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요나 강해1. 내 마음에 새겨야 할 3가지 원리

Author
kgmcc
Date
2021-01-06 13:21
Views
71
본문 : 요나 1장 1-3절

날짜 : 2021년 1월 6일

 

<요나 11-3>

1.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이번 주부터는 요나 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요나는 여로보암 2세때 북이스라엘 선지자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선지자로 활동을 하다가 그당시 원수의 나라인 앗수르의 수도이었던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처음엔 순종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니느웨 성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자신의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그당시 앗수르는 지금 이라크라고 할수 있는데, 당시 니느웨는 지금 모술이라는 도시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모술지역에 가면 요나의 무덤을 볼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단체인 IS 가 2014년 6월에 이 모술 지역을 점령하고 난 이후에 요나 무덤을 폭파시켜버렸습니다. 요나 무덤을 폭파시키는 장면이 유튜브에도 등장했는데 지금은 그영상이 삭제되어 찾을수가 없습니다. 2017년 1월 초에 이라크 정부군이 이 IS를 쫓아내었습니다. 그리고 IS가 폭파시킨 요나 무덤 주변을 탐사하다가 요나 무덤 아래에 있던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를 발굴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인 열왕기하 19장 37절과 이사야 37장 38절에도 나오는 앗수르왕 에살핫돈에 관한 내용이 담긴 비석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자료를 모두 없애버릴려고 했던 IS의 만행을 통해서 요나 무덤아래에 감추어져 있었던 성경에 기록된 자료가 발굴됨으로 말미암아 성경에 말씀하는 내용이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 모술지역에는 약 18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IS가 이 모술지역을 정령했을 때 니느웨 성벽과 성문 입구를 폭파시켜버려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이전의 사진을 보시면 그당시 이 니느웨성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있습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요나 3장을 보시면 니느웨 성읍을 한번 도는데 삼일이 걸렸다라고 하는 기록을 볼수 있는데 그만큼 굉장히 큰 성읍이었습니다.

사실 이 요나는 그동안 여러 목사님들로부터 설교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 요나에 대한 내용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요나의 모습에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당시 요나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마음가짐을 살펴보게 된다면 앞으로 우리가 보다 성숙한 성도로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라옵기는 이번 요나강해에서 교훈을 얻어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관중지천(管中之天)'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롱 관자 중앙 중자 어조사 지자 하늘천자. 그러니까 ‘대롱을 통해서 하늘을 본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관중지천은 하늘의 그 높고 넓은 부분을 좁은 대롱을 통해 보면서 우리 인간의 좁은 안목으로 판단하고 헤아리는 모습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좀 더 쉬운 표현을 한다면 ’우물안의 개구리‘ 라는 의미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우물안에 살고 있는 개구리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크고 제일 힘센 줄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우물안 개구리의 모습이 바로 요나의 모습이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을 이 요나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신 지혜는 무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를 계획하시고 자신의 뜻을 펼쳐나가십니다. 그래서 우리인간은 그 하나님이 뜻과 계획의 겨우 한부분만을 보고 이해할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시고 말씀을 주실때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 일에 공감을 해야 하고 내 마음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내 열정에 맞아야 하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을때에만 가능한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지혜가 내게 있고 하나님과 같은 능력이 내게 있을 때에만 가질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같은 지혜와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나에게 명령하시고 말씀을 주실때는 내가 알지못하는 하나님의 깊은 계획과 섭리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언제나 인정해야 합니다. 관중지천입니다. 대롱을 통해서 어떻게 한꺼번에 하늘을 다 볼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 하는데 내가 새겨야 할 원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시작 하는데 내가 새겨야 할 원리

첫째는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다면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속해있는 남 침례교단에서는 목사나 선교사로 안수하기 전에 이사람이 목사나 선교사의 자격을 갖추었나 갖추지 못하였나를 시험을 해보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을 치루는 자리에서 성경에 대해서 하는 질문은 좀 틀려도 괜찮습니다. 제가 전도사시절에 섬겼던 담임목사님이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옛날에 그 목사님이 심사위원들앞에서 최종 목사 자격 심사를 보게 되었는데 어느 한 심사위원이 예수님의 열두제자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했는데 대답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관한 질문은 정답을 맞추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정답을 맞추어야 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왜 목사가 될려고 하십니까” “왜 선교사가 될려고 하십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는 반드시 맞는 정답을 말해야 합니다. 다른 대답을 하게 되면 목사나 선교사가 되기 힘듭니다. 다른 교단에서는 몰라도 제가 속한 남 침례교단에서는 그렇습니다. “왜 목사가 될려고 하십니까‘ ”왜 선교사가 될려고 하십니까?“ 이 질문에 ’내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열정 때문에 저는 목사가 되어야 하고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라고 대답을 하면 귀하고 멋진 말이긴 하지만, 잘못된 정답입니다. 그 열정이 얼마나 갈것 같습니까? 열정은 평생을 가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전도와 선교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람들을 돌보고 교육을 시키는 일을 좋아하고 사랑을 합니다 그래서 그일을 할려고 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과 애정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이일이 올바르고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할려고 합니다’ 라고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사람에게는 올바르고 가치가 있는 일일수 있겠지만, 또 다른 쪽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역사를 살펴보면 악을 없애기 위해서 선을 행한다고 하는 것이 역시 또다른 악을 행할때가 많은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십자군 전쟁이고 또 정반대 입장에서 나타난 이슬람 테러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올바르고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일을 할려고 합니다’ 라는 대답도 정답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 그 자체가 기쁘고 즐거워서 할려고 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경우외에는 평생동안 이일이 기쁘고 즐거운 일이 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짜장면을 먹을 때가 내가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매일 하루 세끼 짜장면을 먹게 하면 아마 한두달후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짜장면을 먹는 일은 기쁨이 아니라 고역이 될 것입니다. 저희 막내딸이 평상시에 라면을 좋아했는데 대학 생활하면서 라면을 너무 많이 먹었는지 대학 졸업을 한 지금은 라면을 먹을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주었던 것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서 반대로 고역이 될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열정과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 입니다. 사실 이런것들이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답을 했다가는 이 미 남 침례교단에서는 목사나 선교사가 되기는 힘듭니다. 반드시 요구하고 있는 정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바로 ‘이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제일 중요한 동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calling에 있습니다. 소명의식에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열정과 애정과 사랑과 즐거움과 기쁨이 없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 하셨다면 내가 할 일은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이일을 제가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을 해야 첫 번째 시험에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시험관이 당연히 이렇게 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시던가요?” 이때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을 하신 성경구절을 말하고 그때 그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할수 있어야 합니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제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든지 아니면 “기도를 할때 마다 이상하게 생긴 흰물체가 나타나고 하는 데 아무래도 제가 목사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면 이 교단에서는 목사나 선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요나보고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했는데 요나가 왜 안 갔습니까? 요나가 보기에는 그 니느웨 성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회개 하라‘ 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설사 그런 메시지를 전한다고 해도 그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지도 않을 사람들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들이 회개하는 것도 요나에게는 허용할 수 없었습니다. 요나가 가진 생각은 그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받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요나가 가지고 있었던 정의 이었고, 선이었고 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일을 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럴때 필요한 일은 바로 내게 열정이 없고 애정과 사랑이 없다 할지라도 기쁨과 즐거움이 없고 관심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열정과 애정과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에는 공통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다 내게서 나온 것입니다. 나의 열정, 나의 정의 나의 애정 나의 사랑 나의 기쁨 나의 즐거움입니다. 이런 것이 동기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게 되면 그 결과는 나의 만족입니다. 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 기쁨과 하나님의 만족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때는 내기쁨고 내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만족함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려고 할때 가장 중요한 동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기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백에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올한해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좋아서 내가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다 해결이 되어집니다. 내 약함 아시고 내 소망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일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 아니겠습니까? 관중지천. 대롱을 통해서 내가 하늘을 보면 얼마나 볼수 있겠습니까?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내 마음에 새겨야 할 원리

두번째는 불순종과 순종의 길은 항상 열려있다 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절입니다. 2.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런데 3절을 보시면 요나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3.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의 첫 번째 행동이 어떤 것입니까?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가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욥바로 내려갔더니’ 지도를 한번 보십시다. 요나는 스불론 지파 사람입니다. 이 스불론 지파는 여기 갈릴리 바다에서 남서쪽에 위치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요나가 있는 곳에서 니느웨로 갈려면 북동쪽으로 가야하죠. 그런데 욥바는 그렇게 멀지 않은 남서쪽에 있습니다. 정반대쪽에 있습니다.

지금 요나는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과 말씀이 주어졌는데 완전히 반대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욥바에 갔습니다. 아마도 요나는 욥바로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정말 나를 원하신다면 내가 갈려고 하는 길을 막으실 거야’ 우리도 종종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한테 무엇을 하시길 원하신다면 내가 할려고 하는 다른 모든 길을 다 막으시고 그 길 하나만 열어 놓아주실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고 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막히는 일은 없습니다.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다른 길로 얼마든지 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한 길로 갈수 있기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기계와 같은 존재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판단하고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할수 있는 능력도 같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최 우선적으로 따르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잘 아시는 유명한 선악과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그길을 가도록 말씀하셨다면, 내가 오직 그 한길 밖에는 갈 수 없도록 다른 길을 다 막아 놓으실 것이다.’ 라는 생각은 우리의 착각입니다. 그것은 불순종하고 불순종하고 불순종하고 나니까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비상수단으로 다 막아 놓으시는 것이지 처음부터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비상수단으로 일을 시작 하게 될 때는 내 인생에 아주 굉장한 아픔과 손해가 오게 됩니다.

자, 요나가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욥바에 도착하니까 하나님께서 요나를 순종하게 하실려고 바다에 큰 쓰나미를 일으켜서 욥바 항구에 정박해 있던 배들이 모두다 육지로 올라오게 하셨습니까? 그래서 배가 떠나지 못하게 산위나 논과 밭에 흩어놓으셨습니까? 아니면 요나가 욥바에 가니까 다시스로 가는 배가 방금 떠나버렸나요?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떠난지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반대입니다.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기다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불순종했는데 일이 너무 잘 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갔는데 형통한 길이 열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저 사람이 저길로 가면 안되는데 자꾸 그길로 가는 경우를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사람이 왜 그길로 계속 가는가 하면 별 탈 없이 잘되어 가니까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길로 자꾸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길이 열려 있고, 내게 이익이 된다고 해서 그게 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한번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아마 여자 성도님께서는 모슬린이라고 하는 직물을 아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 모슬린 직물로 내의복이나 앞지마 그리고 셔츠나 식탁보 침대 커버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합니다. 이 모슬린 직물은 니느웨 성이었던 지금 모술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모술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모슬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당시 이 니느웨 성은 수많은 상인들의 왕래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당시 욥바는 지중해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무역항구 이었습니다. 무역항구도시입니다. 그러니까 이 욥바항구에 도착한 수많은 상인들중에는 니느웨 성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이 요나가 욥바에서 니느웨 성으로 갈려고 하는 마음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니느웨 성을 향해서 가고 있는 상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탁을 하면 아주 쉽게 그냥 묻혀서 친구 삼아서 니느웨로 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시스로 가는 배를 요나가 찾았습니다. 요나에게는 두 번 선택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니느웨와 욥바로 가는 길의 선택이었고 두 번째는 니느웨와 다시스로 가는 선택 이 두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요나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우리는 아주 편리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놓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길을 열어 주셨다 이런 소리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길을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해놓고는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다고 간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가 불순종하고 있는데도 평탄한 길이 펼쳐지게 되면 ‘야!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뜻을 바꾸신 모양이다. 내가 그 길을 싫어하니까 하나님께서 없었던 것으로 하신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을 했는데 길이 막혔다고 해도 그것도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일을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만 확실하다면 그 다음에 내가 할일은 그냥 그 길로 순종하여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내가 순종을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간다고 할지라도 주변의 사람과 주변의 환경이 자꾸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길을 막게 할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눈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한꺼번에 다 볼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관중지천입니다. 대롱을 통해서 하늘을 한꺼번에 다 볼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때 내마음에 새겨야 할 첫 번째 원리는 순종이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불순종과 순종의 길은 같이 열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시작 하는데 내 마음에 새겨야 할 원리

마지막 세번째는 순종은 결국 나를 위해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순종을 기대하고 명령을 하신 것은 니느웨 성 하나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요나를 위한 것도 있습니다. 신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사람이 하는 결정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서 동네 반상회에서 동네 반장이 결정하는 것은 그 동네에 사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칩니다. ‘요즘에 아침마다 강아지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동네사람들이 불평을 하는데 강아지를 키우는 주인들은 강아지가 아침마다 짖지 않게 신경을 좀 써주세요.’ 이러면 됩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그나라 국민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까 동네 반장보다는 한 나라의 대통령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보다 더 장기적인 안목을 내려다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런 원리에서 볼때 한국의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과 미국의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은 분명히 다릅니다. 왜요? 미국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이 우주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리시는 그 결정은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십년 이십년 백년 천년 영원히 미치게 될 것을 다 계산해서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요나가 순종해서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 니느웨 성에 사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생명을 얻게 된다 그것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요나가 순종하는 일로 인해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결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다 알수가 없습니다. 그당시 니느웨성에 살고 있던 사람들중에는 요나의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그 어떤 선한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 우리는 다 알수가 없습니다. 그 후손들 중에서 훗날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나라가 망해서 그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왔을 때 선한일을 하고 격려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영향력까지를 계획하시고 요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관중지천이죠.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분명히 알수 있느 사실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요나를 부르실 때 요나에게 도움이 되는 계획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요나가 이일에 순종을 했을때 요나가 가지게 되는 시각과 요나가 가지게 되는 인품은 이전보다 훨씬 더 넓어지고 훨씬 더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지역을 벗어나 앗수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할때 요나의 생각과 사고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요나에게 더 큰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왔을때 요나에게 더 많은 상급을 주기 위한 뜻도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실 때 내자신을 위해서라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종종 욥바에 도착을 해서 갈등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니느웨로 갈수도 있고 다시스로 갈수도 있습니다. 두 개의 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두 개의 길 중 지금 나에게 어느길이 열려 있는가는 생각보다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인가 하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내게 열정이 없고 내게 애정과 사랑이 없고 내게 시간과 물질이 없다는것도 문제가 될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에 비교하면 그렇게 크고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를 부르시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다 계획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변화시켜 더 큰일을 할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고 하늘나라에서 나에게 더 큰 상급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훨씬 더 많은 아름답고 선한 영향력은 훗날에 내가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다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나에게 열정이 없고 애정과 사랑이 없고 관심이 없다할지라도 그리고 시간과 물질이 없다할지라도 남은 생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