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요나 강해5. 다시 말씀하시는 하나님

Author
kgmcc
Date
2021-02-03 12:26
Views
40
본문 : 요나 3장 1-5절

날짜 : 2021년 2월 3일

 

<요나 3장 1-5절>

1.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동안 걸을만큼 하나님앞에 큰 성읍이더라

4.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요나 1장을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장 1절에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요나에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요나에게 하신 말씀과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의 내용이 약간 달라진것을 알수있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내용은 같다고 할수 있지만,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말씀하신 내용이 약간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다시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1장과 3장에 나오는 요나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실 때 하나님의 기대하심과 우리가 해야할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요나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다시한번 기회를 주실 때 우리가 더 이상 불순종하지 않고 순종할수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실 때

1.이해하기보다는 순종이 먼저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순종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본문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그리고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장 1절과 2절입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1장과 3장에 나오는 말씀을 각각 살펴보면 1절에서부터 2절 전반부인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까지는 내용이 둘다 같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달라지게 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장 2절 후반부를 먼저 보시면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입니다. 그리고 1장 2절 후반부를 보시면 “그것을 향하여 외쳐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로 되어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첫 번째로 말씀하실 때는 설명을 해주십니다. 요나에게 ‘네가 왜 니느웨 성에 가야 하는 지’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그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악독이 내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그래서 니느웨성에 가서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도록 외치고 그래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심판을 내리겠다는 말씀을 하신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내리기 전에 회개할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긍휼하신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3장 2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이해시키는 것은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설명을 해주셔도 이해를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해를 하는 척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내 방식으로 이해하고 내 방식으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더 이상 설명을 하고 이해시키는 것을 생략 해버리십니다. 이러한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볼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요나에게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전보다 짧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기대하고 바라시는 것은 요나의 순종뿐입니다. ‘요나야. 너는 내가 말하는 대로만 따라 순종해! 알겠지’ 이런 느낌을 두 번째로 요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느낄수 있습니다.

몇 년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만 컨비니언 스토어를 운영하시는 어느 한 집사님이 그날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가게 종업원에게 스프링 워터 가 담긴 물병과 콜라와 같은 드링크 병을 진열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물론 같은 종류는 반드시 같은 진열 라인에 넣어야 할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설명을 하고 그 종업원에게 음료수들을 진열대에 스탁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물과 음료수 진열대안에 알코올 성분이 들어있는 드링크 병도 같이 그 진열대 안에 스탁해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인이 깜작 놀라서 그 드링크 병 들을 다 빼내었다고 합니다. 만일에 주인이 확인하지 못한 그 사이에 미성년자가 그냥 음료수인줄 알고 사서 마셨다면 그 가게는 얼마동안 영업정지를 당하게 되거나 큰 벌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뻔 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주인이 그 종업원에게 알코올 성분이 있는 드링크를 왜 일반 드링크 진열대에 스탁 했느냐고 물어보니까 ‘그 병 디자인이 하도 예뻐서 여기 음료수 진열대에 같이 진열하면 더 잘 팔릴 것 같아서 진열했다’ 는 대답을 하더랍니다. 알코올 드링크는 반드시 따로 진열창 안에 넣어야 한다고 그렇게 설명했지만 그 종업원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것은 이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고, 저것은 저런 이유 때문에 저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안된다. 이렇게 다 설명해주고 일을 시켜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해도 자기가 좋은 식으로 해석해서 행동 하는 것을 봅니다.

처음에는 요나가 말씀을 듣으면 깨닫고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은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다음에는 요나에게 간단하게 명렴만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기대하는 것은 요나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나의 이해가 아니라 순종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시한번 기회를 주실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고 원하시는 것은 순종이지 이해시키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우리는 이해할려고 하는 것보다는 순종 할수 있으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실 때

2.최소한의 실천은 해야 한다

본문 3절 4절입니다. “3.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동안 걸을만큼 하나님앞에 큰 성읍이더라 4.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3절 후반부를 다시보시면 ‘니느웨는 사흘동안 걸을만큼 하나님앞에 큰 성읍이더라’ 그리고 4절을 보시면 ‘4.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그러니까 요나는 3일동안 걸어야 한바퀴를 돌수 있는 니느웨 성읍을 하루 동안만 돌아다니고 말았습니다. 요나 강해를 처음 시작할 때 동영상을 통해 그당시 남아있던 니느웨 성벽의 일부분과 입구 문을 보면서 그당시 니느웨가 상당히 큰 성읍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짐작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3일동안 걸어야 할 니느웨 성읍을 왜 하루만 다녔습니까? 요나가 하루 동안 메시지를 전했더니 그 메세지를 전해 듣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전해서 하루만에 다들 알아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던 것입니까?. 그래서 나머지 이틀을 더 돌아다닐 필요가 없게 되어서 그랬습니까? 그당시 요나가 가진 마음과 보여준 행동에 의하면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나가 사흘동안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데 하루밖에 하지 않았던 이유는 더 이상 하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하라고하신 그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기서 안 전하고 버티면 또 얻어맞을까봐 선포하기는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나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제가 순종을 했습니다‘ 라고 말할수 있는 최소한의 순종을 한 것입니다. 하기는 싫었지만 억지로 최소한의 순종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최소한의 순종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최소한의 순종을 사용하셔서 최대한의 열매를 거두십니다. 요나가 하룻동안 전했던 그 메시지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은 베옷을 입고 금식을 하면서 회개한 것입니다.

이러한 요나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별로 한일도 없으면서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대해 우리는 대충 대충 해놓고는 최선을 다한 것으로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를 하고 있던 어느 선교사가 미국에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할 때 이런 간증을 한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그 선교사가 마을사람에게 성화 그림을 몇 개 교회 벽에 걸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났는데도 그림들이 교회 바닥에 그냥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가서 그림을 벽에 걸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왜 걸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망치하고 못하고 사다리를 주어야 우리가 벽에 그림을 걸수 있는 것이 아니냐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가 교회 창고에 있는 망치와 못과 사다리를 가져다 주고 여기 저기 여기에 걸어달라고 다시한번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그림들이 하나같이 비딱하게 걸려있었고, 또 어떤 그림은 거꾸로 걸려 있더랍니다. 그리고 망치와 사다리는 교회 바닥에 그냥 놔두고 집에 갔더랍니다. 걸어달라고 했으니까 걸어놓았다는 것이죠. 그얘기를 하시면서 선교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이러한 사람들을 대하면서 저는 우리 믿는 성도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천국의 영광을 떠나 이땅에 선교사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진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너희는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평상시에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아가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은혜에 감사를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날보다는 그렇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날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시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눈높이를 낮추시고 우리에게 최소한의 행동을 하실 것을 기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최소한의 행동을 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많이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최소한의 행동을 하면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최대한의 역사를 경험할수 있게 하십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최소한의 순종과 봉사를 해나가시면서 신앙 생활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실 때

3.하나님의 미리 준비하셨음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본문 5절입니다. 5.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요나는 하기 싫어서 억지로 최소한의 순종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최소한의 순종을 통해 온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미리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이 일을 하신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음주에 역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이 하신일에 대해서 잠시 살펴볼 시간을 가질려고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하나님이 미리 준비를 해놓으심을 기대하면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셨을 것이다라고 하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심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나가 니느웨성에 가서 ‘40일이 지나면 이 니느웨 성이 무너지리라’ 라고 외쳤을때 그이전에 니느웨 성 옆에 있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어떤 도시에서 니느웨를 공격해 오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니느웨 성에 알지 못한 전염병이 퍼져서 많은 사람이 죽어서 신의 노함이라고 생각을 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도 죽을지도 모른다라고 하는 두려움속에 있는데 그때 요나가 외치는 메시지를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짾튼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그 최소한의 순종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일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요나가 대충 전한 회개의 메시지를 그 강퍅하고 잔인한 니느웨 사람들이 한번에 진지하고 두렵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는 힘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한순간에 역사하시는 능력이 있으시지만 요나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기 이전에 미리 준비해놓으신 일이 있었다고 믿는 것이 더 성경적입니다. 이 니느웨 사람들에대해 하나님의 미리 준비하심에 대해서는 다음주에 잠시 시간을 내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동안에 하신일은 사실 많은 양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육신과 제한된 언어 수단을 가지고 사역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계셨을 때 하셨던 일은 최소한의 양이었다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행하신 최소한의 일로 그냥 끝내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입니다. “1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가 제한된 육신과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최소한의 일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큰 역사가 일어나고 최대한의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최소한으로라도 순종을 하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최소한의 순종을 하면 하나님께서 최대한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으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 최소한의 순종에 최대한의 역사를 일으키시기 위해서 미리 준비하심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두고있는 그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해놓았는지는 우리는 알길이 없습니다. 그사람이 요 근래 며칠동안 건강이 갑자기 안좋아서 약을 먹고 있는 중일수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 코로나 팬데믹 중이기 때문에 보통때보다도 인생에 대해서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며 하루하루 생활해나갈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사업이 잘 안되어서 무엇인가 의지하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중일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사업이 잘 되어서 이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야 라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나는 최소한 순종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조치를 다 해놓으셨다고 기대하면서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에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통화나 메시지를 하게 되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마음이 가난해져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그렇게 무심했고 별 반응이 없었던 분들이 이제는 저와 연락을 할 때 반응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대해 적어도 최소한의 순종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 사람에게 나보다 먼저 일하고 계셨다고 하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우리는 사실 요나처럼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이해하기 보다는 순종해야 하는 것에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다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문제는 이해가 아니라 순종에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일에 낙심해야지 이해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경공부에 목을 매다는 성도님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최소한의 순종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비록 나의 순종이 최소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최대한의 역사를 행하시기 위해서 준비하심이 있다는 것을 믿고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이제 저와 여러분이 남은 생애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 명령에 최소한의 순종을 하시면서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