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요나 강해3.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

Author
kgmcc
Date
2021-01-20 12:31
Views
47
본문 : 요나 1장 10-17절

날짜 : 2021년 1월 20일

 

<요나 1장 10-17절>

10.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1.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 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 중에 잘못 생각하고 있는 상식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이 세상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더 잘산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고 난 이후 지난 2천년 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보다는 이슬람, 유교, 불교 문화를 받아들인 나라들이 더 오랫동안 풍요롭게 살아온 것을 알수 있습니다. 특별히 12세기와 13세기에 몽고족의 원나라 후예로서 중동지역과 서남 아시아 지역에 오스만 제국을 세운 투르크 족이 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오스만 제국이라고 부릅니다. 이 오스만 제국이 이스람교를 받아들이고 난후에 점점 세력이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1453년 당시 기독교의 중심세력인 콘스탄틴 노플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 때가 1453년이니까 15세기 중반이죠. 그리고 18세기까지 이 오스만 제국은 유럽보다 훨씬 더 강대한 제국을 이루면서 더 넓은 지역을 통치해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 하게 되고 그리고 또 몇 년후에 영국의 호레이시오 넬슨 제독이 이 나폴레옹군을 격파하고 이집트를 다시 차지하게 되면서 유럽의 세력이 부상하게 됩니다. 이것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의 문화가 전세계에 자랑할만하고 내세울만하게 된 것은 사실 18세기 말 이후의 일입니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유럽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나라보다 과학 문화 정치 건축 등 여러 가지 영역에서 앞서게 된 것은 불과 250여년 전에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기독교 나라를 축복하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나라들을 축복하시는 것입니까.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대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렇게 축복하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잘살게 해주시고 하나님을 안 믿고 살아가는 나라들은 망하게 해버리시면 신앙 생활을 해나가기가 얼마나 쉽겠습니까? 그리고 전도나 선교를 해나가기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가 잘살고 있었고 지금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와 별로 관계가 없는 중동이나 중국이 지금 점점 강대 국가가 되어지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이 오히려 힘을 잃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2000년의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부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 다시 부강해졌다가 그리고 요즘에 기독교 국가가 다시 약해지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계획과 소망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불과 30여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예수님을 믿는 장로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잘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김영삼 장로님이나 이명박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어도 뭐 마찬가지 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김영삼 장로님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서 국민들에게 IMF를 주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 정치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에 축복을 주셔서 선진국이 되게 해주셔야지 왜 IMF 를 주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명박 장로님은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미국에서도 신앙심이 깊고 복음만을 믿고 살아가는 복음주의 자들이 트럼프를 열심히 지지 했지만 오늘날의 미국은 4년전보다 더 나아진 것은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말씀을 주시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방법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도 우리 인간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놓치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용해서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주변의 나라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나라 백성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내용이고 지금까지 보여주는 기독교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를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을 알고는 있었지만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과는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마음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마는 본문의 말씀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는데 불신자 즉 이방인들을 사용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불신자 즉 이방인을 어떻게 사용해서 믿는 성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게 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성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게 하기위해서는

첫 번째로 불신자를 통해서 믿는 성도들이 부끄럽고 수치를 느끼게 하십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10.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1.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1절 앞부분을 보시면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폭풍이 점점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바다가 흉용하게 된 것이 요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신에게 잘못 했는가를 알아보는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혔습니다. 그래서 요나에게 물어보았는데 요나가 사실을 고백 한 것입니다. “이렇게 폭풍이 일어난 것은 나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가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그러자 그배에 탄 사람들이 요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그때 요나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12절입니다. 12.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자 이말을 듣고 배에 탄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였습니까? 이 요나 한사람 때문에 자기네들이 지금까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배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귀하고 가치가 있는 물건들을 모두 바다에 내 던졌습니다. 이 한 사람만 바다에 던지면 모든 일이 해결 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배에 탄 사람들은 어떻게 결정하는게 상식이겠습니까? 당연히 던져야죠. 그런데 그들은 안던지기로 결정합니다. 13절입니다. 13.그러나(이게 의미심장합니다)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보기에 이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의 진노를 받고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자기들도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요나를 던지지 않기로 결정 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우리 같이 한번 살아보십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그들은 힘써 노를 젓어 출발했던 육지를 향해 되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두 같이 살기 위해서 더욱 애를 쓰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을 믿는 요나가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야, 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망하라고 이렇게 도망쳐 나왔는데 이 사람들은 그래도 같이 한번 살아보자고 저렇게 최선을 다해서 애를 쓰는구나. 이 사람들을 보니 내가 가졌던 마음과 이 행동이 참 부끄럽구나” 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정죄를 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가 목회자이다 보니 저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대부분 믿는 성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신자들을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는 말을 들을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일상생활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참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저렇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한테 위로를 받고 도움을 받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때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정죄한일에 대해 부끄러움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도 일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전보다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긍휼의 마음과 더 넓은 포용력을 가지고 접근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점점 더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애정과 의리와 같은 이런 인간적인 면을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보게 해주실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아라고 하는 사인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는 성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게 하기위해서는

두 번째로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13절입니다. 13.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그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같이 살기 위해서 힘을 다해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바다의 폭풍이 점점 더 거세게 일어나서 도저히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능히 못한지라’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한가지 교훈을 얻을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구원을 받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고 죽이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10절을 보시면 빌라도 총독이 잡혀온 예수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내가 너를 놓은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할 권한도 있다’ 라고 말하는 그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다음 11절입니다. “11.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빌라도 너가 나를 죽이고 살리고 하는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너는 나를 죽이거나 살릴수가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빌라도가 십자가 사형이라는 선고를 해서 예수님이 죽게 되었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일이 이루어 졌다고 말씀합니다. 죽음과 구원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수 없습니다.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은혜에 의하며‘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얻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내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더 이상 내힘으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마치 죽음의 문제처럼 내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한계를 느낄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와 여러분은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만 행동해야 한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일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문제 해결의 시작이 생겨나게 됩니다. 바라옵기는 내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수 없는 한계를 부닥치게 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하는 사인으로 믿고 그길을 찾을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는 성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게 하기위해서

세 번째로 희생이 필요한 것을 알게 하십니다.

15절입니다. 15.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이제 배에 탄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요나를 던지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 요나가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이 진 죄악에 비하면 이 요나는 선인이었습니다. 구태여 이 요나에게 죄가 있다고 한다면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아야 한다고 하나님에게 대든 것 뿐입니다. 그래서 앞에 나오는 14절을 보시면 그들이 하나님 앞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14.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그들은 이 요나가 지은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의인이었던 요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해결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바로 2천년전 예수님께서 하신 사건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외치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나를 들어 십자가에 던져 주시옵소서. 나를 십자가에 던지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죄악의 큰 바람과 폭풍을 만나 고통속에서 죽어가고 사람들을 구할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던지소서“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던졌습니다. 왜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볼수 없어서 괴로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을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몸을 던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얼마든지 내려 오실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아셨기에 세 개의 못에 박히신 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신 것은 로마병정이 아닙니다. 세 개의 못도 아니고 저와 여러분의 죄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그대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죽음을 맞이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도 ‘바다에 나를 던지라’ 말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마음을 알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제일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그다음 16절을 보시면 그배에 탄 사람들이 서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16절입니다. 16.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서원을 하였더라’. 서원이란 하나님앞에 내가 그일을 하겠다고 하는 맹세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떤 맹세를 했겠습니까? ‘하나님 이제 저희들도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정죄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 보다는 먼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대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이제 앞으로 저희들도 하나님이 가지신 마음을 알고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가겠습니다” 이런 내용의 서원이 아니겠습니까? 이 서원의 내용을 가지고 신학자들 사이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겠다는 서원을 했다' ,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겠다는 서원은 아니다‘ 이렇게 왈가왈부하고 있습니다. 여기 배에 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었다, 안 믿었다‘ 라는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요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인이 사건을 보면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정인이 양부모가 하나님을 믿느냐 안믿느냐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살아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기준 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현실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게 되는 그것이 참 믿음의 생활인 것입니다. 최근 2-3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우리 믿는 성도들은 너무 쉽게 불신자들을 정죄하고 판단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불신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던 수도 없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쳤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일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행동들을 보면 남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모습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태도가 지금은 부메랑이 되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되돌아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 정말 중요합니다. 그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이 요즘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유럽 중세기때 조금만 교리가 달라도 고문을 하고 정죄를 했던 그 마음을 오늘날에 믿는 성도들로부터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같은 기독교내에서도 교리가 다르다고 서로 삿대질 해가면서 정죄합니다. 사람들을 심판하고 멸망시키는 일은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긍휼과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럴때 이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질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요나의 고백처럼 저와 여러분도 세상 람들을 향해서 정죄하기 보다는 차라리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신앙생활 해나가십시다. “나를 바다에 던지라” 라고 고백하며 살아갈 때 내가 살고 내 주변의 사람도 살아갈수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예수님처럼, 이 요나처럼 내가 먼저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볼수 있게 되고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