있는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이 영광의 작업의 끝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보실때마다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17:5절).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맏아들이 되시는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했습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비웃고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별 별짓을 다해도 예수님은 묵묵하게 참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에서 목이 마르고 고통스러워도 십자가에서내려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사람들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한번 내려와 보라’ 라고 비웃고 조롱을 해도 그냥 참고 인내하셨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목적이고 가장 선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을 못박은 것은 로마군인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한 것은 세 개의 못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면서 맏아들 예수님의 모습을 볼수 있다면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닮은 성숙한 모습으로 살아가게하기 위해서, 때로는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과 같이 살게 하시면서 그가운데서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실수 있습니다. 때로는 슬픔의 사건을 허용하시고 그 슬픔을 넘어서 기뻐할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도 하실수 있습니다. 때로는 견디기 힘든 환경을 허용하심으로서 어떠한 환경속에서라도 인내할수 있는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생각과 마음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고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마지막에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어 왔는가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앞에서는 너무 작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온 인류가 해온일을 모두 합쳐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단 1초의 시간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이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어 왔는가 하는 업적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그대신에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의 인격을 닮았는가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시는 동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내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느냐” 가 아닙니다. “내가 어떤 인격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욥에서 우리는 이런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다.

욥이 무슨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 있습니까? 욥이 한일이 있다면 그는 계속해서 자기에게 다가오는 힘든 인생의 시련들을 잘 참고 잘 견디어낸 것 뿐 이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입니다. “10.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순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주어졌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잘 견디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욥은 자신에게 상처만 주었던 친구들까지 용납하고 용서하는 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한 욥의 모습을 본 순간 이제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의 고난을 끝내십니다. 욥기42장 10절입니다. “10.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욥의 인격이 완성되어지고 증명이 되어지는 그 순간 하나님은 욥에게 더 이상의 고난이 불필요한 것을 아시고 고난의 세월을 끝내십니다. 그리고 갑절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욥의 축복은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 라고 하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갑절의 축복도 받지 않는 것보다는 더 낫습니다. 그런데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것 보다 더 값진 축복은 어떠한 환경속에서라도 욥이 인내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라도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기도할수 있는 인격을 지닌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욥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중의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선택하셨습니까.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맏아들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으로 올 한해 특별히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서 많은 성도님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되었지만 이 어려움이 나로 하여금 더욱더 예수님이 지닌 마음을 알게 되었다면 감사할 이유가 될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한해가 다 저물어가는 이싯점입니다. 인생의 바닷가에 위치해있는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서 지나온 한해 항해를 해온 인생의 바다를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이제 저 멀리서 선한 파도가 점점 내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바라보십시다. 저 선한 파도가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오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 아픔과 이 고통과 이 눈물을 가지고 선한 결과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지금은 아픔이고 지금은 눈물이라할지라도 예수님처럼 인내와 온유로 이겨내시며 선하고 축복의 파도가 밀려오는 새해를 맞이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